1차전 ‘U자형 빌드업’ 답답, 2차전 중앙 공략 성공…서울월드컵경기장 열악한 잔디 상태도 경기력에 악영향
2경기 승점 4점, 요르단과 승점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밀려 대표팀은 B조 2위에 자리했다. 나쁘지 않은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만족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국가들을 상대로 경기력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연출했다.
#답답했던 첫 경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전에서 대표팀은 더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홍 감독은 과거 10여 년 전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시절부터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졌다. 10년 만에 돌아온 대표팀에서의 첫 경기, 그는 안정적인 선발 라인업과 포진을 들고 나왔다.
6만 명 이상의 한국 관중 앞에서 잔뜩 움츠린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대표팀은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빈도가 많지 않았다. 한쪽 측면에서 공격을 시도하다 후방으로 공을 내리고 반대편 측면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U자형 빌드업'이 연출되는 장면이 많았다. 골이 터질 확률이 높은 중앙 지역 공략이 성사되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되레 역습을 허용하는 장면도 많았다. 수비나 미드필드 지역에서 상대에게 패스가 끊긴 이후 빠른 공격에 허둥지둥대는 모습이 연출됐다.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골을 허용할 수도 있었다.
대표팀에게 찬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격력이 무뎠던 왼쪽과 달리 이강인이 주로 활동한 오른쪽에선 결정적인 장면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격수들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나거나 상대 골키퍼에 막혔다. 결국 경기는 0-0으로 마무리됐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팔레스타인전에 대해 "이겼어야하는 팀을 상대로 실망스러운 경기를 했다"며 "잘 안 풀리는 상황에서 변화를 주는 시점도 늦었다고 본다. 승점은 땄지만 실패에 가까운 경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표팀이 팔레스타인전에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이유에는 잔디 문제도 한몫했다.
#심각한 잔디 상태
팔레스타인전에서 대표팀은 팀적인 움직임 외에 선수 개개인의 기량조차 아쉽게 느껴졌다. 이는 다름 아닌 잔디 상태가 좋지 않은 탓으로 보였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도 경기 전후로 여러 차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이 해설위원은 "보기에도 그라운드가 울퉁불퉁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강하게 발을 내딛거나 방향전환을 할 때 잔디가 파여 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면서 "한번에 편안하게 공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보였다. 한두 번의 터치로 공을 연결하기 어렵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경기 템포를 끌어올리기도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이 터지지 않은 데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찬스를 앞두고 불규칙적인 그라운드 상태 탓에 정확한 슈팅을 날리기 어려웠다.
예상보다도 심각한 잔디 상태에 대표팀은 후반전에는 일부 전략을 수정한 듯 보였다. 땅볼 패스 빈도를 줄이고 공중볼 비중을 높였다. 이 같은 전략은 장신 공격수 오세훈의 교체 투입과 맞물려 효과를 봤다. 이 해설위원은 "주민규와 오세훈은 실력 차이가 있다기보다 쓰임새가 다른 선수들이다. 팔레스타인전에서는 오세훈이 선발로 들어가 더 많은 시간을 소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부진에 잔디가 원인이 됐다는 주장은 오만 원정에서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이며 증명됐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잔디 탓을 하면 '상대팀도 똑같은 조건 아니냐'고 할 수 있다"면서 "잔디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전력이 강한 팀이 더 손해를 본다. 우리 대표팀에는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잔디에선 그 기술이 나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 공략에 성공한 오만전
오만전에서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패스를 시도했다. 공의 흐름이 측면에만 치우치지 않고 중앙으로도 연결됐다. 이강인, 황희찬 등이 적극적으로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을 연결했다.
빠른 템포로 이뤄지는 패스 속에서 선제골도 나왔다. 홍명보호 출범 이후 첫 골의 주인공 황희찬의 기술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경기 초반 선제골을 넣은 이후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전반 중반부터 상대에게 흐름을 내줬고 이를 끊어내지 못했다. 결국 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허용했다.
경기는 후반 막판에야 뒤집어졌다. 손흥민과 주민규의 골이 터졌다. 손흥민의 결승골 역시 중앙 지역을 공략해 터진 골이었다. 골과 도움을 기록한 손흥민과 이강인이 측면으로 빠지지 않고 중앙에 포진하면서 공을 주고받았고 골문이 열렸다.
승리는 가져왔으나 경기력을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상대에 흐름이 넘어갔을 때 빨리 다시 가져올 수 있는 압박, 코너킥 등 세트피스가 좀 더 가다듬어지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시아 무대에서 오랜 숙제인 밀집 수비를 깨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표팀으로선 10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다가오는 A매치는 이번 월드컵 예선 중 가장 어려운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 원정을 다녀와서 홈에서는 이라크를 만난다. 이들은 대한민국과 B조 선두 다툼을 벌일 국가들이다.
이라크와는 직전 월드컵 예선에서도 만난 바 있다. 당시 홈에서 무승부 이후 원정서 3-0 완승을 거뒀다. 요르단에는 최근 극도로 약한 모습을 보였기에 분발이 요구된다. 대표팀은 앞서 지난 1월과 2월,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을 두 차례 만나 1무 1패로 고전했다. 대회 4강에서 일정을 마치고 일찍 귀국해야 했던 이유도 요르단에 완패했기 때문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