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전국에 흩어져 있던 정보사 공작파트 요원 주둔지 통합…관리 효율 높아졌지만 보안 취약점 생겨
전직 정보당국자에 따르면 2016년경 정보사엔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작파트 요원들에게 ‘주둔지’가 생겼다. 주둔지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일대였고, 비밀 요원들이 한 주둔지에 모이게 됐다. 이때부터 베테랑 공작원들 사이에선 적지 않은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작 자원들이 한 주둔지에 모이게 되면 서로 뭘 하고 있는지, 누가 비밀 요원인지를 완전히 감추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서 “요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도 한 장소에 집결되는 셈이니 이런 보안적인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관계자는 “병렬식으로 산재해 있던 공작파트가 직렬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니 시스템적 결함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투자 격언 중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공작파트 요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된다. 각자의 비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요원들이 한데 모이게 되면 ‘커뮤니티’ 성격을 띠는 소통이 오갈 수밖에 없다. 보안상으로는 상당히 취약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이번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에서 군무원 한 명이 명단을 유출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판교 총집결’에 있다고 본다.”
정보사 내부에서 공작파트 요원들을 한 주둔지로 모으는 방안은 2000년대 중반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장성급 인사가 영관급 장교로 재직할 당시 교육기관에 발령돼 보고서를 작성하며 ‘주둔지 통합’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처음 언급됐던 주둔지 통합은 2016년 말 박근혜 정부 말기에 전격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에 따르면 2010년대에 들어서며 정보사는 ‘황금박쥐 사업’을 본격 진행했다. 서초구 소재 주둔지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사업이었다. 정보사 공작파트 주둔지 통합은 황금박쥐 사업과 맞물려 함께 속도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공작파트 주둔지 통합이 완료된 뒤 전국 공작파트 요원들의 본부가 생겼다.
전직 군 관계자는 “주둔지 통합으로 요원들을 관리하는 효율성은 올라갈 수 있지만, 자물쇠 하나만 따면 모든 문이 열리는 격이 되면서 보안 시스템에 대한 취약점이 생긴 부분도 있다”면서 “시스템적인 취약점을 빼놓고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을 논하게 되면 사건 자체에 대한 책임밖에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가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더불어 수뇌부 갈등 사건, ‘광개토 사업’ 관련 이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서 “휴민트 시스템 자체를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휴민트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적인 취약점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블랙요원 신상유출 후속 사건이 또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직 체계, 업무 방식 등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취약점을 파악하고 개선해야 할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시스템을 확실하게 개선하지 못하면 앞으로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사고 깊이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 똑같은 류의 사건이 벌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때는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도 애를 먹을 수 있다.”
취재에 따르면 군 내부에서도 정보사 공작파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는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작원들이 고유하면서도 특수한 임무를 맡는 까닭이다. 공작원들은 군 정보파트에서 초고위급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조직 내부에서 진급길이 험난한 직군인 셈이다.
최근 들어선 공작파트가 기피 직군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17년 이후엔 ‘수집형 공작’ 위주로 업무가 진행되면서, 능동적인 공작을 직접 경험한 요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직 정보사 요원은 “내부적으로 보안 시스템을 아무리 강화해 놓아도, 비밀을 취급하는 요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일이 제대로 될 수 없다”면서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