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 영향력 큰 연구소, 사령관은 사업배제 지시 ‘미스터리’…연구소 “안가 쓴 적도 없어”
기획공작 ‘광개토 사업’을 둘러싼 국군 정보사령부 수뇌부 간 갈등이 폭발한 건 지난 6월 초의 일이다. 정보사령관 A 소장과 정보사 여단장 B 준장은 광개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간단체들의 ‘안가(안전가옥)’라 불리는 영외 사무실 사용 여부를 두고 부딪쳤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령관이 결재판을 던졌다는 폭행 의혹, 여단장이 정보사령관에게 항명했다는 하극상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정보사령관과 여단장 사이 갈등의 골을 폭발하게 만든 매개체는 민간단체 C 연구소였다. 여단장은 광개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복수 민간단체가 영외 사무실을 활용하는 방안을 꾸준히 보고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정보사령관은 C 연구소를 콕 집어 ‘영외 사무실 사용 불가’ 방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C 연구소는 전직 정보사 출신 고위 관계자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정보사령관 입장에서도 군 선배들이 다수 일하고 있는 단체인 셈이다. 광개토 사업에 포함돼 있는 다른 민간단체에도 정보사 출신 예비역 관계자들이 고루 있었는데, 정보사령관은 C 연구소에 대해서만 강한 비토 기류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군 내부 소식통은 “광개토 사업은 공작 인프라 영토를 확장한다는 의미로 진행된 공작사업”이라면서 “공작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 휴민트 시스템을 재건하려면 민간과 협력이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C 연구소의 경우 광개토 사업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첨단 정보기술 업계와 튼튼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군 정보당국과 협력체계를 구축할 경우 적지 않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광개토 사업을 단팥빵에 비유하면 C 연구소가 사실상 ‘단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격”이라면서 “정보사 내부적으로도 사령관이 C 연구소 사업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내부에선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흘렀다”고 전했다(관련기사 [단독] “차라리 울릉도라고 했다면…” 정보사 갈등 진원지 ‘광개토 사업’ 대체 뭐길래).
또 다른 정보당국 소식통은 “이번 정보사 수뇌부 간 갈등을 촉발한 가장 큰 의제가 C 연구소 영외 사무실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한 단체를 특정해 사무실 사용 불가 방침을 내린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사령관의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영외 사무실이라는 것 자체가 군 정보당국이 민간과 협력을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공간”이라면서 “주요 협력단체와 기획공작 사업을 추진하는데, 그 공간을 활용하지 못 하게끔 지시하는 상황이 내부적으로 봤을 때 마냥 순리적인 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C 연구소는 정부기관 및 민간기업과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 연구소가 개최하는 포럼에 국내외 정보기술 관련 유력 종사자들이 참여해 국내외 정보기관 이목을 끌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각종 첨단 기술 분야에 있어서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민간 협력사들이 C 연구소와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군 내부 소식통은 “C 연구소는 정보사와 바로 사업을 추진해도, 보안상 교육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예비역 인력이 포진돼 있는 데다 네트워크 구축 능력이 상당해 ‘광개토 사업’ 최적의 파트너로 꼽혔다”면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정보사령관이 끝까지 반대한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C 연구소 내부에서도 극소수가 광개토 사업 협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극상 논란과 관련해 정보사령관 A 소장이 국방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C 연구소가 공식 언급됐다. 그 뒤 국방부 조사본부에 정보사 여단장 수사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C 연구소 이름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밑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던 프로젝트와의 연관성이 외부적으로 공개되자 C 연구소 핵심 인사들과 국방부 안팎 주요 관계자들이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는 후문이다.
C 연구소 내부 관계자는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고, 나라에서 도움이 필요해 우리 단체와 같이 일해보자는 취지로 제안이 들어왔다”면서 “우리 단체가 그것을 수용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지고, 우리 단체가 마치 커다란 문제를 가진 조직처럼 비춰지는 상황을 굉장히 난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이적행위를 한 것이라면 문제 삼아 마땅한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정보를 일종의 봉사 차원으로 국가에 제공하려는 과정에서 논란 중심에 휘말리게 됐다”면서 “우리는 국가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대가를 받은 것도 아닌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답답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정보사 영외 사무실을 쓰지도 않았다”고 했다.
정보사령관은 C 연구소가 정보사 영외 사무실(안가)을 활용하고 있는 점과 관련해 여단장에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단장 측은 ‘무고’를 주장하고 있다. 맞고소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C 연구소가 정보사 안가를 활용했는지 여부다.
취재에 따르면 C 연구소는 사무실을 실제 사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정보사 승인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사무실의 활용 정도를 모니터링 하는 수준으로 두 차례가량 답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사 안팎에서도 C 연구소가 안가를 실질적으로 활용한 적이 없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C 연구소가 영외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하자는 취지로 지속 건의했던 정보사 여단장 B 준장은 현재 하극상(상관 모욕) 혐의로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를 받고 있다. B 준장은 6월 중순경 직무배제된 상태다.
C 연구소 영외 사무실 사용에 대해 불가 방침을 지속적으로 피력했던 정보사령관 A 소장은 현재 사령관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 중이다. 정보사 수뇌부 간 맞고소전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A 소장에 대한 직무배제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A 소장 직무배제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관련기사 [단독] 조사도 계급순? ‘정보사령관 vs 여단장’ 맞고소전 편파수사 의혹).
전직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C 연구소와 협력 여부를 두고 다른 입장을 보였던 두 장성급 인사에 대한 인사처분 결과가 상이한 상황”이라면서 “이런 인사 처분 결과를 놓고 봤을 때 C 연구소를 광개토 사업에서 배제하려 했던 것이 단순히 정보사령관 개인 의견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정보사령관 A 소장에게 ‘광개토 사업’에서 특정 민간단체를 배제하라 지시한 사실관계 및 배경을 질의하려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A 소장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국방부 측은 “절차에 따라 사건을 조사 중이며, A 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