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극한대립 연장, 증인 놓고 충돌, 정쟁 되풀이 우려…초선·제3정당 의원들 존재감 키울까
#국감으로 이어진 여야 정쟁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19일간 진행된다. 최근 정부부처, 기업 등의 대관파트 직원들은 의원실에 간식을 돌리며 담당 상임위 동향을 파악하느라 국회에 총출동했다. 이들은 국감 대응 전략을 세우고, 소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의원실에 방문해 설명하고 있다. 또 각 상임위원회의 국감 증인, 참고인 명단 공개와 동시에 증인 명단 수정을 위해 분주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야의 극한 대립 관계가 국감으로도 이어지면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법제사법위원회(9월 25일)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9월 24일)는 증인·참고인 명단을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민주당은 △명품백 수수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천개입 사건 등과 관련해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10월 21일과 25일 법사위 국감 증인으로 각각 신청했다. 아울러 YTN 민영화에 대해 질의가 필요하다며 김백 YTN사장과 YTN 최대주주인 유진그룹의 유경선 회장을 과방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발하면서 모두 퇴장했다.
대기업 한 대관 직원은 “여야가 증인 명단 공개 후에 협상·협의를 거쳐 의결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의원실에 방문해서 해명하고 소명해서 증인 명단에서 빼기 위한 노력을 할 수가 있었다”며 “그런데 증인 명단을 공개함과 동시에 민주당에서 단독으로 의결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해명이나 소명 기회가 없어져 버리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다. 의결된 뒤에 증인을 뺀다면 의원실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에 증인 빼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요 증인 명단을 보면 국감에서도 끝없는 정쟁만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김건희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명태균 씨 등을 10월 10일 국정감사에 부르기로 했다. 앞서 명 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바탕으로 김 전 의원 공천 등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국방위원회는 야당에서 띄운 ‘윤석열 정부 계엄령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증인으로 불렀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를 부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법인카드 사적 유용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해 노규호 전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부장도 증인 명단에 올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타이이스타젯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스타항공 관계자, 문 전 대통령 딸인 문다혜 씨 등을 증언대에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여야 모두 이미 오랫동안 정쟁했던 사안을 국감에서 재탕, 삼탕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쟁으로 점철된 국감은 맹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며 “예전처럼 취재해서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국회의원이 요즘엔 없다. 국감 스타가 실종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스타 정치인 탄생할지 주목
여야 극한 대립 속 국감 스타 정치인이 탄생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조 국감 스타다. 그는 초선 의원이던 1988년 국감에서 참담한 노동 현실을 질타하며 당시 이해찬 이상수 평화민주당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렸다. 국회 최초 청문회인 ‘5공 비리 청문회’에서는 이른바 ‘명패 사건’으로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국감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등 제3지대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노회찬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은 초선이던 2005년 국감에서 ‘삼성 X파일’ 사건 관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뇌물(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스타 정치인으로 올라섰다. 2017년 국감장에서는 신문지 2장 반을 깔고 누워 교도소 재소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인권을 이야기했다.
심상정 전 의원도 초선이던 2004년 국감에서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파생금융 상품에 투자했다가 1조 8000억 원이란 손실을 냈다는 사실을 찾아내 당시 이헌재 재경부 장관의 공식 시인을 받아낸 일은 지금도 회자되는 일이다. 2013년 국감 기간 중에는 삼성전자의 노조 무력화 전략을 담은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공개했다.
민주노동당 출신 비주류인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도 국감을 통해 전국구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했다. 박 전 의원은 초선이던 2017년 국감장에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의혹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냈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인 분식회계와 삼성의 편법 경영권 승계 수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특히 2018년 유치원 비리를 폭로하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관련기사 ‘백조로 변신했지만 아직은 아웃사이더’ 국감스타 박용진 당내 입지는?).
여야 모두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소장파 역할을 하는 초선 의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초선인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21대 국회에서 초선 의원들 역할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소장파가 부재했다”며 “초선 당선인들이 22대 국회에서는 소장파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관련기사 [인터뷰] 김용태 국민의힘 당선인 “김 여사·채 상병 사건, 여당이 해결책 내야”).
5선 중진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초선 의원들이 자유롭게 정책 현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여건은 이재명 대표가 만들어야 한다. 당내 민주성 강화와 다양성 확보를 통해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강성 지지자 목소리가 과도하면 적극적으로 자제시켜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강성 지지자들 눈치 보면서 발언 못하면 안 된다. 욕먹어도 말해야 한다. 그게 국민 대표자 역할이자 책무”라고 했다(관련기사 [인터뷰] 친명 좌장 정성호 “이재명 일극체제, 윤 대통령이 만들어”).
아직까지 주목할 만한 초선 의원은 여야 모두 보이지 않는다. 여야 의원들은 소속 상임위별로 이번 국감에서 할 질의나 다룰 아이템을 공유하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반복되는 질문과 같은 답을 벗어나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 국감 스타로 등용하는 정치인이 나타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감은 여러 민생 회복을 위한 정책에 집중해서 생산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만드는 쪽으로 경쟁해야 하는 장”이라며 “그런데 증인·참고인 명단 명단만 보면 정쟁용 이슈만 끄집어내는 데 그칠 것 같다. 특히 재보궐 선거를 앞둔 만큼 상대 정당의 부정 비리 등을 공격용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