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부진 속 ‘북미 개척’ 숙제로 꼽혀…LG생건 “맞는 매물 없을 뿐 M&A 기조 그대로”
#‘꺾인’ 중국 시장, ‘더딘’ 미국 시장
LG생활건강은 중국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LG생활건강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 현지 시장과 면세를 합쳐 46%에 달한다. 2017년만 해도 중국 비중은 10% 수준이었다. LG생활건강이 중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면서 비중이 커진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중국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LG생활건강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后(후)’의 인기마저 사그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강도 높은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한국 화장품 선호 현상이 예전만 못해 큰 기대는 힘들다는 것이 증권가의 평가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를 고려했을 때 중국 화장품 산업이 추가적으로 나빠질 가능성은 낮지만 실제 시장의 기대만큼 화장품 산업이 개선될 수 있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화장품업계는 중국 시장이 부진함에 따라 북미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미 시장 구매자들은 구매력이 있고, 가격 저항성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한국 화장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차석용 부회장(현 휴젤 회장) 체제였던 2019년 8월, 북미 시장 확장을 위해 미국 화장품 브랜드인 ‘에이본’을 1억 2500만 달러(약 165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에이본의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에이본의 매출은 2022년 3790억 원에서 2023년 3251억 원으로 14.2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순손실이 각각 475억 원, 352억 원을 기록했다. 에이본은 고령자 위주의 방문 판매 사업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북미 시장은 아마존 입점 등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전략이 대세라는 평가다.
분위기를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인수합병(M&A)이다. 실제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은 2022년 10월 미국 브랜드 타타하퍼를 인수한 후 2023년 1분기엔 적자 전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북미시장에서 성적을 내고 있다. 2021년 지분 38%를 1800억 원에 인수한 코스알엑스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스알엑스는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각각 35.7%, 33.7% 증가해 각각 1845억 원, 596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말 7551억 원을 추가 투자해 코스알엑스를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북미 매출 비중은 지난해만 해도 8%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4%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과거 LG생활건강은 적극적인 M&A로 외형 성장을 이끌었다. 차석용 회장은 LG생활건강을 18년간 이끌며 28건의 M&A를 진행했다. 하지만 2021년 이정애 대표 체제로 전환된 이후 LG생활건강은 M&A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대표가 M&A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말 비바웨이브 지분 75%를 425억 원에 인수했다. 비바웨이브는 화장품 브랜드 ‘힌스’를 보유한 업체다. 비바웨이브는 색조 화장품 분야의 강자로 꼽히며 일본 시장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투자자들이 원하는 북미 지역을 목표로 한 M&A는 없는 상황이다.
올해는 중소형 화장품 M&A 시장이 만개했다. 중소·중견기업 M&A 자문 전문기업 MMP에 따르면 올해 1~8월 화장품 부문 M&A만 12건에 달한다. 대표적 사례로 폰드그룹이 지난 8월 화장품 유통회사 모스트를 인수했고, 신세계인터내셔날도 지난 8월 ‘장원영 틴트’로 유명한 어뮤즈를 인수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는 해외 시장에서 먹히고 있는 몸값 2000억 원 안팎의 기업을 찾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맞는 매물이 없어서 그렇지 M&A에 대한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며 “CNP의 립세린이 아마존에서 립버터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CNP나 더페이스샵의 제품은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차석용 회장 이동한 휴젤과 비교해보니
LG생활건강 내부적으로는 중소형 화장품 업체 인수를 끊임없이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LG생활건강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비바웨이브 인수 이후 매물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걸로 안다”면서도 “다만 과거와 달리 통 크게 나서지 않아 성과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석용 회장이 LG생활건강 시절 진행한 다수의 M&A가 꼭 올바른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M&A를 통해 외형은 성장했지만 당시 적지 않은 비용을 집행했고, 인수한 기업 중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어 LG생활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이정애 대표가 과거 인수한 기업 정상화에 집중하느라 M&A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차석용 회장은 2023년 3월 휴젤 회장에 취임한 후 제2의 ‘차석용 매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휴젤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휴젤의 매출은 2022년 2817억 원에서 2023년 3197억 원으로 13.50%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14억 원에서 1178억 원으로 16.18% 늘었다. 휴젤은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1697억 원, 영업이익 664억 원을 거뒀다. 현 분위기에서는 전년 대비 좋은 실적이 기대된다. 이는 휴젤이 미국 의료 화장품에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차석용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3월 30일 휴젤의 주가는 12만 4600원이었다. 현재 휴젤의 주가는 20만 원 중반대로 상승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의 지난해 3월 30일 주가는 59만 1000원이었지만 현재는 30만 원대에 머물고 있다. 휴젤의 주가가 많이 오르면서 차석용 회장은 적지 않은 스톡옵션 차익이 예상된다. 휴젤은 차 회장을 영입하면서 발행주식의 1%를 주당 13만 531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휴젤의 현 주가가 유지된다면 차 회장은 120억 원의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차 회장의 스톡옵션 행사는 2025년 3월 30일부터 가능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