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리스크 임계치 도달’ 여권 내부 목소리…정부·여당 지지율 동반 하락에도 “국정기조 불변” 전망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2일 김건희 특검법과 채 해병 특검법, 지역화폐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헌법에 따라 위헌적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건 대통령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위헌·위법 소지 가득한 법안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 야당 탓”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 취임 이후 24번째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30여 년간 행사된 거부권 9건(노무현 전 대통령 6개·이명박 전 대통령 1개·박근혜 전 대통령 2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본인과 배우자가 연루된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각각 세 번째와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국회로 돌아온 3개 법안은 재표결을 거쳐 최종폐기됐다. 10월 4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300명의 무기명 투표 결과 김건희 특검법 재의의 건은 찬성 194표, 반대 104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채 해병 특검법 재의의 건은 찬성 194표, 반대 104표, 무효 2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검법 통과는 막아냈지만 여당 내에서도 균열이 확산되는 기류다. 공천개입·당무개입, 디올백 명품수수 검찰 무혐의 처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잇따라 확산되면서, 여당 내에서도 우려와 불만이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그 중심엔 ‘친한계’가 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10월 1일 KBS라디오 ‘전격시사’ 인터뷰에서 “그쪽 진영에서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제일 약한 고리라 보고 집중 공격하는 것 같다”며 관리방안에 대해 “5월 10일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때 대통령께서 김 여사 문제에 사과하지 않았나. 이제 당사자만 남은 것이고,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셈이다.
장동혁 최고위원 역시 9월 30일 JTBC ‘오대영라이브’에 출연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든 해소돼야 한다”며 “방식은 지금처럼 대통령실 대변인이나 대통령실 관계자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김 여사가) 직접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계파색이 옅은 김재섭 의원도 “여당 의원들의 침묵을 김 여사에 대한 이해와 동조로 착각하면 안 된다”며 김 여사의 사과를 촉구했다.
친윤 진영에서도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등을 포함해 윤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9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킬 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도 하지 못했다. 김 여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변론을 해줄 수 없었던 것”이라며 “국민적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돌리려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한동훈 대표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는 점도 윤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 대표는 10월 3일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대해 “지금 민주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특검법은 민주당이 모든 걸 정하고 민주당 마음대로 하는 특검법”이라며 “그런 특검법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사법질서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부결시키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다만 ‘특검법이 한 번 더 넘어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엔 “미리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김건희 리스크가 계속 확산될 경우 다음 특검법 방어는 장담할 수 없다는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풀이됐다.
한 대표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SGI서울보증 상근감사)의 ‘공격 사주’ 논란을 매개로도 용산 대통령실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앞서 서울의소리 등이 공개한 전화통화 녹취록엔 김대남 전 행정관이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서울의소리 기자에 한동훈 당시 당대표 후보의 문제를 기사로 공격해 달라 사주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행정관은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후보 때문에 죽으려고 한다.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 후보를) 치면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고 김 여사를 언급했다.
한 대표는 10월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현재 정부투자 금융기관 감사인 사람이 좌파 유튜버와 직접 통화하면서 나를 어떻게든 공격하라고 사주했다고 한다”며 “국민들과 당원들이 어떻게 보실지 부끄럽고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김 전 행정관에 대해 당 자체 감찰 착수에 나섰다. 감찰 착수 사실이 알려지자 김 전 행정관은 탈당 의사를 밝혔지만, 당은 탈당 여부와 관계없이 진상 조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와 김대남 전 행정관은 친분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김 전 행정관의 녹취 내용 대부분은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난 일색이고, 다만 지난 전당대회 당시 당대표 관련 내용이 일부 있었을 뿐”이라며 “이 녹취록을 근거로 대통령실과 당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10월 3일 “나도 (대통령 부부와 김 전 행정관 친분이 없다)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의 김 전 행정관에 대한 감찰을 두고 한 대표가 용산 대통령실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야권 한 관계자는 “녹취록을 보면 김 전 행정관이 김 여사에게 사진을 보내고 보고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김 전 행정관이 대통령 부부와 관련이 없다는 얘기를 믿는 사람이 없고, 한 대표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감찰 지시를 함으로써 대통령실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높다. 거대 야당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야 할 집권당 대표조차 등을 돌릴 경우 윤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은 10월 2일 추경호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와 여당 소속 상임위원장 및 상임위 간사단을 용산 대통령실에 초청해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우리는 하나다. 다함께”라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외인 한 대표는 참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치권에서는 ‘한동훈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10월 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당정 갈등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는 국민들이 많다”며 “전반적으로 당과 대통령이 갈등하고 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정 갈등은 없지만 윤·한 갈등은 실재하냐’는 질문에는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불편한 관계를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윤 대통령이나 한 대표 모두 정치 경력이 짧고 검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권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둘 중 누군가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또 양보도 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감정싸움만 하고 있다. 마치 승자와 패자가 있는 법정 다툼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대표도 차기 행보를 위해선 윤 대통령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한 대표를 누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실타래는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용산이나 당 모두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 윤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동반 하락하는 추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4.5%포인트(p) 하락한 25.8%를 기록했다. 이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다. 부정평가는 전주 대비 4.6%p 오른 70.8%를 나타냈다.
리얼미터가 9월 26~27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43.2%, 국민의힘은 29.9%를 보였다. 전주 대비 국민의힘은 5.3%p 떨어졌고 민주당은 4.0%p 상승, 두 정당의 격차는 오차범위 밖 13.3%p였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한 것은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이다(자세한 사안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럼에도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여권 관계자들은 용산 대통령실이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0월 3일 한국일보에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건에 대해 어떻게 사과를 하라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사과하라는 뜻이냐”고 되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내부의 불만들 역시 대통령실에선 친한계의 공세 정도로 치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