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씨 “나 구속되면 한 달 안에 정권 무너져”…대통령실 부실 해명 의혹 키운다는 지적도
#여권 덮친 ‘명태균 리스크’
‘명태균’이란 이름이 중앙 정치권에 등장한 건 대략 한 달 전이다. 9월 5일 뉴스토마토는 김건희 여사가 4·10 총선을 앞두고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역구를 경남 창원의창에서 김해로 옮겨 출마하라고 텔레그램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명 씨가 그 연결다리 역할을 했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이후 명 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김 전 의원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 2023년 12월 경남도선관위는 김영선 전 의원 회계책임자 강 아무개 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창원지검에 고발하고, 김 전 의원과 명태균 씨 등 5명을 수사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 전 의원이 그해 8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약 9000만 원을 명 씨에게 준 것으로 보고 대가성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9월 30일 검찰은 명 씨와 김 전 의원 등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명 씨의 태블릿PC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대통령실은 명태균 씨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동안 대통령실이 가짜뉴스에 대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법적 조치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된다. 대통령실은 김종대 전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 씨, 부승찬 민주당 의원, 뉴스토마토, 한국일보 등을 ‘가짜 뉴스 유포자’로 고발한 바 있다.
명태균 씨는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뒤 언론에 폭로성 발언을 이어갔다. 10월 7일 명 씨는 JTBC 인터뷰에서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힌다”며 “대통령 자택에 여러 번 갔고 내부 구조도 훤히 알고 있다. 취임 이후에도 통화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이어갔다. 대선 때 내가 한 일을 알면 모두 자빠질 것이다. 내가 들어가면(구속되면)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명 씨는 채널A 인터뷰에서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검사에게 묻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통령을 협박하는 취지였다. 이를 두고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일요신문 유튜브 채널 ‘신용산객잔’에 출연, “누가 대통령 부부를 협박할 수 있을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신용산객잔’ 장성철 “명태균의 대통령 협박,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논란이 커지자 명 씨는 채널A에 “(하야, 탄핵 발언은) 농담 삼아 한 이야기”라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10월 5일 명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을 국무총리로 추천했다고 주장했다. 또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도 관여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여와 공직을 제안 받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아울러 명 씨는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본인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에 큰 역할을 한 것을 계기로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도 했다.
명 씨가 거론한 여권 정치인들은 모두 반발했다. 9월 24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명 씨의 후보 단일화 메신저 역할에 대해 “명태는 기억나도 (명태균 씨는) 모른다”며 들어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10월 7일 서울시 측은 “명 씨는 2021년 보궐선거를 도와주겠다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며 “마치 선거에 큰 역할을 한 듯한 명 씨의 발언 내용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며, 이후 명 씨와 인연이 추가로 이어진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9월 26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SNS에 “2021년 4월 26일 당대표 출마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5월 6일 마포포럼에서 이를 공식화했다”며 “5월 9일 김영선 전 의원이 명태균 씨를 소개하면서 처음 제게 연락처를 전달했다. 명 씨가 의뢰해 여론조사 기관 PNR에서 발표된 전당대회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모두 등록되어 있다. 동시기 진행된 다른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통계적으로 튀는 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10월 8일 대통령실도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통해 명 씨를 만나게 됐다”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초 자택을 찾아온 국민의힘 고위당직자가 명 씨를 데리고 와 처음으로 보게 됐다. 얼마 후 역시 자택을 방문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 씨를 데려와 두 번째 만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당시 두 정치인을 각각 자택에서 만난 것은 그들이 보안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명 씨가 대통령과 별도의 친분이 있어 자택에 오게 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경선 막바지쯤 명 씨가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 씨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 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로부터 대선 관련 조언을 듣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부실 해명 논란 키워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 씨와 최소 4번 이상 만났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박완수 경남지사,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명 씨와 함께 윤 대통령을 2021년에 만났다고 증언했다. 박 지사는 2021년 경남 창원의창 국회의원이었고, 박 지사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김영선 전 의원이 창원의창 지역구에 공천 받아서 당선됐다. 김 전 의원은 해당 공천 관련해서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김영선 전 의원 회계책임자 강 아무개 씨는 명태균 씨가 윤석열 대통령한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김 전 의원이 보궐선거 공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10월 6일 강 씨는 유튜브 채널 ‘스픽스’에서 “(지난 대선을 앞둔) 2월 28일부터 3월 8일까지 면밀 조사를 해서 3000~5000개 샘플로 조사를 해서 매일매일 윤 대통령 쪽에 보고를 한다고 명태균 대표가 저한테 전화했다”며 “정산내역서를 뽑아 놔라. (윤 대통령에게) 돈 받아올게(라면서) 3월 20일경 내역서 만든 거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는데 금액이 3억 6000만 원 정도 된다. 청구서는 지금도 갖고 있다. (명 씨가) 돈은 못 받아왔다”고 말했다.
실제 명태균 씨가 대선 여론조사에도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다. 10월 10일 노종면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명 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가 2021년 10월 국민의힘 당원 57만 명의 명부를 입수해 두 차례 대선 후보 관련 비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노 의원은 “국민의힘 또는 특정 캠프 핵심 관계자가 책임당원 정보를 통째로 넘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세론 등을 유포하는 데 쓰였다면 ‘불법적인 방식으로 실시된 조사 결과를 활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경선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친 범죄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SNS에 “노 의원이 공개한 당원 명부를 보면 모든 전화번호가 ‘0503’으로 시작하고 이름은 익명화한 안심번호”라며 “문제가 없는 명단이고, 당에서 (특정 후보 측에) 유출된 것이 아니라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당시 대선 후보 경선자들에게 공히 제공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것을 윤석열 후보 측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대통령실 또는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에게 물어보시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당원 명부 57만 건이 미래한국연구소에 유출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10월 10일 서범수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인천 강화군에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사에 따라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명 씨와 김대남 씨 같은 협잡꾼 정치 브로커들이 정치권 뒤에서 음험하게 활개 치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셨을 거다. 저도 몰랐다”며 “국민의힘에서 그런 협잡꾼이나 정치 브로커는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결연한 각오로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명태균 씨가 2022년 대선 전 윤석열 대통령한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10월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윤 대통령 부부와 명 씨, 김영선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 수사4부는 김건희 여사가 2022년 6월 경남 창원의창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김 전 의원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명태균 씨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한테 (여론조사) 보내준 거 내가 공표되는 걸 보여준 거고요. 자체 조사는 내가 필요해서 한 것”이라며 “비용 관련된 거 내가 그분들한테 청구한 적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강 씨가 이 사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 알지도 못하면서 언론에 제보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명태균은 누구? 여론조사로 영향력 차곡차곡
명태균 씨는 여론조사를 활용해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인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를 만들어 정치인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에선 그를 경남 지역의 유력한 정치 컨설턴트, 또는 정치 브로커 등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명 씨는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뿐 아니라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여론조사업체인 ‘시사경남’의 실질적 운영자로도 알려져 있다.
명태균 씨는 불법 여론조사를 돌리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두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기관 자격 없이 여론조사를 지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돼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창원시장 후보가 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한 불법 여론조사를 돌리고, 그 결과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시사경남에 게시한 혐의였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5년이 경과하기 전까지 선거권이 없다. 선거권이 없는 사람은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명 씨는 2020년 2월 8일~3월 15일 김영선 전 의원의 지지를 호소하는 글과 사진 등을 네이버 밴드에 올려 재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명 씨는 2020년 7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을 재차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명 씨는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2021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2022년 대선 등에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0월 2일 JTBC는 명 씨가 김건희 여사와 김영선 전 의원 4·10 총선 공천 관련해서 직접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등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