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주장 맞다면 ‘8만주 3300원 매도’ 또 다른 주문 있어야…7초 만에 매도 주문 불가능? 4초 만에 이뤄진 것도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 안승훈 심승우)가 지난 9월 12일 선고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통정·가장매매는 총 98건이었다. 이 중 김건희 여사 명의 증권계좌에서 발생한 거래는 47건이었다. 전체의 48% 비중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통정매매라고 적시한 사례 중 하나가 2010년 11월 1일 거래다. 이날 오전 11시 22분 2차 작전 ‘주포’ 김 아무개 씨는 또 다른 ‘선수’ 민 아무개 씨에게 “12시에 3300원에 (도이치모터스 주식) 8만 개 때려달라 해주셈”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에 대해 민 씨는 “준비 시킬게요”라고 답했다.
김 씨는 21분 뒤 “매도하라 하셈”이라고 지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7초 후 김 여사가 대신증권 직원에 직접 전화해 본인 명의 대신증권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8만 주를 3300원에 매도하는 주문을 냈다.
이를 두고 1·2심 재판부는 ‘선수’들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처럼 김 여사 계좌에서 주식 물량이 나왔고, 그 물량을 주가조작 세력이 곧바로 매수했다는 점 등을 들어 이 거래가 통정매매라고 규정했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7월 20일 진행된 검찰의 비공개 조사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통정매매에 대해서도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나 ‘선수’들과 어떠한 협의 없이, 온전히 독자적으로 판단해 자신이 직접 매매 주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가조작 선수들의 메시지 내용과 겹친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김 여사 측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박이 나온다. 1심과 2심 공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김 씨와 민 씨는 2010년 11월 1일 매매거래에 대해 준비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전대로 민 씨가 누군가를 ‘준비’시켜, 누군가가 ‘12시에 8만 주 3300원 매도 주문’을 내는데 성공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김 여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직접 매도주문을 낸 것이라면, 민 씨가 준비시킨 이는 김 여사가 아닌 제3자여야 하고, 그 제3자 명의 계좌에서도 3300원에 8만 주 매도주문을 낸 기록이 있어야 한다. 김 여사 주장이 사실이라면 2010년 11월 1일 오전 11시 44분 직후 ‘8만 주 3300원 매도’가 김 여사의 주문과 민 씨에 연락을 받은 제3자의 주문 2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당일 한국거래소 호가장에는 3300원에 8만 주 매도주문은 오로지 김건희 여사 명의 계좌에서 나온 1건뿐이다.
여권에서는 선수 김 씨가 주식 매도를 지시하고 김 여사가 7초 만에 매도 주문을 낸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장한다. 하지만 김 여사 명의의 신한투자증권 계좌에서는 앞서 2009년 7월 24일에는 4초 만에, 같은 달 27일과 30일에는 각각 9초와 7초 만에 주식 거래가 이뤄진 기록이 있었다.
검찰은 이 역시 통정거래로 봤다. 김 여사 해당 계좌 담당자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를 보면, 담당자는 이 거래에 대해 “시간 부분은 아마도 김 여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 ‘물량이 몇 주 나올 거니까, 그 물량을 잡으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가격 부분은 지정을 해주었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2010년 11월 1일 대신증권 계좌에서 8만 주를 3300원에 매도한 뒤, 판 금액보다 더 비싼 가격에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다시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SBS가 2022년 2월 입수한 사정당국 작성 김 여사 명의 증권계좌 거래내역에 따르면 김 여사는 같은 날인 2010년 11월 1일 대신증권 계좌 주식 8만 주를 매도한 이후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통해 5만 3500주를 3409원에 재매수한다.
이에 앞서 10월 28일에도 대신증권 계좌에서 10만 주를 3100원에 팔면서, 같은날 미래에셋대우증권 계좌를 통해서는 3121원에 5만 3520주를 다시 매입했다.
이는 한 달여 전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물량에 부담을 갖고 있던 모습과 배치된다. 권 전 회장 측 변호인이 검찰에 열람하여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2010년 10월 8일자 김 여사와 대신증권 담당자 A 씨의 전화통화 녹취록 일부다.
당시는 1차 작전 선수 이 아무개 씨가 작전에 실패해 주가가 횡보하고 주식 거래량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에 김 여사는 보유물량에 부담을 느껴 대신증권에 보유하고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서둘러 처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오전 9시 21분 통화 녹취록)
김건희 :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럴 땐?
A 씨 : 파악했으면 좋기는 하겠는데, 그 관련 아시는 분이.
김건희 : 아니, 그래도 일단 파는 게 좋을 것 같애.
A 씨 : 그러더라도?
김건희 : 조금 일부 팔고. 많으니까, 물량이.
그게 낫지 않을까? 일단 10만 주라도 먼저 팔까요?
A 씨 : 그래 볼게요, 그러면은.
(오전 9시 39분 통화 녹취록)
A 씨 : 그럼 27만 주 남은 거에요, 이제. 20만 주 팔았고요.
김건희 : 그 나머지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주세요.
A 씨 : 그러죠. 뭐 이제 많이 부담은 털어놨으니까.
(오전 9시 46분 통화 녹취록)그로부터 2주일 후 도이치모터스 2차 주가조작 작전이 시작됐다. 1·2심 재판부 모두 2차 작전 시기를 2010년 10월 21일이라고 적시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앞서 언급했듯 매도가보다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등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김 여사가 2차 작전세력의 시세조종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김건희 : 더 팔 수는 없죠. 아직 좀 둘까요?
A 씨 : 아직 다 파는 건 조금 리스크가 있어요.
(중략)
김건희 : 예 알겠습니다.
A 씨 : 일단 부담은 많이 덜어놨으니까.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거래에 대해 “일단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주포들의 자전거래 작전에 협조하여 김 여사가 보유물량을 내어줘 매도했다”며 “하지만 향후 작전으로 주가가 상승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수익보전 차원에 다시 자신의 보유물량을 확보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건희 여사는 2차 작전이 시작된 2010년 10월 21일 이후 미래에셋대우증권 계좌를 통해 2010년 10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9영업일 동안 42만 8910주를 집중매수한 후 2010년 11월 23일부터 2011년 1월 13일까지 전량 매도해, 두 달여 만에 37%(7억 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요약하자면 김건희 여사는 1차 작전 시기인 2010년 1월 7영업일 동안 57만 주를 대량 매집한 후 물량 부담으로 마음고생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또다시 2차 작전이 시작되자 2010년 10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9영업일에 42만 8910주의 물량을 집중 매수한 것이다. 김 여사의 이러한 행위는 김 여사가 선수들의 시세조종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2010년 10월 말은 김건희 여사의 주식거래 2회전의 기점이 되는 시기다. 김 여사 명의 증권계좌별 거래를 보면 2010년 10월 말 이전 신한투자증권·DB금융투자·대신증권 계좌 내에서 79만 주의 매수·매도가 완료됐다. 이어 2010년 10월 말 이후 미래에셋대우증권·DS투자증권 계좌에서 주식 49만 2557주를 사고파는 게 모두 소화됐다.
앞서 금융업계 관계자는 “김 여사의 주식계좌 거래내역을 보면 한 종목을 장기간 꾸준히 보유하면서 사고판 게 아니다. 특정 계좌들을 중심으로 몰아서 사서 한꺼번에 처분했다. 그게 두 번 순환한 것이다. 누군가 계획을 가지고 계좌를 관리했다고 보인다”고 주장했다. 주식거래 2회전이 사실이라면 ‘보유하고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장기간 분산 매매했다’는 윤석열 대통령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