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일가족 살인 혐의 47년간 억울한 옥살이…88세에 자유의 몸으로, 언론·경찰·법원 공개 사과 눈길
1966년 6월 30일,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살해를 저지른 후 현금을 훔치고 방화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살해된 일가족은 된장 제조공장의 전무 부부와 두 자녀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시 공장의 근로자였던 하카마다 이와오를 살인 및 방화, 강도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하카마다가 수사 선상에 오른 이유는 살해당한 전무의 체격이 건장했고 유도 유단자였기 때문에 몸싸움이 가능한 전직 복서 하카마다의 이름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카마다는 재판 과정에서 “강압 수사로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1980년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상사의 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사형수라며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했지만, 가족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하카마다의 누나 히데코는 동생의 무죄를 거듭 호소했다. 1981년 1차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7년 만인 2008년 3월 특별항고를 기각했다. 그럼에도 히데코는 굴하지 않고 2008년 4월 2차 청구를 신청한 끝에 2014년 드디어 재심 결정을 이끌어냈다. 재심 결정으로 인해 하카마다는 일단 석방됐다.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보낸 세월만 47년 7개월이었다.
사형 판결 증거였던 혈흔이 묻은 옷은 재심에서 무죄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사건 발생 시점에서 약 1년 2개월이 지난 뒤 범행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의류다. 하카마다 변호인 측은 “하카마다와 사이즈가 다른 데다, 옷에 묻은 혈흔의 유전자가 하카마다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경찰의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현장에 떨어진 흉기도 쟁점이 됐다. 약 12cm의 작은 칼로 그마저도 이가 빠져 있었다. 변호인 측은 “피해자 4명에게 합계 40곳 이상의 깊은 상처를 입혀 살해하기에는 부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재심 재판소는 ‘과거 수사 당시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9월 26일 시즈오카 법원은 하카마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여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데 대해 법원으로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검찰이 항소를 단념하면서 하카마다의 무죄가 확정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형수가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된 것은 이번이 5번째”라고 한다. 교도통신은 “진정한 자유를 갈구한 긴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고 평가했다. 사건 발생 58년 만에 완전히 누명을 벗게 된 것이다.
88세 동생의 무죄가 입증된 날, 91세 누나는 기자회견장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나 히데코는 “동생이 마침내 사형수에서 벗어나서 너무 행복하다”며 “앞으로 그가 진정한 자유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조금 더 오래 살길 바란다. 우린 평범하고 조용한 삶을 살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무죄가 확정되자 마이니치신문을 비롯해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사들은 “하카마다를 범인으로 보고 보도해왔다”며 “하카마다와 가족,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시즈오카현 경찰청 쓰다 다카요시 본부장도 하카마다의 집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1차 재심 청구가 진행됐던 31년 전, 유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법의학자 오시다 시게미 니혼대학 명예교수(81)는 “더 빨리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재판관은 제대로 과학 감정을 마주한 것인가”라고 재차 분노를 나타냈다. 오시다 교수가 법의학적 감정 의견을 제시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사건 직후의 사법해부 기록을 살펴봤더니 “이상한 점이 자꾸 발견됐다”라고 한다.
사건 당시 시즈오카현에는 의대가 있는 대학이 없었고, 사법해부는 종합병원 의사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오시다 교수는 “피해자 중 한 명인 둘째 딸에 관해서는 상처의 깊이 등 중요한 정보가 기록에서 빠져 있었다. 기본적인 것들이 적혀 있지도 않은데 사형을 확정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혔다.
오시다 교수의 감정 소견을 토대로 하카마다 변호인 측은 재심을 청구했지만, 1994년 기각됐다. 사람이 누명을 쓰고 47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면 정상적인 상태로 있기가 어려울 터다. 오시다 교수는 “부자연스러운 점을 확실히 검토했다면 하카마다를 이렇게까지 오래 가둬 두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반세기 동안 복역해 온 ‘세계 최장 복역’ 사형수의 무죄 판결에는 해외 언론도 높은 관심을 표했다. 일본을 제외하고 G7(주요 7개국)에서 유일하게 사형제도를 갖고 있는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이 판결이 일본에서 사형제도에 관한 논란을 재점화시켰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엄격하고도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되기로 악명 높은 일본의 법제도를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일본의 형사재판 유죄율은 99%를 넘어선다. 더욱이 재심은 좀처럼 행해지지 않는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사형제도가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최근 20년 동안 100명에 가까운 사형이 집행된 일본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단체는 “정신적, 지적장애를 가진 일본의 수형자가 국제적인 법률과 기준에 반하여 사형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G7 가운데 사형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일본과 미국뿐이며 일본의 경우 교수형 집행이 알려지기 몇 시간 전 변호사나 가족과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대화는 대개 불교 승려들과 나눈다”라는 실상을 알렸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번 사건이 일본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고 전하며 “한편으로는 사형제도가 일본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한 “일본 정치인들도 사형제도를 폐지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2019년 일본의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0%가 극형은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반면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사람은 9%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