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아웃사이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함” 한강 작품 평가…“K문화 성공 비결? 극적인 시대 살아온 데 있다”
한동안 연이어 터진 연예인들의 마약, 불법촬영물 사건으로 한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다소 위기감이 감돌았었다. ‘이제 한류는 끝물이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류는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했다. 바로 한국 문학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제 한류는 다시금 전세계에 위상을 드높였다. 실제 한 디즈니 임원은 최근 ‘할리우드리포터’ 인터뷰에서 “모두가 한국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가디언’은 ‘한국 문화가 세계를 정복한 비결은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구권 제작사들이 한국 콘텐츠의 ‘골드러시(황금기)’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한 “한국은 불과 수십 년 만에 고도의 성장을 일궈냈다”고 말하면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해외에서 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 그리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류의 급성장으로 문화 초강대국이라는 명성을 확고하게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헬로, 한류: 왜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나?’라는 또 다른 기사에서 ‘AFP통신’은 “2022년 한국의 문화 수출액은 가전제품이나 전기차보다 많은 약 132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였다”고 언급하면서 “한국의 문화적 성공의 비결은 모두가 ‘극적인 시대’를 살아왔다는 데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가령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내내 대립해왔고, 군사 독재, 급격한 경제 변화 그리고 민주주의로의 극적인 전환 등 역동적인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봉 감독은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혼돈과 극적인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래서 우리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한국은 창작자들에게 풍부한 영감과 자극을 제공한다. 한국은 매우 격동적인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박찬욱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 영화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 감독은 “다이내믹한 한국에서 한 번 살아보세요”라고 답했다.
‘가디언’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한강 작가는 현대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서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가장 낮은 국가다. 하지만 문화 수출의 경우 여성들이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또한 “성공이 더 많은 성공을 낳는다”라고 언급하면서 K팝 스타들의 독서 습관 역시 한국 문학의 인기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BTS(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자기계발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읽는 모습이 포착되자 해당 책이 수십만 부가 팔리는 등 열풍이 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학이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고 보도한 또 다른 기사에서 ‘가디언’은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강 작가가 이를 증명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K팝, K드라마, K뷰티에 이어 K문학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흐름에 합류했다고도 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 한국 자본주의의 그늘과 실패를 암울하게 그려냈듯 한강의 작품 역시 미화된 이미지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평하면서 “한강은 국가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다룬다. 가장 내밀한 소설조차도 한국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다소 뜻밖이었다고 말한 ‘가디언’은 “한강은 오랫동안 수상 후보로 거론되어왔던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방대한 작품을 집필했거나, 문학적 위상을 쌓은 작가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채식주의자’ 등 한강의 작품이 전 세계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면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함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또한 “한강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체로 이뤄져 있다”고 보도한 기사에서는 “그의 작품들은 신비로운 듯하면서도 강렬한 충격을 남긴다. 종종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통 사회와 역사를 힘 있게 다루며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여성 작가들의 위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뉴욕타임스’는 “몇몇 학자와 번역가들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가장 혁신적이고 도발적인 한국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 작가들이 집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한국 여성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혐오,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문학계에서는 종종 나이든 남성 작가들을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해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한강의 승리는 한국의 문화적 업적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의 업적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란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고 말하면서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2008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리에 오른 10명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또한 남성 중심의 한국 문학계가 오랫동안 고은 시인을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이자 가장 자격이 있는 인물로 지지해왔다는 점도 거론했다. 고은 시인을 둘러싼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노벨상 발표가 있을 때마다 그의 집 앞은 늘 기자들로 북적였던 반면, 한강 작가는 그에 비해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한국은 올림픽 금메달과 노벨상 수상처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라고 말하면서 “한국 현대사는 분단, 전쟁, 군사 독재,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위한 길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의 작품들 역시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동시에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여성은 여전히 정치, 비즈니스, 뉴스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 문학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 최근 영어로 번역되는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은 종종 모성이나 신체 이미지와 같은 여성들의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제들은 미국과 영국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전 세계 여성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한국의 작품들 가운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나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노골적인 페미니즘적 소재 그 이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는 덧붙였다.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에서 쓰이고 번역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30년 전에는 문학 작품만 영어로 번역되었지만 지금은 공상과학, 판타지, 회고록 등 다양한 장르가 번역되고 있다.
독일의 ‘도이체벨레’는 ‘한국 문화는 왜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이에 대해 독일 힐데스하임대 음악학 연구소의 월드뮤직센터 전무이사인 미하엘 푸어는 “한국 음악의 돌파구는 2012년 싸이의 글로벌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싸이는 K팝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데 있어 언어가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소셜네트워크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유튜브는 빠르게 성장하는 다른 스트리밍 및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함께 한류 열풍을 부추기는 데 확실히 기여했다. 소셜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음반사들은 노래나 뮤직비디오를 알리는데 있어 더 이상 방송사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팬들 역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푸어는 “K팝 팬들은 네트워크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고, 팬 문화는 매우 참여적이다”라고 말했다.
K팝 그룹 멤버들의 다양한 개성 역시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기획사는 의도적으로 여러 개성을 지닌 멤버들을 선택해서 가능한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푸어는 “팬들 스스로 자신이 아이돌의 삶에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멤버들은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한다”라면서 “판매되는 건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다. 둘이 하나의 패키지로 판매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높은 수준의 음악과 동영상도 빼놓을 수 없다. 푸어는 “서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K팝은 어딘가 새롭지만 동시에 익숙한 부분도 있다”라면서 “K팝 그룹은 미국 팝스타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낯설지 않은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찾는 청중을 겨냥한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빈곤, 과도한 경쟁 문화, 빈부 격차 심화 등 한국 콘텐츠에서 다루는 문제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 문제다. 바로 이 점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는 데 있어 유효했다고 푸어는 말한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스타일 면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들은 ‘오징어 게임’이나 다른 한국 스릴러 영화들, 혹은 화려한 K팝 스타들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작가의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는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채식주의자’에서는 가부장적 억압을, ‘소년이 온다’에서는 슬픔, 죄책감, 잔혹함, 불의를 탐구한다. 또한 한강 작가는 폭력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영향을 작품 속 등장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가디언’은 또한 한국 문화의 부흥이 과연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것인가 하는 논란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일부는 한국의 문화 발전을 그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음식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K문화의 성공이 정부의 치밀한 계획(마스터플랜)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가령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문화 정체성을 수출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주체가 바로 정부라는 것이다. 이런 기조는 우파와 좌파 정부 모두에 걸쳐 이어져 온 흐름이기도 하다.
반면, 반대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정부가 문화 산업 지원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긴 했지만, 성공은 정부 ‘덕분’이 아니라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는 것이다. 가령 2013~2017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강 작가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9000명이 넘는 예술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의 사회학 교수이자 ‘K팝:경제 혁신, 문화적 건망증, 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저자인 존 리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한류를 정부 주도적인 국가 프로젝트로만 보는 건 ‘브랜드 코리아’의 유기적 특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리 교수는 “한류를 하향식(톱다운 방식) 정부 기획 산물로만 보는 건 실수다.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유행하고 나서야 정부는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거나 외교부와 한국 대사관을 이용해 대중문화를 홍보하는 식으로 지원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리 교수는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 정부가 창작자들을 위해 한 최고의 일은 그들을 내버려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인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디지털 저널리즘학과 교수 역시 “정부는 한류와 엮이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한국 예술가들은 정부가 뒷전으로 물러설 때 가장 빛을 발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문화를 산업으로 전환하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요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화의 성공을 민관 협력의 결과라고 보는 문화체육관광부 한류콘텐츠협력과 대변인은 “한류의 세계적인 성공은 당연히 민간 부문이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 부문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한류의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콘텐츠의 국적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제 한류가 또 다시 전환점에 섰다는 사실이다. “한류 열풍은 아직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한 ‘가디언’은 지난 3월 강 교수와 가졌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소개했다. 그 자리에서 강 교수는 “다음은 문학에서 ‘큰일’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단언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은 영화, TV 시리즈, 웹툰을 통해 보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은 아직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불과 9개월 만에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