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들 ‘한강 특설 코너’ 마련, 대표작 증쇄…양국 사회문제 공감대 ‘82년생 김지영’ 등 큰 인기
#일본에서도 불티 품절사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발표일, 일본의 대형 서점 기노쿠니야 신주쿠본점은 스크린을 설치해 50여 명의 고객이 라이브 중계를 지켜봤다. 오후 8시경 한강의 수상이 결정되자 서점 안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국인 회사원(32)은 “예상하지 못해 깜짝 놀랐다”며 “한국인 최초 수상이라 기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마이니치신문에 의하면 “올해 노벨문학상은 아시아에서의 수상이 유력하게 거론됐던 터라 일본 내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단골 노벨상 후보인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5)의 수상을 내심 기대했으나 실패하자 실망한 모습도 보였다.
노벨상 발표와 동시에 일본 서점들은 발 빠르게 ‘한강 특설 코너’를 마련했다.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본점은 매대를 한강의 작품으로 채우고 ‘2024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손글씨 팻말을 달았다. 서점의 요시노 유지 부점장은 “아시아 여성 작가가 국제적으로 평가돼 매우 기쁘다”며 “다른 노벨문학상 발표 때와 비교해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등 한강의 대표작은 진열되자마자 줄줄이 팔려나갔다.
고베시에 위치한 준쿠도 서점 산노미야점에도 한강의 책이 서둘러 진열됐다. 책을 사러 왔다고 밝힌 한 고객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들었다”며 “아시아 여성으로서 최초라는 쾌거를 이뤘다. 집에 가서 바로 읽겠다”고 말했다. 서점 측에 따르면 “수상 다음 날 문을 연 직후부터 예약 전화가 쇄도했으며, 현재 한강의 많은 작품이 품절 상태”라고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번역 발간한 출판사 하쿠스이샤는 노벨상 수상 소식에 즉시 증쇄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의 수상은 당연한 결과
일본 문학비평가 가와무라 미나토는 “한국 남성 작가가 사회적 문제를 큰 관점에서 그리는 데 반해, 한강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에서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여성, 아이 관점을 통해 환상적이며 풍부한 감성으로 그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한강의 책이 젊은 세대에게 알려져 있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 더 널리 읽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규슈한국연구센터 쓰지노 유키 교수는 “한강은 한국의 아픈 역사를 정면에서 마주해 문학으로서 정교하게 엮어온 작가로 수상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강이 시인이기도 해 매우 다재다능하다”며 “문학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수상이 기쁘다”고 했다.
일본에서 한강의 작품은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가 번역돼 주목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를 일본어로 번역 발간한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한강의 작품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며 “흔히 순수문학 단행본의 경우 1만 부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하는데,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일본에서 약 2만 부가 발간됐다”고 전했다.
김승복 대표에 의하면 “과거 한국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일본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젊은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일본 젊은이들로부터 ‘한국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불황에도 한국문학은 우상향
전후 오랫동안 일본에서는 유럽과 미국 작품이 번역 문학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어서 최근에는 한국과 중국 문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창설된 ‘일본번역대상’은 일본어로 번역된 뛰어난 외국 문학 작품에 주는 상으로 제1회 대상은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차지했다. 이어 2018년(제4회)에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2022년(제8회)에는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이 차례로 선정된 바 있다.
준쿠도 서점 이케부쿠로본점에는 한국문학 특설 코너가 따로 마련됐다. 이 서점에 의하면 “2024년 1월기(2023년 2월 1일~2024년 1월 31일) 한국문학 매출은 전년 대비 5% 증가했다”고 한다. 서점 측은 “출판계가 불황인 상황에서도 한국문학은 매년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한국문학 바람이 거세진 것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계기가 됐다. 보통 일본 출판계에서는 10만 부 이상 팔리면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82년생 김지영’은 약 29만 부가 출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쓰카모토 소이치 오비린대학 교수는 “‘82년생 김지영’ 같은 한국문학이 줄줄이 번역돼 일본에서 읽힌다”며 “오락적 차원에 머물던 한류 열풍이 문학과 페미니즘 등에서도 수용되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K-BOOK진흥회’에 의하면 “2021년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 수는 2016년과 비교해 약 4배로 늘었다”고 한다. 또한, 2023년 일본어로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 작품 수는 역대 최다였다. 이처럼 일본에서 한국문학 붐이 거세진 것은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학입시, 취직, 결혼 등에서 겪는 경쟁을 비롯해 여성 차별 문제까지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비슷하다. 혹독한 수험 전쟁 끝에는 취직난이 기다린다. 소득 격차는 심해지고,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해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한국문학 작품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를 주제로 한다.
예를 들어 슈에이샤가 2023년 번역 출간한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회사원이었던 주인공이 번아웃을 겪은 뒤 작은 서점을 차려 사람들과 교류하며 서로를 위한다는 내용의 힐링소설이다. 쇼가쿠칸이 같은 해 출간한 ‘불편한 편의점’도 서울 청파동 골목의 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불편한 편의점’ 일본어판을 담당한 편집자 미나가와 유코는 “일본 독자에게도 친숙한 주제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향후 속편도 출판 예정이라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