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계, 홀대에 발끈하며 세 결집 나서…친윤계, ‘민주당 2중대’ 언급하며 반격…“해피엔딩 어렵다” 중론
#3가지 요구 '퇴짜'
10월 21일 ‘윤석열-한동훈 회동’이 끝난 뒤 통화가 이뤄진 친한계 의원들은 거친 반응을 보였다. 한 대표가 홀대를 넘어 무시를 받고 돌아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친한동훈계 초선 의원은 “용산으로 왜 부른지 알겠더라. ‘너(한동훈)는 나(윤석열)랑 겸상할 급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한 대표가 아닌, 여권 전체에 보내는 메시지로 봤다”고 했다.
그동안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구했지만 이날 회동엔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테이블 위에 손을 얹은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대표와 정 실장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자리 위치는 한 대표와 정 실장 가운데쯤으로, 이 역시 이례적이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대통령이 마치 한 대표를 훈계하는 장면처럼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친한계가 ‘발끈’한 사진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뒤로 한 비서관이 나오는 사진이다. 이 비서관은 한 대표가 ‘용산 간신’으로 지목한, 이른바 ‘김건희 라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용산이 의도적으로 이 사진을 배포한 것을 두고 ‘한동훈 망신주기’라는 말이 나온다.
한동훈 대표가 회동에서 윤 대통령에게 제안한 김건희 여사 관련 3가지 요구 역시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이날 한 대표는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 여사 대외활동 중단, 김 여사 의혹 해소 노력을 건의했다. 또 공석인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해줄 것도 요청했다.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은 이러한 내용을 밝히면서 대통령실을 압박했다.
대통령실은 두루뭉술한 답을 내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시간 20분여 동안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산책도 하고 주제에 대한 제한 없이 격의 없는 대화를 했다”면서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 되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했다”고만 했다. 한 대표와의 확전을 경계하면서도 회동의 핵심 의제였던 김 여사 문제에 답을 주지 않은 셈이다.
한 대표는 회동 내용에 대해 직접 브리핑을 하지 않은 채 바로 귀가하면서 언론에 ‘빈손 회동’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한 대표는 측근들에게 “회동 결과가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회동 다음날인 10월 22일 친한계 의원들을 소집해 만찬을 함께하면서 세 과시에 들어갔다.
#강대강 충돌 불가피
한 대표 행보를 바라보는 친윤계 분위기는 격앙됐다.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도 곳곳에서 나온다. 한 친윤 의원은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용산과 당의 공식 입장은 민주당의 정치 공세라는 것이다. 이를 방어해야 할 여당 대표가 오히려 내부 총질을 하고 있는 격”이라면서 “회동 분위기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마치 싸우고 온 것처럼 하고 다니니 당황스럽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넘어 이제는 이별 선언을 한 것 같다”며 “10월 21일 회동은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외부에 알려 이를 극대화시키는, 즉 이별의 명분을 갖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용산에서도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 내용을 두고 친한 일각에서 ‘대통령실이 왜곡·각색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어떤 부분에 왜곡이 있다는 것인지 말해 달라”고 맞받았다. 10월 22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회동에서 한 말들을 정리해 공개했는데 한 대표는 이에 대해 “용산은 지금 말의 각색을 할 때가 아니라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제안에 대해 ‘예스’냐, ‘노’냐를 말할 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가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별개로 특별감찰관을 추천하겠다고 한 데 대해서는 보수우파 정당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 조건으로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동시에 임명하라’고 여당이던 민주당에 요구했다. 그 이후 이는 당론으로 여겨져 왔다.
한 대표 측은 “그런 당론은 없었다”면서 특별감찰관을 따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실은 “북한 인권 문제는 당의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를 향해서는 “집권여당 대표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만들기 위해 보수 정당의 근간까지 허물고 있다는 취지였다.
한 대표에 대한 용산의 강경 노선이 확인되자 친윤 인사들 역시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높이면서 결집하고 있다. 원조 친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24일 한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권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과 면담이 예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가 3대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계속 압박했고 끝나고 나서는 면담 실패니 의전 박대니 이런 식으로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며 “과연 (한 대표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대통령을 설득할 능력이 있었다면 저렇게 공개적으로 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또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당사자는 한 대표다. 대표가 직접 브리핑하는 게 맞지, 박정하(당대표 비서실장)를 브리핑하게 했고 다음 날 아침부터 측근들을 동원해서 대화 내용을 다 흘렸다”며 “이게 과연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태도냐”고 비판했다.
10월 23일 윤 대통령과 만난 홍준표 대구시장도 한 대표를 연일 강하게 때렸다. 홍 시장은 10월 2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대표의 추경호 원내대표와 상의 없는 특별감찰관 임명 압박에 대해 “(한 대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원내대표 제도가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면서 “원내 사안을 대표가 감독하는 것은 몰라도 관여하는 건 월권”이라고 쏘아붙였다.
홍 시장은 당 대표, 원내대표 투톱체제를 정치에 도입한 것은 자신이 2006년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으로 있을 때였다고 설명하면서 “당 대표 1인 시대는 그때 막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치를 모르는 한 대표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였다. 홍 시장은 같은 날 다른 페이스북 글에서는 “촐랑대는 가벼움으로 나라 운영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셔야 나라가 안정된다”고 하면서 한 대표를 직격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10월 23일 기자들과 만나 친한계 만찬 회동에 대해 “무슨 계파 보스인가. 하는 게 너무 아마추어 같고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 역시 한 대표의 의도를 지적하며 “어떻게 하면 대통령 선거 후보가 돼 출마해볼까 하는 것, 그것 하나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이는 한 대표의 전면전 (도발)에 대해 전면전으로 응수하겠다는 것”이라며 “한 대표도 후퇴할 가능성이 없어 강대강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친윤계에선 한 대표의 세 결집 시도에 대해 회의적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의 친윤 의원은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 대표를 향한 기대가 큰 건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 대표의 자질과 리더십으로 다음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의원들이 많다. 세를 확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판을 오래 봐온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0월 2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한 대표로의 세력 전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유 전 이사장은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런 경우를 봤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안 움직이는 것”이라며 “한동훈 대표가 (국민의힘 의원) 5명도 못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도 한 대표의 해피엔딩이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 주력 지지층은 영남인데 영남에서 한 대표를 추인한다는 메시지가 나온다면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영남의 맹주라 할 수 있는 홍준표 시장 등이 버티고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없다. 친한계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한 대표가 공천을 준 비례의원들이 다수인데 이 사람들은 지역구 의원에 비해 전투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한 대표가 헤게모니를 쥘 수 없고 전면전의 승부는 보나마나 한 대표의 패배로 귀결된 뒤, 쓸쓸히 당을 떠난 이준석 대표의 전례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한 대표의 첫 번째 시험대는 국감 종료 직후 열릴 의총에서의 특별감찰관 관련 표결 결과가 될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