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마리 중 약 119마리만 보호시설행…매입비·시설확장 두고 환경부-동물보호단체 입장 팽팽
2024년 2분기 기준 국내 18개 농장에는 총 279마리의 사육곰이 있다. 사육곰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다. 우리나라는 반달가슴곰을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지만 사육곰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는다. 야생생물법에 따르면 사육곰은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증식 또는 재수출을 목적으로 수입 또는 반입한 곰과 그 곰으로부터 증식되어 사육되고 있는 곰’을 의미한다.
1970년대 국가 차원에서 야생동물 수입이 늘면서 웅담(쓸개) 채취용 곰 거래가 본격화됐다. 1980년대 정부는 농가 수입 증대 목적으로 곰 사육을 권장했다. 곰의 웅담·피를 채취‧판매하고 번식 후 재수출하는 것이었다. 1981년 정부 공보처 산하 극장상영용 뉴스에선 사육곰 산업을 장려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사육곰 산업이 확대되면서 개체 수는 1987년 589마리에서 1990년 764마리로 늘었다.
1993년 우리나라는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에 가입, 같은 해 국내에서 사육곰 수출입은 전면 금지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육곰 산업의 종식을 법제화하는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2026년부터 사육곰 사육과 웅담 판매는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사육곰 산업 종식에 맞춰 마련하려는 보호시설과 관련해 미진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환경부는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사육곰 보호시설을 짓고 있다. 이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에 근거해 진행됐다. 2022년 1월 환경부는 동물보호단체 등과 2026년 사육곰 사업 종식을 선언하고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2026년 1월 1일부터 곰 사육 금지 △보호시설 설치·운영 및 지원(환경부) △보호시설 이송 협력(동물보호단체) △안전하고 건강한 사육곰 관리(농장) 등이 담겼다.
문제는 사육곰을 보호시설까지 보내는 과정이다. 사유재산인 농장 사육곰들을 합법적으로 보호시설로 옮기기 위해선 농장에 매입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동물구조단체 등에 따르면 농장에 지급해야 하는 사육곰 매입 비용은 최소 1000만 원이며 평균 2000만~3000만 원이다. 사육곰 한 마리당 2000만 원이라면 18개 농장의 279마리 사육곰을 매입하기 위해 55억 8000만 원이 필요하다. 보호시설로 이동하는 비용은 별개다.
협약에 따르면 매입 비용 주체가 불분명해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곰사육 종식을 법제화한 야생생물법 개정안에도 매입 비용 부담 주체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와 관련, 지난해 야생생물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14일 기자와 통화에서 “야생생물법 개정안은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이고 매입 비용에 대해선 논의 후 법제화돼야 한다”며 “(사육곰 매입 비용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환경부가 이 비용을 동물구조단체에 부담시키려는 듯한데 단체는 사육곰을 매입할 자금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22년 협약 당시 환경부는 보호시설 건립, 즉 인프라 지원에 대해서만 협약을 맺었다”며 “매입 등 비용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최태규 대표는 “(환경부가) 협약의 자의적 해석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의 입장은 개 식용 종식을 대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행보와 비교된다. 농식품부는 지난 9월 ‘개식용종식 기본계획’을 통해 2027년 2월 7일부터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할 수 없으며 이때까지 개 식용 업체는 의무적으로 전·폐업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농식품부는 내년에 약 11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약 6000곳의 개 식용 업체의 폐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사육곰 보호·관리 등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호시설에 수용될 수 있는 사육곰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해결해야 할 일이다. 올해 12월 준공되는 전남 구례군 보호시설과 내년 12월 준공 예정인 충남 서천군 보호시설에는 각각 49마리, 70여 마리만 수용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279마리의 사육곰 중 약 119마리만 수용되고 160마리는 갈 곳이 없는 셈이다.
환경부는 남는 160마리 사육곰에 대해 △공영동물원 △민간 생츄어리 △기타시설을 활용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 생츄어리 기준·시설 조건 등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으며 기타시설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민간 생츄어리, 기타시설 조건 등이 담긴 세부적인 내용을 담은 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남은 사육곰을 수용할 수 있도록) 법인·단체 등을 민간 생츄어리로 시설 등록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12월 준공 예정인 충남 서천군 보호시설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새로운 지역에 보호시설을 짓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아직 설계 중인 서천 보호시설에 기존 사육곰 수보다 좀 더 많은 곰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확장하는 방안을 환경부가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현재 사육곰들이 수명을 다했을 때 보호시설 보존 여부에 대해 “우리나라는 대형 포유류 수용 시설이 없다”며 “사육곰 크기에 맞춰 시설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야생이나 동물원에서 더 이상 보호받기 어려운 대형 포유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