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수사 의뢰에 해당 병원 “사실무근”…법조계 “1인 1개소법 위반과 부정수급 부분 따로 봐야”
이에 해당된 병원들은 반발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9년 책임 있는 의료행위를 통한 의료행위 질의 유지를 이유로 합헌을 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1인 1개소법에 따른 부정수급에 대해서는 ‘관대한 판단’을 내려왔다.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가 이뤄졌다면 1인 1개소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수급으로 보고 환수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의료계와 법조계는 얼마 전 1심에서 유죄 판단이 나온 유디치과와 최근 1인 1개소법 위반 논란이 불거진 유명 관절 전문 A 병원을 주목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기 위한 네트워크 병원들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1인 1개소법이 어디까지 불법인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뀐 법도 법조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이 2020년 12월 말 개정돼 2021년 6월 30일부터는 의료기관 중복개설 금지 규정이 생기면서 요양급여비용 지급 보류를 처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건보공단 “9500억 원 부당수급” 경찰 수사 의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유명 관절 전문 A 병원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지난 18년 동안 1인 1개소법을 위반하고 부당하게 9529억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급여를 수급했다고 밝혔다. 앞서 건보공단은 2023년 6월 해당 병원의 의료법 위반 혐의 확인을 위해 현지조사를 실시했고, 상당한 부분에서 ‘1인 1개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A 병원의 B 대표원장은 목동에서 A 병원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고, 그 외의 부평·강북·창원·부산·인천의 A 병원은 의료법인 C 의료재단 산하다. 하지만 C 의료재단의 이사장은 B 원장의 처(의사)고, 부평 A 병원에는 동생(의사)이 근무 중이다.
건보공단이 의심하는 부분은 B 원장의 개인병원인 목동병원과 재단 산하 병원들 간 교류다. △ 의료재단의 창립총회가 B 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운영 중인 목동병원에서 열린 점 △ B 원장과 자녀들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던 법인에서 부동산을 취득해 준공을 한 뒤 이를 제3자가 원장인 형태로 운영하다 재단에 매매한 점 △ 목동병원(개인) 의사들이 재단 산하 병원 진료에 투입된 점 △ B 원장이 ‘대표원장’이라는 타이틀로 활동한 점 등을 고려할 때 B 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1인 1개소법 위반 케이스’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 병원 측은 “1인 1개소법 위반은 명백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B 원장이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맞지만 부동산 매입 등 C 의료재단의 인사나 재무 등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고 이는 전적으로 현 재단 이사장의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의료진 투입의 경우 갑작스러운 의료 인력의 공백이 발생하는 경우 목동병원의 의료진이 일시적으로 다른 병원에 투입하긴 하지만 인건비 등은 정상적으로 정산했다고 밝혔다. 또 B 원장이 대표원장 타이틀로 활동한 것 역시 C 의료재단과의 연관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그동안 쌓아온 인지도를 모든 A 병원의 발전을 위해 홍보(PR)에 활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A 병원을 향한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천지방경찰청이 내사를 진행했지만 2023년 6월 무혐의 결정(불송치)을 내렸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3개월 뒤 수사 의뢰를 했는데 현재 이 건은 서울지방경찰청에 사건이 배당돼 있다.
#유디치과 최근 1심 유죄 판결
법조계는 유디치과가 1인 1개소법 위반의 대표적인 케이스기에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유디치과 설립자 김 아무개 씨는 2012년 8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명의상 원장 18명을 동원해 22개 치과병원을 운영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2012년 1인 1개소법이 개정된 뒤였지만 이를 지속했고 결국 치과협회 의뢰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2015년 11월 당시 유디치과 대표 고 아무개 씨와 주요 지점 원장들을 재판에 넘겼지만 병원 설립자인 김 씨는 수사가 본격화하자 해외로 도망쳐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2022년 공범들의 유죄가 확정되자 검찰은 김 씨도 2023년 12월 의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고 최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경찰 수사를 통해 A 병원도 유디치과처럼 명의만 다른 병원인지 아니면 운영이 아예 다르게 된 것인지 밝혀져야 하는 상황이다. 익명의 한 현직 판사는 “가족이 나눠져서 재단과 개인 병원을 운영한다는 의심만으로 1인 1개소법 위반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결국 재단 산하 병원 경영 과정에 A 원장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며 “경찰과 검찰이 휴대폰이나 이메일 압수수색 등 자료를 제대로 확보해 이들 사이의 경영 관련 의사 결정 과정을 확인해야만 1인 1개소법 위반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9529억 원 회수는 어려울 듯”
건보공단이 주장하는 ‘9529억 원 환수’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지는 법조인이 적지 않았다. 건강보험 역사상 단일 사건 부정수급액 최대 규모지만 1인 1개소법 위반으로 드러나더라도 부정수급 부분은 ‘전액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대법원 판례 트렌드 때문이다. 2019년 대법원은 유디치과를 비롯한 네트워크병원은 불법 사무장병원과 다르며, 이들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 조치는 부당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1인 1개소법 위반과 같이 의료법을 위반했더라도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행위 자체를 부정해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9500여억 원이라는 추정액도 2006년부터 지급된 급여를 합친 것인데 2021년 6월 30일부터 적용되는 개정안을 감안하면 금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언론에 나온 이야기만 놓고 봤을 땐 수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거꾸로 A 병원 측에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며 “다만 최근 법원 판단의 흐름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가 제공됐다면 급여 부분에 대해 과도하게 회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기에 1인 1개소법 위반 여부와 부정수급 회수 여부는 따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