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담당 임직원들 구속…“검사 출신 금감원장과 기재부 출신 우리금융 회장 간 힘겨루기” 시각도
다만 법조계에서는 ‘우리은행의 온정주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인사를 위해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줄을 서는 문화’가 이번 손 전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의혹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다툼 여지 있다” 손 전 회장 측 손 들어준 법원
서울남부지법 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1월 2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받는 손 전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범행에 대한 공모관계나 구체적인 가담행위에 관한 검찰의 증명 정도에 비춰 보면, 피의자가 다툴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영장 기각을 결정했다.
검찰은 손태승 전 회장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일부 진술이 거짓으로 보이거나 과거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추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검찰의 구속 필요성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450억 원 배임.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승인된 450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이 대출 관련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거나 담보와 보증을 적정하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 손태승 전 회장의 개입 가능성을 의심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검찰이 수사에서 손 전 회장과 대출을 일으켜준 실무진이나 임원과 주고받은 연락이 드러났거나 구체적으로 보고를 받았다는 정황이 없어 애초에 영장 청구를 놓고 무리하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특히 배임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 한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손 전 회장에게 그런 고의가 있었는지는 검찰이 입증하지 못하다 보니 영장이 기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장 기각 속 드러난 우리은행의 문제
이번 수사를 통해 우리은행이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알아서 기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점은 뼈아프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손태승 전 회장의 처남 김 아무개 씨는 우리은행이나 우리금융 임직원들에게 ‘인사 청탁이 가능하다’고 시사하고 다녔다. 김 씨가 2022년 11월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우리금융의 한 임원에게 “사장을 시켜주겠다”며 사업 자금 대출을 요구한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씨는 2022년 12월에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승진시켜 주겠다고도 말했다. SBS가 공개한 녹취에서 김 씨는 “걔들도 지금 인사철이잖아. 그러니까 날 위해서 열심히 해주니까 나 도와준 놈들 내가 승진시켜주고”라고 언급했다.
손태승 전 회장 영장은 기각됐지만 이를 담당했던 임직원들이 구속된 것은 이를 방증한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를 받는 손 전 회장 처남 김 씨, 부당 대출을 주도한 전 우리은행 본부장 임 아무개 씨, 부당대출 관여한 전 우리은행 부행장 성 아무개 씨는 구속기소 됐다. 재판부가 ‘김 씨를 위해 무리한 대출이 발생한 것’을 인정한 셈이다. 특히 김 씨는 손 전 회장의 연임을 위해 돈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시사했는데, 이는 검찰이 손 전 회장과 김 씨의 관계를 ‘가깝다’고 의심하며 영장을 청구한 배경이기도 하다.
앞의 법조인은 “회장 친인척이라고 하고 회장이랑 가깝다고 하니 잘 보여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알아서 특혜를 무리하게 주다 보니 발생한 사건”이라며 “줄을 잘 서야 승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들어 낸 사고”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손태승 전 회장이 김 씨의 부탁으로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도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한 차례 영장이 기각된 만큼 손 전 회장의 구체적인 부당대출 관여를 뒷받침할 증거와 실제 인사 청탁 여부 등을 확인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뒤에 금감원?
법조계에서는 이번 수사가 ‘검사 출신 금융감독원장과 기획재정부 라인 출신 우리금융 회장’ 간 힘겨루기라는 평도 나온다.
이번 수사는 지난 8월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350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내줬다는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로 시작됐고,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금융당국에서 통보받은 내용 외에도 100억 원대의 불법 대출을 추가로 포착해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계획은 손태승 전 회장의 후임인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 등 현 경영진이 부당대출을 알면서도 봐줬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지점까지 금감원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됐다는 게 지배적인 시선이다.
실제로 손태승 전 회장 영장 기각 이틀 뒤인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정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불법 대출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인데 임종룡 현 회장, 조병규 현 행장 재직 시에도 유사한 형태의 불법 거래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손 전 회장의 혐의도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현 임원진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던진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을 두고 임 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조 행장은 최근 연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융기관 파견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검사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과 기재부 출신의 엘리트 관료였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힘겨루기 성격이 강하다”며 “손 전 회장뿐 아니라 임종룡 회장까지 수사를 확대하려는 검찰이 어디까지 증거를 확보하는지가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손 전 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와 현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 및 기소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