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 “학대 가까운 관리받고 아주 적은 임금 받아” vs JYP USA “허위·과장된 내용 일방적 공표”
케이지는 12월 6일 소속사인 JYP USA를 상대로 LA카운티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소장에서 그는 연습을 하다 부상을 입어도 적절한 의료 처치가 없었으며 정신적·신체적 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관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캘리포니아주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급 500달러를 받으며 12시간씩 일했으며 소속사가 숙소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사생활 통제를 했다는 것이 케이지의 주장이다.
소장 접수를 알린 케이지는 같은 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특정 직원들로부터 학대와 부당 대우를 경험한 후, 이 환경이 제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느꼈다”며 “저는 어떤 멤버가 자살을 시도하게 만든 작업 및 생활 조건을 지지하지 않으며, 섭식 장애를 조장하고 멤버들에게 자해를 초래한 환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JYP엔터는 다른 대형 엔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티스트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 알려졌던 만큼 해외 K-팝 팬덤 역시 케이지의 이 같은 폭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케이지에 따르면 그가 팀 탈퇴와 계약 해지를 결정한 것은 지난 5월이다. 이에 앞선 3월에는 팀 내 최연소자인 케일리(15)가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했다. 비슷한 시기 VCHA의 공식 소셜미디어(SNS)에도 멤버들의 개인 게시물 등 홍보 콘텐츠 업데이트가 멈추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팀 내부적인 문제나 재편성 등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케이지의 폭로가 나오면서 그가 언급한 또 다른 학대와 부당 대우의 피해자가 케일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케이지는 “VCHA에 남아있는 제 친구들,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 소녀들이 걱정된다”라며 “JYP엔터에 남아 있다면 제가 되고 싶은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저는 작곡과 프로듀싱을 정말 즐기지만, 회사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됐고 개인 생활에 엄청난 제한을 받으며 격렬한 노동에 대한 아주 적은 임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아동 노동 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미성년자는 캘리포니아 산업복지위원회에서 정한 최저임금과 초과 근무 시 이에 적용되는 비율에 따른 임금을 지급 받아야 하며, 연방 공정 노동 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고용주 역시 해당 법에 의거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또 주당 최대 48시간 근무가 허용되는 16~17세 청소년에 대해서도 초과 근무시 이에 따른 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노동법에 따른 현재 기준 미성년자가 받을 수 있는 최저 임금은 시간당 10.50달러다. 케이지 측은 소장에 “6개월 동안 JYP USA는 주당 500달러만 지급했는데 이는 케이지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캘리포니아 최저임금보다 놀라울 정도로 적은 금액”이라며 노동법 위반임을 강조했다. 또 소속사 측이 초과 근무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정확한 임금 명세서를 제공하거나 아예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케이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JYP USA도 즉각 반박 입장을 내놨다. JYP USA 측은 “지난 5월 케이지가 그룹 숙소를 이탈한 후 법적 대리인을 통한 논의를 요청해 VCHA의 이후 활동 계획을 잠정 중단하고, 케이지 측 대리인과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논의를 진행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 케이지 측으로부터 논의 사항에 대한 회신이 없어 당사 대리인 또한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케이지는 허위 및 과장된 내용을 외부에 일방적으로 공표하며 소송이라는 방식을 택한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는 2025년 상반기 앨범 발매 및 다양한 계획을 열심히 준비 중에 있는 VCHA의 다른 멤버들과 당사에 큰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추후 대응할 방침임을 밝혔다. 다만 명확하게 어떤 지점이 허위 또는 과장됐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대해서는 “소송 문제이므로 답변이 어렵다”고만 답했다.
이에 케이지도 재반박에 나섰다. 그는 12월 9일 인스타그램에 ‘JYP USA의 최근 성명에 대한 답변’이라는 제목으로 “회사의 책임감 부족에 매우 실망했다. 제 법무팀과 저는 제 주장이 ‘과장’되거나 ‘거짓’이 아니라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 및 물리적 증거가 충분히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진실만을 말할 것을 약속 드리며 K-팝 아이돌과 연습생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며 “앞으로 다른 연습생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내서 K-팝 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형 엔터사의 ‘현지화 그룹’, 그것도 미국에 적을 두고 있는 그룹의 멤버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 케이지의 사례가 처음이다. 국내외 K-팝계의 관심이 단숨에 몰린 이 이슈를 놓고 업계 관계자들은 미성년자가 대다수임에도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미흡했던 K-팝 산업의 어두운 면이 해외의 시선으로 재조명됐다는 점을 우려했다. 반면 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 현지 또는 현행 노동법이 적용되는 ‘노동’의 업무 내용과 그 시간이 명확하게 정의된다면 업계의 향후 사업 방향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엔터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K-팝 그룹이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데뷔를 하자마자 투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정산까지 긴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정산금을 받지 못한 채 해체되는 경우도 잦다”라며 “그렇다 보니 이들이 과연 노동 대비 적정한 금액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 해당하는 지에 대해 국내에선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고 짚었다.
이어 “노동자라면 예컨대 이들의 노동 시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정리돼야 하는데 업무에 해당하는 공연 무대를 위한 연습 시간이나 자체 콘텐츠 제작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 등이 여기 포함되는지, 포함된다면 이를 임금 책정에 적용해야 하는지도 세부적인 문제가 된다”라며 “케이지의 주장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또 이번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엔터 산업의 노동 기준이 재논의 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