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현직 프리미엄’ vs 허 ‘대중성’ vs 신 ‘공격력’…“탄핵 정국, 축구계 이슈 묻어 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
#12년 만에 벌어지는 선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경쟁'으로 치러지는 것은 2013년 이후 12년 만이다. 12년 전 허승표 후보를 누르고 정몽규 회장이 집권한 이후 그는 3선 회장이 됐으나 매번 단독 후보로 출마해왔다.
12년 동안 정 회장이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협회에 큰 파장이 없었던 덕분이다. 앞서 그는 2년동안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아 K리그에 승강제를 도입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곧장 축구협회장직에 올랐고 일부에서 호불호는 갈렸으나 이렇다 할 부침 없이 회장직을 이어오고 있었다.
취임 초기 2017 U-20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마침 대회에 나설 연령대에는 이승우, 백승호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정 회장 재임기간, 연령별 대표팀이 연달아 성과를 냈다. 이강인을 앞세운 U-20 대표팀은 월드컵 준우승을 거뒀다. U-23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3연패를 이뤄냈다.
A 대표팀은 브라질(2014년)에서 철저한 실패를 경험했다. 러시아(2018년)에서도 조별리그 탈락에 그쳤으나 독일을 잡아내며 '카잔의 기적'을 연출했고 카타르(2022년)에서는 16강 무대를 밟았다. 많은 공이 정 회장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 따가운 화살이 향하지는 않았다.
정 회장의 리더십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임기를 고려했을 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3년 초, 파울루 벤투 감독 후임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월권에 가까운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곧이어 같은 해 3월에는 징계 받은 축구인 100명을 사면하는 결정을 내려 정 회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A매치를 전후로 이사회를 열고 발표까지 이뤄져 '기습 발표'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정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결정을 철회해야 했다.
이어진 사건들은 '설상가상'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승을 공언하던 2024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4강에서 탈락했다. 결국 감독 교체 작업이 이어졌고 임시감독 체제 끝에 홍명보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홍 감독 선임 과정 또한 문제를 지적 받으며 그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와 국정감사 자리에 서야 했다. 그사이 U-23 대표팀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정 회장이 부임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시점은 임기 종료와 맞물렸다. 그는 실책이 이어지며 사퇴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4선 도전'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결국 2025년 1월 8일로 예정된 선거에 허정무, 신문선 두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허-신-정 3인의 강점과 약점
허정무 후보,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선수, 지도자, 행정가 등 축구계 모든 분야에서 활약했다. 축구라는 종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만한 얼굴이다. 다만 허 후보에게 문제는 축구협회장 선거가 대중들을 상대로 치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선거를 두고 벌인 여론 조사에서는 선호도 1위에 올랐으나 이번 선거는 200여 명의 선거인단이 나선다. 축구계 안과 밖의 여론은 다를 수 있다.
2023년 6월 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며 축구계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이따금씩 복귀에 대한 의욕을 드러내 왔다. 지난 6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더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며 "항상 준비하고 있겠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축구협회 부회장, 프로연맹 부총재에 구단 프런트 고위직(이사장)까지 거친 허 후보다. 이에 축구계에서는 "남은 자리는 축구협회장이다. 기회가 된다면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결국 허 후보는 전망대로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임명직만을 맡아왔던 그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축구인은 "대전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허 후보가 '외롭다'는 말이 많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며 "선거를 준비하면서는 인물이 모였지만 얼마나 파급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신문선 후보는 축구인 출신이지만 경쟁자 허 후보만큼의 화려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다. 대중들에게는 해설위원 활동으로 각인돼 있다. 한때 가장 인지도 높은 해설위원이기도 했으나 다음 세대에게 배턴을 넘긴 지 오래다. 2013년 성남 FC 대표이사를 1년 동안 지낸 이후 축구계 활동은 뜸해졌다. 2017년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직에 오르는데도 실패했다.
그라운드와 멀어졌던 신문선 후보이지만 '공격력'만큼은 확실하게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출마를 선언하며 한 차례 정몽규 현 회장을 향한 가시 돋친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어 12월 13일에는 추가로 보도자료를 내며 정 회장 체제의 이사들이 받는 대우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정몽규 후보는 지난 12년 동안 협회를 이끌어온 현직 회장이라는 점에서 이미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 선거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간 정 후보가 단독 후보로 출마하면 '찬성'에 표를 던지던 인물이다.
정 후보가 3선 회장으로서 임기를 1년 남겨뒀던 2024년, 그는 유독 각지의 지방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는 후문이 이어졌다. 이를 두고 축구계에서는 "4선을 앞두고 '민심'을 다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이어졌다. 선거인단으로 나설 축구협회 내 각 산하 단체, 지역 연맹 등은 장기간 정 후보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계엄-탄핵 정국이 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유독 정치인들이 정 후보에 대한 강한 견제를 이어 왔으나 탄핵과 같은 더 큰 이슈가 나오며 정 후보가 사정거리로부터 멀어졌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4년을 이끌어갈 '축구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례적인 3파전으로 진행되는 선거 결과에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