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이슈’ 맞물려 애경산업 제품은 물론 AK플라자 서비스까지 영향…최종 사고 책임 결과에 촉각
애경그룹은 지주사인 AK홀딩스 아래 제주항공과 애경산업(생활용품·화장품), AK플라자(백화점), 애경케미칼(석유화학), AM플러스자산개발(부동산) 총 5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 내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온 기업이다. 제주항공의 지난해 매출은 1조 7240억 원으로 전년(7025억 원) 대비 145.4%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98억 원으로 흑자전환을 했다. 지난해 각 계열사의 영업이익을 보면 △애경산업 619억 원 △AK플라자 –269억 원(손실) △애경케미칼 451억 원 △AM플러스자산개발 8억 2861만 원으로 제주항공이 월등히 높았다.
제주항공은 이번 참사 이후 항공권 예약 취소가 잇따르면서 현금 유출 부담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참사가 일어난 지난달(12월) 29일부터 30일 오후 1시까지 약 6만 8000여 건의 항공권 취소가 이뤄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소비자들이 제주항공 항공권을 취소해 환불을 받았다는 인증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은 오는 3월 29일 이전까지 출발하는 국내·국제선 전 노선의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해 환불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실적, 브랜드 이미지 등을 생각하면 참사 원인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며 “제주항공에도 긴장감이 맴도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애경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애경그룹 불매’라는 글과 함께 애경산업에서 판매하는 생활용품과 화장품 목록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목록에는 △스파크 △울샴푸 △2080 치약 등 다수의 상품이 올라 있다.
과거 큰 논란이 됐던 가습기살균제 문제도 재부상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를 제조·유통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원심 판결(금고 4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자 소비자들의 분노 여론이 심상치 않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파기환송 이슈가 최근 수면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 제주항공 참사까지 발생해 애경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사 불똥은 애경그룹의 백화점 부문인 ‘AK플라자’에도 튀고 있다. 현재 AK플라자는 백화점 4곳(수원·분당·평택·원주)과 쇼핑몰 7곳(홍대·성수·인천공항·세종·기흥·광명·금정)을 운영 중이다. 지난달 31일 AK플라자 홍대점 인근에서 만난 김희현 씨(24·여)는 “AK플라자가 제주항공 계열사인지 X(구 트위터)를 보고 알았다”며 “제주항공, 애경, AK플라자 등 참사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기업명만 들어도 참사가 떠올라서 이용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AK플라자 홍대점에 종종 방문했다는 서울 마포구 주민 이정희 씨(39·여)는 “애경만 들어도 참사 장면이 생각난다”며 “AK플라자를 예전처럼 자주 이용할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제주항공과 애경그룹에 대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최근 계엄·탄핵 정국에서 일부 전이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연말 비상계엄 등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지면서 국민들의 멘탈리티(의식)가 많이 약해졌는데 참사까지 발생했다”며 “정치권을 향한 분노가 참사 관련 기업으로 번지면서 사고 원인이 규명되기도 전에 해당 기업을 향한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의 여론이 상당히 악화돼 있어 제주항공과 애경그룹 경영진 차원에서 발언 등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참사가 벌어지고 얼마 안 됐을 때 제주항공의 한 임원이 ‘정비 소홀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정 지었는데, 그렇다면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제주항공의 과실이 있을 시 해당 발언의 후폭풍은 만만찮을 것”이라며 “그땐 제주항공을 넘어 애경그룹 전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은 “이 문제(참사)는 항공기 정비 소홀과 관련된 이슈는 아니다”라며 “항공기 정비와 관련해선 양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애경그룹은 사고 수습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애경그룹은 지난달 29일 입장문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한 이번 사고로 많은 분들이 겪고 계신 슬픔과 고통에 깊이 통감하고 있고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하고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주항공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애경산업을 포함해 그룹 전체적으로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