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C 시장 재편 앞두고 위상 흔들, 화학·백화점 등 부진…AK홀딩스 “사고 수습에 집중”
#흔들리는 제주항공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의 계열사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4년 1~3분기 연결 기준 제주항공 매출은 1조 4854억 원으로 또 다른 핵심 계열사인 애경케미칼(1조 2832억 원)보다 많았다. 같은 기간 제주항공 영업이익은 1202억 원이었다. 애경케미칼과 애경산업 영업이익을 합해도 611억 원으로 제주항공에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제주항공을 비롯해 애경케미칼, 애경산업, AK플라자, AM플러스자산개발을 공정거래법상 자회사로 두고 있다. 애경그룹은 2015년 제주항공 코스피 상장 등으로 외형을 확장해 2019년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정확한 원인 규명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콘크리트 둔덕 위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버드스트라이크(조류충돌) △엔진 결함과 정비 불량 등이 이번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단 제주항공 측은 “항공기 정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신뢰도 하락은 불가피해졌다.
당장 예약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2024년 12월 29일부터 30일 오후 1시까지 국내선 약 3만 3000건, 국제선 3만 4000건의 항공권 예약 취소가 발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은 2606억 원의 선수금을 보유하고 있다. 항공사 선수금은 고객이 항공권을 예약할 때 미리 결제한 금액이 대다수다. 선수금은 항공사가 유동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약 취소가 이어지면 제주항공은 보유 현금으로 환불을 진행해야 한다.
더욱이 국내 LCC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고된 상황이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통합 LCC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관련기사 ‘큰집’만큼 복잡한 ‘작은집’…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통합 고차방정식). 사모펀드 운용사 VIG파트너스가 최대주주인 이스타항공은 잠재 매물로 꼽힌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2대 주주인 대명소노그룹은 두 회사 경영권을 노릴 수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LCC 1위인 제주항공도 LCC 매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분간 제주항공은 현상 유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제주항공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제주항공 손실은 더욱 늘어난다. 항공안전법에 따라 항공운송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나 항공운송사업자가 항공종사자 감독에 상당한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해 항공기 사망자가 150명 이상 200명 미만 발생한 경우, 운항증명이 취소되거나 150일 이상 180일 미만 기간 동안 무안~방콕 노선의 운항정지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운항정지 처분이 이용자 불편 등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운항정지 처분 대신 100억 원 이하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와 관련,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조사를 통해 사고의 주요인과 기여 요인이 나온다. 제주항공의 정비 불량 등이 기여 요인으로 판단된다고 해도 행정 처분이 나올 수 있다”며 “국토부는 안전도에 따라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을 배정하는데, 슬롯 배정에도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애경그룹 전반으로 번지는 불길
애경그룹 다른 계열사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애경케미칼의 2024년 1~3분기 매출액은 1조 2832억 원, 영업이익은 177억 원이다. 매출은 2023년 같은 기간보다 6.5%, 영업이익은 51.8% 줄었다. 애경케미칼은 PVC(폴리염화비닐)에 들어가는 가소제 생산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가소제 사업 부문은 2024년 1~3분기 영업적자 69억 원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올해도 애경케미칼의 실적 반등은 불투명하다. PVC는 중국 건설경기 침체로 수요가 위축됐다. 건설경기 회복 시점은 예상하기 어렵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팀 팀장은 “중국이 경기 부양 정책을 펴도 부동산 공급이 이미 포화 상태라 투자가 많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라며 “다만 중국에서 산업단지 쪽 설비나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형태의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생활용품·화장품 사업을 영위하는 애경산업도 실적이 부진하다. 2024년 1~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080억 원, 435억 원이었다. 2023년 1~3분기보다 매출은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6% 줄었다. 중국 내 화장품 수요 부진이 영향을 끼쳤다. 애경산업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34.2%다. 이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68.5%다. 이지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비 경기의 근본적 반등을 예상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AK플라자도 ‘명품 없는 백화점’이라는 차별화 전략이 먹히지 않으면서 2020년부터 매년 적자 기록 중이다.
제주항공 주가 하락도 AK홀딩스에는 부담 요인이다. 줄곧 내림세였던 제주항공 주가는 12월 27일 8210원에서 참사 후인 12월 30일 7500원으로 8.64% 하락했다. 2022년 9월 AK홀딩스는 제주항공 보통주를 담보로 EB 1300억 원을 만기이자율 3.0%에 발행했다. EB 투자자는 2024년 9월 6일 이후 3개월마다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해 9월과 12월 조기상환이 청구돼 EB 잔액은 837억 원이다. 교환가액은 1만 5050원으로 제주항공 주가보다 한참 높다. EB 투자자가 이자를 포기하고 조기상환청구권 행사를 서두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지분을 담보로 주식담보대출도 받았다. 2024년 12월 9일 기준 AK홀딩스는 보유한 제주항공 주식 약 4324만 주(지분율 53.61%) 중 약 2670만 주(지분율 33.10%)를 담보로 총 1540억 원을 대출받았다. 대출별 담보유지비율은 120~180%다. 이미 담보유지비율을 하회하는 계약 건들이 있다. 차주 요구가 있으면 AK홀딩스는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대출 일부를 상환해야 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추가 담보 요구는 차주별로 상이하다. 다만 차주도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부분은 선의를 베풀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가습기살균제’ 사태까지 거론되며 애경그룹 브랜드 불매 운동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애경산업은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돼 다수 사상자를 낸 SK케미칼 제조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이력이 있다. 한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는 “가습기 살균제와 제주항공 사고 책임자 애경그룹”이라며 애경그룹 브랜드 목록을 공유했다.
이와 관련, AK홀딩스 관계자는 “우선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제주항공 주식 담보로 EB를 발행하거나 대출을 받은 것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 주가가 내려가니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항공사 최초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되나
정부가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는 재해 대상자가 근로자인지 시민인지에 따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는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거나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 산업재해는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이 원인이 돼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재해다.
국토부는 항공기를 공중교통수단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는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내놓은 중대시민재해 해설서를 통해 이번 사고와 유사한 가상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당시 국토부는 착륙 도중 기체 결함으로 인한 추락으로 1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 중대시민재해 범위·원인·재해규모를 모두 충족한다고 밝혔다.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인 또는 기관은 양벌규정에 따라 50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소속 조사관이 현재 현장에 파견돼 조사하고 있다.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는 항공기 ‘블랙박스’로 불리는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에 있다. FDR은 자료저장 유닛과 전원공급 유닛을 연결하는 커넥터가 분실된 상태로 발견됐다. FDR은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이송해 분석하기로 했다.
이번 참사로 제주항공 근로자(승무원)가 숨졌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가 적용될 여지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시민재해, 특히 항공사고는 국토부 소관이기 때문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전담한다”며 “제주항공 근로자가 숨진 가운데 법인·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중대산업재해에도 해당한다. 국토부 조사 결과를 보고 적용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