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정지 이기흥 3선 도전, 반이기흥 단일화 무산 6파전…투표율·투표시간 등 주요 변수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2024년 말까지 3선 도전과 관련, 침묵을 이어왔다. 2024년 11월 12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이 회장 3선 연임안을 의결할 때까지도 이 회장은 별 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12월 23일 이 회장은 3선 도전 의지를 본격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검찰, 경찰, 국회, 국무조정실, 감사원 등 거의 모든 국가 권력기관이 대한체육회 조사에 나섰다”면서 “여기서 물러서면 전방위 압박에 굴복하고 모든 걸 인정하는 것 같아 (3선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출마 선언이었다.
체육계 안팎에선 예정된 수순에 따른 출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3선 도전은 필연적인 시나리오였다”면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회장이 노리던 ‘대정부 투사’ 명분이 부각될 수 있는 타이밍까지 갖춰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기흥 대 반 이기흥 구도가 상당히 복잡하게 짜인 상태로 선거전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 회장 3선을 저지하려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선 주자는 총 5명이다. 김용주 전 강원도체육회 사무처장,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 오주영 전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가 ‘반 이기흥 전선’에서 각자 깃발을 들어 올렸다.
2021년 치러진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4자 구도로 치러진 바 있다. ‘반 이기흥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재선에 반대하는 표가 분산됐다. 이 회장은 46.4%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종걸 전 민주당 원내대표, 유준상 전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 정치권 인사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각각 3위와 4위에 머무르며 고배를 마셨다. 2위는 25.7% 득표율을 기록한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가 차지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도 ‘반 이기흥 전선’은 단일대오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단일화 노력이 있긴 했다. 두 차례에 걸쳐 단일화 추진 회동이 이뤄졌다. 12월 17일 결성된 1차 회동엔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유승민 전 대한탁구협회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이 모였다.
12월 22일엔 2차회동이 있었다. 이날 회동엔 유승민 전 회장이 빠지고,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이 참가했다. 두 차례에 걸친 단일화 회동은 아무런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단일화를 촉구하며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유승민 전 회장,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은 각개전투 의지를 표명했다.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와 박창범 전 대한우슈협회장 사이에서만 단일화가 성사됐다.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가 후보 등록을 마쳤고, 박창범 전 회장은 강신욱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른바 ‘스몰 텐트’ 단일화다.
지난 선거보다 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면서, ‘반 이기흥 전선’ 결집력에 대한 의문 부호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6자 구도 판세는 3선 연임에 도전하는 이기흥 회장과 ‘반 이기흥 주자’ 5명의 대결로 압축됐다. 반 이기흥 전선에선 3명이 유력 주자, 2명이 다크호스로 꼽힌다.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3명은 유승민 강태선 강신욱 후보다. 김용주 오주영 후보는 다크호스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탁구 선수 출신인 유승민 후보는 ‘젊은 패기’를 앞세우고 있고, 기업인 강태선 후보는 ‘노련함’을 내세우며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신욱 후보는 선거 경험과 ‘스몰 텐트’ 단일화를 통한 명분 확보를 기반으로 막판 스퍼트에 나설 전망이다.
한 체육단체 관계자는 “유승민 후보는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대중적인 인지도와 확장성 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면서 “수직적인 문화가 만연한 체육계에서 ‘젊은 피’인 유승민 후보가 얼마나 유권자를 결집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강태선 후보의 경우 현직 지자체 체육회장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한 득표력이 강점”이라면서 “전국단위 선거에서 얼마만큼 세를 결집할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라고 바라봤다. 그는 “강신욱 후보의 경우 선거 경력자로서 전국 각지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잘 다져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다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다는 측면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지자체 체육회 관계자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둘러싼 각종 논란으로 2024년이 시끄럽지 않았느냐”면서 “직무정지 상태인 이기흥 회장이 각종 이슈를 딛고 얼마만큼 지지세를 사수하는지 여부가 선거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비수도권, 일부 종목단체에서 이 회장에 대한 비토기류가 높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면서도 “현직자이기 때문에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관측했다.
변수는 대한체육회장 선거 방식이 꼽힌다.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2300여 명 선거인단 투표로 진행된다.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인단 마음을 얻는 후보가 ‘체육 대통령’이라 불리는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할 수 있다. 한 종목단체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반 이기흥 전선’에서 선거인단 투표의 맥을 잘 짚은 후보가 이기흥 회장과 표 대결을 펼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인단 투표 양상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전혀 다르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누구의 지지세가 강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선거는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역대급 ‘깜깜이 선거’”라고 했다. 그는 “이기흥 회장이 여러 리스크를 안고 3선에 도전했기 때문에 선거 자체가 훨씬 치열할 것”이라면서 “한 표 한 표가 굉장한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본다”고 했다.
투표율도 중요한 변수다.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1월 14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된다. 전국 투표소는 이곳 하나다. 투표 시간으론 2시간 30분 정도가 주어질 계획이다. 비수도권 지자체 체육회 일각에선 ‘보편적 투표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 선거인단이나 경기 스케줄이 한창인 동계 종목 관련 선거인단은 투표 참여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은 대한체육회장 선거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6자 구도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는 30% 득표율을 선점하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기흥 회장이 득표율 30%를 사수할 수 있을지가 첫 번째 관전 포인트”라면서 “‘반 이기흥 전선’에서 30% 득표율을 얻는 후보가 나타난다면 선거 판세가 요동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