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길목에 좁은 활주로 폭, ‘부등침하’ 위험도 제기…외양포 주민들 우려, 부산시·국토부는 예정대로 추진
국토교통부가 2023년 12월 29일 발표한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은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666만 9000㎡(201만 7373평) 규모로 지어진다. 국토부는 2029년 12월까지 활주로 1개와 평행유도로 2개, 여객·화물터미널, 주차장, 계류장과 같은 공항 필수시설을 먼저 완공하고 2030년까지 공항 지원시설 등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는 13조 4913억 원으로 공공 재정사업 발주 중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다. 사업시행자인 국토부가 공사비 12조 5192억 원과 보상비 3127억 원을 들인다. 여기에 여객 터미널과 접근도로·철도 등의 사업비까지 더해지면 그 금액은 최소 15조 원을 넘어선다.
#예정 구역 상공 지나는 철새 이틀간 6400마리
문제는 가덕도신공항이 ‘조류충돌(버드스트라이크)’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 곳이라는 점이다. 신공항이 들어설 지역은 낙동강 하구에서 7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곳은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다. 2022년 환경운동연합은 신공항 활주로 예정 구역 상공을 지나는 철새가 이틀간 6400마리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3년 4월 국토부가 발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현지조사에서 발견된 조류 52과 187종 중 법정보호종은 37종이었다. 이 가운데 천연기념물은 20종, 멸종위기 야생동물은 27종, 해양보호생물도 총 7종이나 있다.
2024년 12월 31일 일요신문이 방문한 가덕도에선 다양한 종류의 새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가덕도 눌차만과 새바지에는 오리떼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대항마을과 외양포 상공엔 각종 새들이 무리 지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김현욱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활동가는 “가덕도 연대봉 인근에 활주로가 건설된다고 하는데 해발 약 500m의 연대봉은 새들 길목이다. 새들은 연대봉을 향해 기류를 타고 오기 때문에 공항 건설 시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등 조류 충돌 위험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활주로 폭이 좁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가덕도신공항에 지어질 활주로 길이는 3500m, 폭은 45m다. 활주로 길이는 인천공항과 비교해 500m 정도 짧지만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좁은 폭이다. 45m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최소 기준에 불과하다. 반면 비행기 날개폭은 최대 80m다. 이에 안재권 부산시의원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중장거리 항공편과 대형 화물기를 안전하게 이·착륙하기 위해선 활주로 폭을 60m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매립지가 부실한 곳에 세워진 건축물의 기초 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부등침하 위험도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국수봉 등 가덕도 일대의 산을 깎고 바다를 매립해 건설된다. 공항 부지가 육지와 해상에 걸쳐 있다는 뜻이다. 육지의 지반은 단단하고 바다 아래 지반은 그보다 연약하다. 기초가 다른 두 지반을 연결해 부지를 건설하면 한쪽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크다.
역대급 규모의 공사임에도 부지조성 공사 입찰에 나서는 건설사가 없어 네 차례 유찰 끝에 2024년 10월 공동수급(컨소시엄) 형식으로 계약이 이뤄진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빠듯한 기간과 높은 난이도의 공사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이처럼 다양한 위험 요소와 별개로 가덕도신공항 사업은 여야 양측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을 공개 지지했고 바로 다음날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그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선거용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정부의 신공항 추진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신공항 건설의 명목이 됐다. 공사 기간은 2029년으로 당겨졌다. 엑스포 유치는 불발됐지만 사업은 계속됐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첫 일정으로 부산을 찾아 가덕도신공항 개항을 약속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가덕도신공항이 속도전에 치중하느라 위험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무리하게 건설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현욱 활동가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환경성, 안정성, 경제성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충족하지 못 했음에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명목으로 이례적으로 빠르게 추진된 사업이다. 그런데 유치가 불발되지 않았냐”며 “목적이 사라졌음에도 정부는 단축된 공사 기간을 그대로 적용해 밀어붙이고 있다. 관계부처에 문제를 제기하면 ‘특별법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라에서 빌려 농사짓던 땅…토박이는 또 쫓겨날 위기
활주로와 터미널 등 핵심 시설이 건설되는 대항동 외양포마을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 주둔지였다. 일본군에 의해 원주민들이 쫓겨났고 광복 이후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마을 전체가 국방부 소유다. 광복 후 돌아온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땅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주장도 했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외양포 주민들은 토지 사용권만 있을 뿐 임대 형식으로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주민들은 정부를 이기기 어렵다고 여기는 듯했다. 외양포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 A 씨(78)는 “부모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농사도 임대료를 내고 지어야 했다. 나라에서 ‘여기다 사업하겠다’고 도장 찍어버리면 우리가 무엇으로 반대할 수 있겠나. 보상이나 많이 주면 받고 나가는 거지”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오랜 시간 대화 끝에는 진심을 내비쳤다. 산봉우리 위에서 한동안 마을을 내려다보던 A 씨는 “사실 공항이 지어지지 않으면 평생 살고 싶다. 내 고향인데 이제 와 어딜 가서 살 수 있겠냐”며 탄식했다. 그는 등 뒤로 펼쳐진 산을 가리키며 “외양포는 위험하다. 지리적으로 태풍도 엄청 불고 까마귀 떼도 많다. 공항을 짓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외양포는 태풍 길목으로 2002년 태풍 매미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부산 시민들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보면서 가덕도신공항을 떠올렸다. 같은 날 대항 전망대에서 만난 부산시민 B 씨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뉴스로 보고 바로 가덕도신공항이 생각났다”며 “직접 와서 보니 새가 너무 많다. 안전이 제일인데 부산에 공항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부산시와 국토부는 계획대로 신공항 건설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5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신공항을 언급했다.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평가는 2025년 말까지 진행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환경부 등 유관부처와 협의를 통해 가덕도신공항 조류 충돌 위험 관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