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권’ 언급 사전 모의 정황…수방사 국회 진입, 중앙선관위 점거 등 구체적 폭동 행위 적시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 4명”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83쪽 분량의 김용현 전 장관 공소장에 ‘윤석열’은 88회, ‘대통령’은 152회 등장한다. ‘대통령’이란 단어는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수방사령관 공소장엔 138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소장엔 140회 적시됐다. 5명의 공소장 목차는 △국정 상황에 대한 윤 대통령과 피고인 등의 인식 △주요 군지휘관들과의 모임과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 토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임명 후 비상계엄 사전 모의 및 준비 △주요 군·경찰의 비상계엄 선포 전 상황 △하자 있는 국무회의 심의 및 비상계엄의 선포 △구체적 폭동 행위 등으로 똑같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024년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김용현 전 장관(당시 대통령실 경호처장)과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정원장, 여인형 사령관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비상대권’ 이야기를 꺼냈다.
이후 김용현 전 장관은 2024년 4월 중순 한남동 경호처장 공관에서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과 저녁을 먹으면서 “노동계, 언론계, 이런 반국가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2023년 11월 중장으로 함께 진급한 3명의 사령관은 이날 만남을 통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3명의 사령관은 2024년 5월경 평일 저녁 서울 강남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종종 말하는 계엄의 현실성에 대해 논의했다. 2024년 6월 중순 김용현 전 장관은 삼청동 안가에서 마련된 윤 대통령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과 강호필 당시 합동참모본부 차장(현 지상작전사령관)을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 4명”이라고 소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비상대권’ ‘비상조치’를 줄곧 언급했다. 2024년 5~6월경 삼청동 안가에서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말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대통령 관저에서 “현재 사법체계 하에선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끝난 뒤엔 직접 준비한 음식들로 김용현 전 장관,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 등과 식사하면서 관련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 구체적인 모의 및 지시
2024년 11월 9일 비상계엄 사전 모의 정황이 포착됐다. 이날 김용현 전 장관이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 공관 2층에서 식사하던 중 윤 대통령도 합류하게 됐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에 관해 이야기했고,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될 경우 특전사·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곽 사령관은 “예하 부대 준비태세를 잘 유지하겠다”고, 이 사령관은 “출동 태세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이 사령관에게 수방사의 부대 편성 등에 관해 물었고, 이 사령관은 개략적인 부대 편성과 국가 중요시설이 위험할 때 수방사가 어떻게 출동하는지를 설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2024년 11월 24일 윤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에서 야당의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제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 검사 탄핵 가능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북한 파병과 무기 지원을 둘러싼 야당과의 대립 등을 걱정하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고 말하면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용현 전 장관은 조만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결심할 때를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비상계엄에 필요한 △계엄선포문 △대통령 대국민담화문 △계엄포고령 초안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국군 기무사령부(현 국군 방첩사령부) 주도로 만든 계엄 문건과 과거 비상계엄 포고령 등을 참고해 작성했다.
김 전 장관은 2024년 11월 30일 여인형 사령관에게 “조만간 대통령이 계엄을 결정할 것이다. 계엄군이 국회를 통제하고, 계엄사가 선관위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갖고 있는 헌법상 비상대권의 일환이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2024년 12월 1일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지금 만약 비상계엄을 하게 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등을 물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수도권에 있는 부대들에서 약 2만~3만 명 정도 동원이 되어야 할 것인데, 소수만 출동한다면 특전사와 수방사 3000~5000명 정도가 가능하다”며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이 필요하다”라고 보고했다. 윤석열이 “준비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고, 김 전 장관은 미리 준비했던 초안들을 보고했다.
12월 1일 김 전 장관은 곽종근 사령관에게 “계엄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당 당사, 여론조사업체 ‘꽃’에 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를 투입시켜 시설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곽 사령관은 국회, 선관위 등에 각각 투입할 부대를 미리 특정했다. 같은 날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은 정보사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김봉규 정보사 신문단장(대령), 정성욱 정보사 100여단 2사업단장(대령)과 만나 선관위 서버 확보 등 계엄 시 선관위 장악 계획을 논의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국헌 문란코자 폭동 일으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갈등,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작 등으로 국정운영이 어려워졌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는 헌법상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병력으로써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계엄법상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인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절차적 요건을 지키지 않은 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국무회의에 의안으로 제출하지 않았고, 국무회의 정족수 11명이 모이기 전에 국무총리 및 소수 국무위원들과 비상계엄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했을 뿐이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국무회의 안건 내용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통보만 받았다고 한다. 국무회의의 간사인 행정안전부 의정관에 의한 국무회의록도 작성되지 않았다.
아울러 김용현 전 장관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거치지 않은 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비상계엄의 선포를 건의했다. 계엄법 제2조 6항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등의 상황일 때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관련기사 누가 봐도 전시·사변 아닌데…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위법 소지 따져보니).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이유, 종류, 시행일시, 시행지역, 계엄사령관을 공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또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것도 적법하지 않았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이라고 규정하며 구체적 폭동 행위를 공소장에 적시했다. 12·3 내란 사태 당시 벌어졌던 △경찰의 국회 외곽 봉쇄 △수방사와 육군특수전사령부 병력의 국회 진입 및 비상계엄 해제 의결 방해 시도 △국회의원, 정치인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조 편성 및 운영 △중앙선관위 등 점거·서버반출 및 주요 직원 등 체포 시도 등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며 위법·위헌적인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윤 대통령은 이진우 사령관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된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3분 이후에도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이후 내놓은 해명과 정면 배치된다. 2024년 12월 12일 윤 대통령은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며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으면 바로 병력을 철수할 계획이었다.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국회의원)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다수의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과 선관위 관계자들을 체포·구금 등으로 강압함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의회제도를 부인하고, 선관위와 정당을 장악하고 전산 자료를 무단으로 확보하고, 영장주의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상의 기능을 소멸시킬 목적, 즉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기로 모의 및 준비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지목한 셈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