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를 꿈꾸며 벌이는 격렬한 집단놀이
그렇다면 고놀이의 원형 격인 고싸움놀이는 과연 어떤 민속놀이일까. 국가무형유산인 ‘광주칠석고싸움놀이’를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광주칠석고싸움놀이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다. 일반적으로 ‘고’란 노끈 따위의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둥그런 모양으로 맨 것을 의미하는데, 거대한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의 주재료는 볏짚이다. 한 편의 고싸움놀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보통 400~500다발의 볏짚이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볏짚으로 세 가닥의 줄을 꼬아 놓고 이 줄들을 다시 함께 꼬아 어른 팔뚝만큼 굵은 동아줄을 마련한다. 그 후 동아줄의 한 쪽에 통대나무를 대고 칭칭 감고 둥글게 구부려 타원형의 고머리를 만든다. 그런 다음 줄 끝을 다른 줄에 대고 두 줄을 묶어 고몸체를 만드는데, 그 속에도 통나무를 대고 칭칭 감는다. 고머리나 고몸체는 사람이 걸터앉아도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크고 굵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의 몸체에는 7, 8개의 통나무(일명 가랫장)를 가로로 묶어 사람들이 메고 떠받칠 수 있게 한다. 고가 크고 무거우므로 가랫장 하나에 예닐곱 사람이 매달려 들거나, 메고 행진을 하고 대결을 펼치게 된다.
고가 만들어지면, 고싸움을 벌일 윗마을(동부)과 아랫마을(서부)이 공동으로 마을 앞에서 간단한 고사를 지내고 농악대를 앞세워 집집마다 돌며 마당밟이굿을 한다. 마당밟이는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달래어 연중 무사를 비는 민속놀이의 하나다.
정월 열엿새 날 해가 지고 달이 솟을 무렵, 고싸움놀이의 본격적인 막이 열린다. 먼저 횃불을 선두로 동부, 서부의 장정들이 고를 메고 농악을 치면서 마을을 돌며 시위를 하고 기세를 올린다. 싸움터로 나아갈 때 행렬 맨 앞에서 횃불잡이가 길을 인도한다. 그 뒤로 ‘동부는 청룡기, 서부는 백호기’의 마을기와 농기(농촌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기) 등을 든 기수들, 농악대가 서고, 고를 멘 장정들이 뒤따른다.
고 위에는 줄패장과 부장 두세 명이 올라탄다. 줄패장은 고줄을 가지고 싸우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그의 지휘에 따라 싸움이 전개된다. 따라서 줄패장은 마을에서 영향력 있고 고싸움놀이를 잘 알 뿐만 아니라 힘이 센 사람으로 선정된다. 줄패장을 보좌하는 부장들은 영기를 들고 휘두르는데, 그중 한 사람이 선소리(민요 등을 부를 때 한 사람이 앞서 부르는 소리)를 메기면, 가랫장을 멘 장정들 즉 놀이꾼(일명 몰꾼)들이 ‘받는 소리’로 “사―아 어듸허 어뒤―허” 하고 합창을 해서 기세를 올린다.
놀이꾼들은 노래에 발동작을 맞추고 전의를 돋우어 사기를 높인다. 양쪽의 고가 서로 접근하면 고를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기세싸움을 벌인다.
고싸움의 승부는 한 쪽이 상대방의 고를 덮쳐 땅에 닿게 하면 이기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 기회를 노린다. 줄패장이 “밀어라” 하고 외치면, 놀이꾼들은 고줄을 높이 들고 전진해서 상대방 고를 덮치게 된다. 이에 맞서 상대방 줄패장 역시 “밀어라” 하고 외치면 해당 놀이꾼들이 함성을 지르며 고를 들고 밀어붙인다. 고끼리 부딪쳐 고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오는 모습은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에는 일단 고를 풀어서 줄로 만들어 2월 초하룻날에 줄다리기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고싸움에서 이긴 편은 고를 메고 의기양양 자기 마을로 돌아가 마을을 돌면서 승리를 자축한다. 그때 잘사는 집에서는 음식과 술을 준비하였다가 일행을 환영하고 위로를 한다. 동시에 농악놀이가 시작되고 노래와 춤으로 한때를 즐기게 된다.
고싸움은 놀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일년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식으로 전승되었다. 고싸움에서 동부의 고줄은 남성을 상징하는 ‘수줄’, 서부의 줄은 여성을 상징하는 ‘암줄’이라 하는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그런 까닭에 고줄을 만들 때도 서부가 유리하도록 암줄을 수줄보다 더 크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고싸움은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한 형태로, 놀이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다지는 집단놀이로서 의의를 지닌다. 1970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광주칠석고싸움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고싸움놀이 예능보유자는 공석이며 전승교육사 이성만, 김선엽, 이영재 등이 전승교육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