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의원들 체포 저지는 집권 포기한 행동…박 이어 윤까지 탄핵, 더 이상 ‘역할’ 안할 것”
그러나 두 사람 관계는 오래가지 못 했다. 2022년 1월 5일 윤석열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를 재편하겠다며 기존 선대위 해산을 천명하면서 김종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했다. 그리고 약 3년 뒤인 2025년 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기관에 체포된 현직 대통령이 됐다.
김종인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윤 대통령이 체포된 15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있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이뤄졌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김 박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전쟁(WAR)’를 읽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밀착 관계가 담긴 이 책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출간돼 워싱턴 정가를 긴장시켰다. 트럼프 집권 2기 출발선상에서 국제 정세를 분석하기에 참고할 만한 책으로 보였다.
인터뷰는 트럼프 당선인이 이끌어 갈 미국 정세에서 시작해 탄핵 소용돌이에 휩싸인 대한민국과 개헌, 그리고 향후 정국 전망 등으로 90분 동안 이어졌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로 전 세계가 긴장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질서가 어떻게 변할지 다들 관심이 많다. 그런데 트럼프 뜻(아메리카 퍼스트)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과거 미국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고 하는데 그땐 미국이 강자로서의 겸손한 태도를 보였을 때다. 관계국들도 이를 동경해서 도움을 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일시적으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미국도, 세계도 손해 보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본다.”
―탄핵정국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대외신용도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금의 정부는 외교를 능동적으로 준비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본다. 더군다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에선 외교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최 권한대행은 경제를 챙기겠다고 한다.
“정치 상황이 이렇게 불안정해선 경제가 잘될 수가 없다. 최 권한대행이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하지 않았나. 특히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거의 다 무너져 있다. 이 정부는 출발하자마자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책임지고 했어야 했다. 대통령 선거 전에도 윤 대통령에게 여러 번 말한 적 있다. 그런데도 재정 안정을 한답시고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적극적으로 자영업자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타이밍을 놓치면 별 효과가 없다. 다만 지금이라도 새롭게 상황 인식을 했다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 고유권한이어서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 고유 권한인 건 맞다. 그런데 ‘비상’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 않나. 비상계엄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비상계엄이 고도의 통치 행위였다’고 하는데, 아니다. 그게 아니라 윤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한계에 봉착해서 일어난 일이다.”
―야당이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지 야당 대표를 반대하는 정치를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니 정치적 리더십이 0점이라고 하는 거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회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본인이 계획하는 일을 하려면 야당과 정치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에야 야당이 싫어서 하지 않았다고 해도 총선에선 여당이 다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다. 야당 배척에만 초점을 맞추다 더 이상 정치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니 궁여지책으로 비상계엄을 한 거다. 권력이란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못할 짓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한남동 관저 앞을 지키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집권 포기를 한 건가 싶다. 관저 앞에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데 사실상 방어할 능력도 없지 않느냐. 정치인으로서 과연 옳은 행동인지 모르겠다. 국민의힘은 지도부 인식이 바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굉장히 힘들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의원내각제를 주장해왔다. 지금도 유효한가.
“사람도 문제지만 체제가 문제다. 우리 헌정 역사를 보면 늘 여소야대가 되면 탄핵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과정에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총선 과반수를 차지해서 살아났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모두 여소야대 국면에서 탄핵 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정치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정치 체제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선 바보 같은 사람도 일단 당선되면 대통령 5년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개헌을 안 하려 한다. 결국 다음 대통령이 될 인물이 나라 장래를 위해 개헌에 대한 약속을 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권력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대한민국 정치 미래가 어둡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독일은 바이마르공화국 실패 사례를 토대로 안정적인 내각제를 만들었다. 흔히 내각제를 하면 정권이 불안정하다고 하지만 독일의 경우 정권이 탄생하면 2년 안엔 불신임을 못하게 돼 있다. 차기 총리를 선출할 여건이 안 되면 현직 총리를 내보내지 못 한다. 이걸 그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시행 중인 내각제를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설사 지금의 대통령제를 유지한다고 해도 현재의 권한을 좀 축소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금의 삼권분립은 그 인사권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어 사법부의 온전한 독립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할 때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도록 헌법을 개정하면 좀 더 공정한 사법 시스템 구축할 수 있다.”
―5년 단임이라는 대통령 임기는 적절한가.
“4년 중임을 하면 더 복잡해진다고 생각한다. 중임을 하기 위해 초기 4년은 쓸데없는 포퓰리즘 정책만 펼치다 끝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윤 대통령이 집권 후 입법부와 행정부가 함께 가는 시스템을 제안할 줄 알았다.”
―윤 대통령의 어떤 면을 보고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 생각했나.
“윤 대통령 본인이 뼈저리게 경험을 한 부분이지 않나. 대통령이 됐지만 야당이 저항하고 있으니 본인이 생각한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불가하다는 걸 알았으면 체제를 바꾸려고 노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엉뚱하게 비상계엄을 해버렸으니 정치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은 무엇이 달랐나.
“내가 윤석열 후보에게 ‘별의 순간’이 왔다고까지 얘기를 해줬다. 사실 검사만 하던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지 걱정도 됐다. 세계의 정치사를 봐도 검사가 지도자가 된 예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고 검사로선 비교적 강골이기도 해서 협조를 했다. 그런데 후보 시절의 말과 후보로 확정된 다음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선대위엔 참여를 안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평생 검찰만 했고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을 국민의힘 내부에서 대통령감이 없다면서 윤 대통령을 밀었다. 당시 일반 국민 지지도가 꽤 높게 나왔기 때문에 나도 ‘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줬는데 이걸로 내게 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소 성급한 질문이지만,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여당 후보로는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유승민 전 의원 정도가 거론되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최근 출마를 결심한 것 같다. 야당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 명뿐인데 이 대표의 운명은 법원에 달려있다. 사법리스크가 있는 이 대표 말고 다른 후보가 나오게 되면 여당 입장에선 이기기 더 힘들 거라고 본다. 중요한 건 이 난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 면모를 보면 그런 고민이 없어 보인다.”
―명태균 씨와는 어떤 관계였나.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만 준 거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찍어준 것뿐이지 그 이상 특별한 관계는 없었다. 내가 명태균에게 부탁한 것도, 전화를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명태균이 나를 많이 팔아먹었더라. 내게 접근한 목적이 다른 곳에 있었던 거다.”
―탄핵이 인용되면 두 달 후 대선이다. 생각해 둔 역할이 있나.
“없다. 역할 같은 건 다시는 안 할 것이다. 올해로 딱 85세가 됐다. 나름대로 한국이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노력을 해왔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이 되더니 이제 윤석열 대통령까지 실패하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탄핵당한 대통령이 돼버렸으니 내가 오히려 국민에게 죄송하다. 아마 정치인들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거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