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헌법 위에 저항권 있다”…헌법 전문가들 “개념 제대로 이해 못한 주장”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모셔 나와야 된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가 불거진 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구치소와 헌법재판소 등에도 난입해 폭력 사태를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앞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우리는 서울구치소에 들어가서 강제로라도, 왜 국민 저항권이 최고의 권위니까, 대통령을 서울구치소에서 모셔 나와야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관련 사안이 쟁점이 됐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서울구치소가) 뚫릴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신용해 법무부 교정본부장은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신 본부장은 “경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며 “서울구치소는 경찰과 협조해 외곽 경비를 철저히 하고 있고, 경호처와도 협력해 경호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 있다. 난입을 시도하면 바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는 그 전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당일 서부지법에 난입한 이들은 매우 과격했는데 정치권에선 이들이 조직적이었으며 계획적으로 보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판사들 집무실이 있는 7층까지 올라가 영장 담당 판사 방을 정확하게 찾아내 난입한 뒤 집기 등을 파손했다. 서부지법 7층은 법원 출입기자들의 출입도 제한될 만큼 외부인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공간인데 시위대는 서부지법 난입 직후 7층으로 올라가 영장 담당 판사 방으로 향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영장 발부 판사를 찾으며 7층 판사실까지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며 “판사실 중 영장 판사 방만 의도적으로 파손되고, 그 안에 들어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봐선 이런 부분에 대해 알고 오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위대가 찾아간 방은 이날 당직판사라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의 방이 아닌 영장전담판사의 방이었다.
다행히 차은경 부장판사가 퇴근한 후 난입 사태가 벌어지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극우 유튜버 영상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일단 판사에 대한 여러 모욕적인 언급은 기본이고 온갖 협박성 발언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여러 커뮤니티에는 여러 가지 판사 살해를 모의하는 듯한 정황들도 발견된다”면서 “심지어 판사의 주소와 자녀의 정보까지도 지금 막 무분별하게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후설·사전 모의설·지휘체계 존재설
정치권에선 서부지법 난입이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법원 난입을 계획적으로 실행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으며, 배후와 지휘체계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서부지법의 구조와 취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점, 특정 계단을 통해 7층 판사실로 직행한 것은 우발적 행동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SNS를 통해 서부지법 난입 당시 수신호 지휘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X(옛 트위터)를 통해 ‘손가락으로 1과 5 등등 수신호 한 이 자가 서부지검 침탈 지휘자’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이 ‘공개수배’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보도한 뉴스1에 따르면 사진 속 남성이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락TV’ 채널의 라이브 방송과 JTBC 취재진 카메라 등에 담겼다고 한다.
배후설, 사전 모의설, 지휘체계 존재설 등의 의혹은 검경 수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전담수사팀을 꾸려 엄정 대응에 돌입했다. 빠르고 정확한 수사만큼이나 대비도 중요하다.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서울구치소, 헌법재판소를 다음 타깃으로 한 난입 및 폭력 사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저항권이 헌법 위에 있다고?
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국민 저항권이라는 개념도 주목받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거듭 국민 저항권을 얘기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앞 집회 때는 물론이고 19일 광화문에서 열린 ‘전국 주일 연합 예배’에서도 “이미 국민 저항권이 발동된 상태이고 국민 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며 “국민 저항권이 발동됐기 때문에 우리가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석동현 변호사 역시 지난 17일 서울구치소 앞 집회에서 “경찰이나 공수처가 대통령에 대해 반란 행위를 하고 있다”며 “도무지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저항권 행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항권은 ‘권력이나 국가기관이 헌법질서를 유린할 때 이를 바로잡고자 주권자인 국민이 나설 수 있는 권리’로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 등 해외에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에는 관련 조항이 없다. 다만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선언한 헌법 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따라 저항권이 보장된다는 게 학계 다수의 의견으로 헌법재판소도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2014년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결정에서 헌재는 ‘우리 헌법은 저항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나, 저항권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국민이 자기의 권리·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로서 헌법의 본질과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권의 보장 및 국가의 본질과 역할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밝혔다.
다만 ‘저항권은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실력적 저항이어서 그 본질상 질서교란의 위험이 수반되므로, 저항권의 행사에는 개별 헌법 조항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보충성의 요건이 적용된다. 또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하고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 대해 대다수 헌법 전문가들은 저항권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통진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저항권이 언급된 까닭은 통진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민항쟁이나 저항권 등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고 밝혔다.
저항권 개념이 보수단체들을 통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부터다. 당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 정광용 대변인이 “탄핵이 인용되면 국민 저항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등 ‘국민 저항권 행사’가 자주 언급됐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보수단체 집회에서 국민 저항권이 언급됐다. 2021년 ‘문재인 탄핵 3·1절 국민대회’에선 전광훈 목사가 “5200만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해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