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부 “고지 의무 있었음에도 안해”…피해 회사 “신뢰할 만한 금융회사가 기망”
#설비 철거 완료 기한 지났는데…
앤트버즈는 2022년 3월 8일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옛 웅진폴리실리콘(현 SK스페셜티) 상주공장 내 기계설비, 고·비철 등을 비케이탑스로부터 380억 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했다. 매입한 기계장치 등을 중고 설비로 매각하고 고·비철 등은 철스크랩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앞서 비케이탑스는 2021년 2월 2일 신라산업으로부터 설비를 310억 원에 매입했다. 비케이탑스는 설비 매수를 위한 대금을 조달하기 위해 총 300억 원 상당 전환사채를 두 차례 발행했다. 메리츠증권은 이 중 100억 원 상당 제7회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비케이탑스는 전환사채에 따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설비에 대한 동산근담보권을 설정해주는 계약을 메리츠증권과 체결했다.
이 때문에 앤트버즈는 메리츠증권이 비케이탑스에 대해 보유하고 있는 전환사채, 설비 담보권 등을 양수하는 조건의 계약도 2022년 3월 8일 맺었다. 이와 관련, 앤트버즈 관계자는 “비케이탑스의 작업이 지연되자 설비에 대한 담보권이 있는 메리츠증권의 주도로 당사가 설비 반출 계약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계약을 완료한 앤트버즈는 설비 철거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2021년 11월 25일 신라산업과 계약해 설비 매매계약에 대한 승계를 받은 SK스페셜티가 막아섰다. 설비 철거 및 반출 완료 시기가 끝났다는 이유에서다. 신라산업과 비케이탑스 간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2022년 1월 31일까지 작업을 마무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비케이탑스는 기한 내 이를 마치지 못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만약 정해진 기한 내에 처리를 완료하지 못하면 원래 주인이 임의로 잔여작업을 수행해 설비와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다. SK스페셜티는 2022년 8월 설비를 철거했다. 매매계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이기에 SK스페셜티의 철거 작업을 막을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메리츠증권, 처분권한 상실 고지 안해”
결국 앤트버즈는 2023년 8월 메리츠증권을 주위적 피고로 부당이득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앤트버즈는 “기한 내 설비 철거를 하지 못해 처분권한이 사라진 상태”라며 “메리츠증권의 담보권 효력이 상실됐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는 “메리츠증권은 처리기간 경과 시 설비 처분권한을 상실하고, 담보권으로 신라산업이나 SK스페셜티에 대항할 수 없음을 알았다고 보인다”며 “메리츠증권이 앤트버즈와 계약한 당시 설비 등에 관한 처분권한을 상실한 것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0일 메리츠증권과 앤트버즈 간 계약 취소를 인정하고 메리츠증권이 앤트버즈에 최종적으로 139억 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앤트버즈는 SK스페셜티를 예비적 피고로 추가하면서 “설비 철거 및 반출한 행위는 원고의 처분권한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처리기한 경과로 인한 처분권한은 신라산업의 지위를 승계한 SK스페셜티에 유효하게 귀속됐다”고 판단하면서 예비적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앤트버즈는 메리츠증권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2023년 11월, 검찰은 2024년 12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앤트버즈는 항고했다.
앞서의 앤트버즈 관계자는 “소비기한이 지났으나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제품을 판 격”이라며 “보통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금융기관이 당사를 기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형사소송에서 무혐의받은 만큼 민사소송에도 즉각 항소했다”고 말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