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사업 영향, 티빙 기업가치 하락 등 변수…KT “주주가치 제고에 유리한지 종합 검토 중”
#명확한 입장 없는 KT
티빙과 웨이브 합병에 대해 KT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고 않고 있다. KT스튜디오지니는 KT 미디어·콘텐츠 자회사들을 둔 중간지주사로 티빙 지분 13.54%를 보유하고 했다. CJ ENM에 이은 티빙 2대 주주다. 지난해 12월 최주희 티빙 대표는 국내 OTT 업계 정책 간담회 이후 “합병에 대해 KT가 신중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 질의에 “(KT의) 동의가 필요하다.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KT 입장에서는 판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KT의 콘텐츠·미디어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KT스튜디오지니가 지분 37.31%를 보유한 KT스카이라이프는 위성방송 사업을 펼친다. KT스카이라이프는 HCN, ENA 등 케이블 TV 채널도 보유 중이다.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해 대형 OTT가 출범하면 이들 플랫폼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KT스튜디오지니 등 KT 콘텐츠 자회사 매출은 2023년 3분기 1911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 1562억 원으로 18.3% 줄었다.
통합 OTT 경쟁력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변수다. 최근 웨이브 2대 주주인 SBS는 넷플릭스와 2025년 1월부터 6년간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었다. SBS의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 공급하고, SBS 신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작품 일부는 티빙에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티빙 주주 네이버는 넷플릭스의 손을 잡고 광고형 멤버십을 출시했다.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더라도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미디어 전략 컨설팅 기업인 오픈루트의 김용희 전문위원은 “합병하더라도 자체 제작 콘텐츠를 대폭 늘리기보다는 당분간은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 이미 누적된 투자비가 꽤 되는 데 본전을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사의 시너지가 난 이후에야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티빙의 기업가치가 떨어진 점도 KT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앞서 2022년 티빙은 KT OTT ‘시즌’을 흡수합병했다. 합병비율은 티빙과 시즌이 약 1 대 1.6이었다. 당시 합병으로 티빙 기업가치는 2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기업가치는 그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KT가 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
KT 입장에서 IPTV나 모바일과 통합 OTT를 하나로 묶어 번들(묶음) 상품을 출시할 때 자사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 김용희 전문위원은 “여러 개의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서 소비자에게 내놓을 때 단가보다 가격을 낮춰 소비자에게 내놓아야 한다”며 “누군가가 할인된 폭만큼을 부담해야 하는데 합병 OTT에 단가를 좀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KT스튜디오지니 등이 기획·제작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 활용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KT스튜디오지니는 드라마를 자체 기획·제작해 지니TV 오리지널로 편성한다. 이 콘텐츠를 ENA 채널과 지니 TV에만 선보이는 전략을 펼친다. KT스튜디오지니가 지난해 내놓은 자체 기획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유어 아너’는 인기를 끌기도 했다.
KT스튜디오지니가 가진 티빙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디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대 의사가 명확하다면 주주로서 합병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지분 매각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지분 매각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지분 매각에 대해 KT나 CJ의 상호간 필요가 있었다면 진작 해결이 됐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난해 말 KT는 미디어 사업을 통합한 조직을 신설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지만 검증하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며 “지분 매각과 관련해 계속 얘기는 나오겠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일단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에 대한 의지는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웨이브 최대주주 SK스퀘어와 티빙 최대주주 CJ ENM은 웨이브에 총 2500억 원을 투자했다. 웨이브 운영사인 콘텐츠웨이브가 전환사채(CB) 2500억 원을 신주 발행하고 이를 SK스퀘어(1500억 원)와 CJ ENM(1000억 원)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투자금으로 웨이브는 지난해 11월 28일 만기였던 2000억 원 규모의 기존 전환사채를 상환했다.
티빙과 웨이브는 주주사 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주주사들의 전략을 다 알 수는 없다”며 “일단 합병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에 합병 논의를 진행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티빙 관계자는 “주주들의 논의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양기 전 티빙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웨이브 CFO로 파견됐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KT는 국내 유료방송 전반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KT그룹과 티빙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미치는 영향과 티빙 주주로서 주주가치 제고에 유리한지 여부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