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평사들 “경제 부정 영향 간과 못해”…부처 머리 맞대고, 재계도 TF 구성
#'한국에 정치 소용돌이'
윤 대통령이 1월 26일 구속기소된 직후 외신들도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이날 영국 로이터통신은 관련 뉴스를 전하며 "한국 대통령으로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네 번째 규모 경제 대국에서 정치적 격변의 물결이 일었다"며 "유죄가 확정되면 윤 대통령은 수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CNN도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언급하며 "많은 사람에게 한국의 권위주의적 과거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렸다"면서 "이번 기소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촉발된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 전개"라고 전했다.
일부 외신은 한국 상황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고 콕 집어 지적했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검찰의 기소는 신속했으나 윤 대통령이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우여곡절이 예상된다"며 "수사에 비협조적인 윤 대통령 측과 수사당국 등의 대규모 충돌이 우려된다"고 예상했다.
미국 AP 역시 "윤 대통령 기소는 계엄령 선포로 정치 혼란을 야기하고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국제적 이미지를 실추시킨 혐의"라며 "윤 대통령이 구금시설에서 서울 법정까지 법정에 출두하는 상황이 약 6개월 이어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런 분석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폭력 사태 때도 프랑스 AFP통신은 "한국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정치적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4년 12월 20일 "5100만 한국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실패 대가를 두고두고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특히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며 '최악' '이중의 정치적 충격' 등 악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한국 경제에 유리하지만은 않은 배경 탓이다.
이 매체는 1월 20일(현지시간) "한국 정치적 충격이 경제 근심을 더했다"면서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 등으로)원화 가치 하락, 성장 둔화 등이 기존 문제에 추가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트럼프의 보호주의 무역 등이 미국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 매파가 돼 원화와 한국 성장률에 더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한국은 정치 위기로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의 로비 시도는 물론 자국의 구조적 경제 현안에 대응할 능력마저 마비됐다"고 분석했다.
#'국가신용도' 사수부터
실제 12.3 비상계엄 등에 따른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이미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상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S&P·무디스·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한국 정부를 믿어 달라'고 당부하느라 애를 먹었다.
최 대행은 각 신평사에 "한국의 헌법과 법률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므로 정치적 불확실성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의 금융·외환시장도 비상계엄 이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당국이 긴밀히 공조해 시장 안정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평사들은 "지금의 정치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당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화하면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최 대행이 자리를 마련한 자체가 불안감 때문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면 기업 신용도도 하락하는 도미노 현상이 불가피해서다. 이미 2024년 한 해에만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오른 곳보다 많다는 신평사 통계도 있다.
게다가 원화 실질 가치는 이미 세계 최하위권으로 바닥을 찍은 상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2024년 12월 말 기준 91.03으로 전월 대비 1.99포인트(p) 하락했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가졌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기준치인 '100' 이상이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로 간주된다. 한국의 이번 지수는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가운데 뒤에서 두 번째다.
와중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며 한국도 여러 과제에 놓이게 됐다.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의 경우 "미국이 통상정책을 뜯어 고쳐 한국도 안전지대에서 벗어났다"며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도 열어둬야 할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한경협이 만든 '트럼프 2기 TF'를 이끌고 있는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향후 100일이 한국 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범정부국가신용대책위원회'(신용대책위)를 출범했다. 국가신용도부터 우선 사수하자는 의지라고 한다. 1월 23일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 주재로 첫 회의를 열고, 부처별 체계를 만들어 '일관된 경제 메시지'를 마련하는 데에 뜻을 모았다고 전해졌다.
한편 한국은행은 2024년 국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0%로 집계했다. 전년 성장률(1.4%)보다는 높지만, 한은의 기존 예상치 2.2%보다 0.2%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0.1%에 그쳤다. 한은은 비상계엄 등에 따른 소비·건설 경기 위축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