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가 너무 폭력적” 유서·일기 곳곳서 괴롭힘 정황…‘몰랐다’ 주장한 MBC 은폐 의혹 도마에
#“싸가지 없는 X” 괴롭힘 속 ‘죄송하다’만 반복
2024년 9월 15일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약 4개월 만인 2025년 1월 27일 고인의 유서가 공개됐다.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에는 동료 기상캐스터들이 오보를 낸 뒤 고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가르쳐야 한다’며 퇴근한 고인을 회사로 다시 불러내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의 정황들이 기재돼 있다. 또 2022년 고인이 tvN 인기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섭외되자 “네가 유퀴즈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비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고인이 동료들에게 괴롭힘 당한 정황은 자필 일기와 카카오톡 대화 등에서도 나타났다. 2024년 7월 16일자 자필일기에서 고인은 “억까(억지로 까 내리는 것) 미쳤다. ○○는 말투가 너무 폭력적”이라며 선배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또 고인이 포함되지 않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동료 기상캐스터 4명이 고인을 상대로 “싸가지 없는 X” “후배 취급하지 말자” “몸에서 냄새 난다” “미친X이야 진짜” 등의 폭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족이 주요 가해자로 지목한 A 캐스터는 고인 사망 직전 카카오톡 대화를 통해 “주말에 방송(당직) 한 번 해줄 수 있니? 내가 다음에 해줄게”라고 물었고, 고인은 “선배님 그럼요. 그 말 꼭 지켜주세요”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유서에는 “선배님, 주말에 당직 땜빵 시키더니 비행기 표 끊으셨더라고요?”라고 적혀 있다. 유족 측은 “A 캐스터가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은 (요안나와) 친했다는 증거로 해당 대화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i’는 A 캐스터에게 입장을 묻고자 SNS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A 캐스터 외 가해자로 지목된 3명의 MBC 기상캐스터 역시 여론의 비난에 휩싸인 상황이지만 SNS 댓글을 막는 등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 이렇다 할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유족은 앞서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A 캐스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고인은 괴롭힘 당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처음 털어놓았다. 고인은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도 “엄마 괜찮아”라면서 오히려 모친을 다독였다고 한다. 고인은 모친의 권유에 따라 정신과를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상담 기록에 따르면 “회사 가면 위축되는 느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던 회사 생활” 등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패치에 따르면 고인은 불면증으로 수면제에 의존했고, 헬스클럽 코치와 글쓰기 알바 등 ‘쓰리잡’을 병행하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고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2024년 9월 6일 서울 마포구 가양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구조됐다.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고인은 “등뼈가 부러질 것 같이 아프고, 창자가 다 끊어질 것처럼 힘들어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차라리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요안나 씨 유족 B 씨는 “안타까운 것은 (요안나가) 일찍부터 친구 등에게 죽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많이 했는데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막을 수 있는 순간에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라면서 “지난해 9월 6일 병원에 갔더니 요안나가 ‘왜 왔어’라고 소리쳤지만 ‘왜 이제 왔냐’로 들렸다. 진짜 죽으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입원을 제안했지만 (요안나가) 광고를 찍어야 된다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결국 고인은 지난해 9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고 소식 왜 이제야…‘MBC 은폐 의혹’ 도마에
고인의 유서가 공개되자 1월 28일 MBC는 오요안나 씨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후 비판이 거세지자 31일 다시 보도자료를 내고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MBC 관계자는 2월 5일 처음으로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도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당한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은폐 시도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MBC 측의 은폐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유족은 사내 부고를 올리지 않아 MBC에 항의하니 ‘고위급 인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B 씨는 “MBC가 오요안나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의 증거”라면서 “MBC와 가해자 측의 침묵과 은폐, 부인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이미 많은 증거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요안나가 24시간 자신의 모든 기록을 데이터로 남겨 놨다. 죽음을 일찍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면서 “가해자들이 진실을 가리면 결국 재판에서는 위증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다. 가해자 측이 (요안나가 빠진)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을 어떻게 접근했느냐면서 정보통신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거나 ‘우리는 친했다’면서 적반하장식으로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 대 맞고 끝날 사건을 여론의 뭇매까지 열 대를 맞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인이 빠진 단체 대화방 내용을 가해자 측이 의도적으로 고인에게 유출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유족 측은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B 씨는 “만약 진짜 일부러 대화 내용을 보여줬다면 악질적인 것”이라면서 “우리가 이렇게 뒤에서 욕을 하고 있다고 알리면서 애를 죽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공론화가 늦어진 점과 관련해서도 유족 측은 MBC의 은폐가 가장 주요했다고 말한다. B 씨는 “자기 앞마당에서 애가 죽은 사건에 대해 MBC 내 수백 명 기자들이 몰랐을까 싶다. 그중에서는 사건에 대해 보도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해당 기자에 따르면 MBC 측에서 막았다고 한다. 4개월 동안 보도를 통제했다는 전언이 들리지만, MBC는 결국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설 연휴 기간 중 그(오요안나)의 안타까운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공영방송 MBC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진상조사위원회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러 문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사해 신속하게 진실을 밝혀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MBC 측은 괴롭힘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족 측은 고인이 생전 MBC 소속 아나운서, PD 등 관계자 4명에게 자신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 녹음 파일이 있다고 밝혔다. 채널A에 따르면 해당 녹음 파일에서 고인은 특정 기상캐스터에게 괴롭힘 당한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워요. 너무 말이 폭력적이야. 이게 직장 내 괴롭힘입니까? 아니면 내가 잘못한 겁니까?”라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한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이 마지막에 통화했던 사람은 특정 모임에서 한 번 만나 알게 된 20대 남성이었다. 그는 배우의 꿈을 갖고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다. 고인은 9월 14일 남성에게 전화를 걸어 계좌에 20만 원을 보내주며 “용기 내. 힘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