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업이 시작부터 정치화…투자자들 혼선 장기화 방지 목적도
![씨드릴의 시추선 웨스타카펠라호가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 떨어진 대왕고래 구조 시추 지점에 정박해 정확한 시추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사진=한국석유공사 제공](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9/1739080375488315.jpg)
산업부는 2월 6일 "대왕고래 1차 시추에서 경제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예고 없이 진행된 발표였다. 애초 산업부는 올 5∼6월쯤 중간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경제 영향을 고려해 일정을 앞당겼다고 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한 때부터 주식시장 등 곳곳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있었다"면서 "생각지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이번 발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 파장이 거세졌다. 민주당은 이번 발표 직후 대왕고래 프로젝트 자체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공지능(AI)에 투자할 예산을 대왕 사기시추 하나에 다 털어 넣었다"며 "이를 5∼6번씩 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는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많은 의심을 받아왔다. 동해 석유매장 가능성을 주장해온 분석업체 '액트지오(Act-Geo)'에 대한 신뢰도가 발단이었다. 업계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곳인 데다, 미국 본사 주소지가 일반 가정집으로 드러나 과연 실존하는 회사인지도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와중에 글로벌 자원개발 기업 '우드사이드'는 이 사업 참여를 검토하다 일찍이 철수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이런 가운데 산업부의 최근 발표 당시 나온 발언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날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2024년 대왕고래 관련 첫 발표 때)정무적 영향이 많이 개입됐다"며 "(사업성에 대한)과장된 비유가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섣불리 발표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채 해병 순직 사건과 김건희 여사 특검 등 불리한 이슈들에 놓여 국면전환이 절실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부는 '사업실패' 결론은 이르다고 주장한다. 산업부는 "이번 시추에서 획득한 데이터 및 정밀분석 결과는 향후 동해 심해 지역 전반의 탐사자료 정확도를 높이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자원개발은 인내가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로서 14번째 탐사시추에서 리자유전을 발견한 가이아나, 33번째 탐사시추에서 에코피스크 유전을 발견한 노르웨이 사례 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부 관계자의 '정무적 영향' 발언은 안덕근 장관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그는 2월 8일 여러 방송뉴스에 출연해 "정치적 논란이 제기돼 온 사안을 설명하려다 보니 표현이 잘못 나간 듯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1차 시추공은 시작을 의미할 뿐, 여기서 경제성 있는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나머지 사업도 실패했다고 봐선 안 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6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직접 나서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9/1739080419236311.jpg)
그럼에도 산업부가 발표를 앞당긴 진의를 놓고는 의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선 사업의 정치 색깔을 빼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신중히 접근했어야 할 사업이 처음부터 정치 논란으로 비화한 데 따른 부담을 완화하고자,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틈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산업부는 대통령실 및 여당과도 사전 조율 없이 이를 기습 발표했다.
문제는 정치 논란이 되레 거세졌다는 점이다. 산업부의 발표일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일이었다. 이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월 7일 당정협의 자리에서 "공직자들이 정치 중립 의무를 잃고 있다"며 "각 차관이 적극 인사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국민 입틀막(입을 틀어막다), 언론 입틀막도 모자라 공직자 입틀막까지 시킬 셈인가"라고 응수했다.
국민의힘은 추가 시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날 SBS라디오에서 "단 한 번 만에 어떻게 (석유·가스가)나올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무엇이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 김상훈 정책위원장은 "용기를 잃지 않고 나머지 동해 심해 유전구 6개소 대해 시추 탐사 개발계획을 실시해 국민들에 희망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산업부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경제성 없음' 발표와 동시에 대왕고래 추가 시추는 중단, 남은 6개 유망구 탐사조사를 지속할 계획이었지만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언 하루 뒤인 주말, 산업부는 "오는 5∼6월쯤 발표할 정밀 분석 결과가 기존 유망성 평가에 반영될 경우 후속 시추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추가 시추 여지를 남겼다.
단, 산업부가 결과 발표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단 분석도 없진 않다. 전문가들 말을 종합하면, 석유 등 탐사시추는 여러 차례 시도하는 게 원칙이지만 1차례 시추만으로도 결과 예측은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부정적인 결과를 관측하고도 발표를 미룬다면, 긍정적 기대를 품은 투자자들의 최종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산업부가 오직 '시장 혼란 최소화'만을 목적으로 발표를 앞당겼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그동안 '대왕고래 테마주'로 분류돼온 기업들 주가는 산업부 발표 후 2월 7일 일제히 급락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전일 대비 13.82% 내린 3만550원에 장을 마쳤다. 한국ANKOR유전(-17.57%), 한국석유(-13.80%), 흥구석유(-9.08%) 등 석유주들도 급락세를 나타냈다. 가스·석유 수송용 철관을 만드는 동양철관(-11.37%)과 화성밸브(-14.27%), 디케이락(-6.79%) 등 밸브 제조사들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한국석유공사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이 사업 예산 500억 원을 자체 조달한 상태였으나, 경제성 없음 결과와 함께 재무부담이 가중됐다. 특히 올해에는 4억800만 달러(한화 약 5900억 원) 회사채 발행도 계획했었다. 1차 시추 때마다 드는 돈은 약 1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한국석유공사로선 시추가 이어질수록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이 회사는 2020년 이후 완전 자본잠식된 상태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