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금값이 폭등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골드바(금괴) 현물 매물이 부족해지자 골드뱅킹, ETF(상장지수펀드) 등 금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국내 금 시세와 해외 금 시세 괴리율이 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금 가격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국금거래소 종로 본점. 사진=최준필 기자#2024년 10월부터 금 거래량 급증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서 1kg짜리 금 1g당 가격은 2024년 11월 14일 11만 5600원에서 2025년 2월 14일 16만 3530원으로 41.5% 상승했다. 2월 18일에는 15만 309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골드바를 구매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귀금속 거리에 있는 금은방과 금거래소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골드바 공급에 차질이 생겨서 헛걸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 종로구 한 금거래소에 방문한 70대 여성 A 씨는 “골드바 구매를 문의해봤으나 이미 예약 신청자가 많아 조기에 판매가 마감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 한 금은방 사장은 “한 달 전부터 골드바를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며 “골드바가 공급되면 금방 동이 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한 금거래소 직원도 “전화 등을 통한 문의는 물론 골드바 구매 신청이 한두 달 전 대비 두세 배 증가했다”며 “또 다른 안전자산인 실버바(은괴)를 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골드바, 실버바 모두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 금거래소에 전시된 골드바. 사진=노영현 기자KRX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2월 18일까지 KRX 금시장 총 거래량은 1만 1029kg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882kg) 대비 약 5.86배 증가했다. 2014년 3월 개장 이래 연간 최대치(2만 8296kg)를 달성했던 2021년 동기 5219kg과 비교해도 2배 이상 차이 났다.
최근 6개월간 월별 거래량 추이를 살펴보면 2024년 8월에는 2196kg, 2024년 9월에는 1599kg의 금이 거래되다가 △2024년 10월 3740kg △11월 4678kg △12월 3269kg △2025년 1월 3615kg으로 매달 3000kg대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KRX(한국거래소) 금 거래량 월별 추이. 자료=한국거래소 제공#골드바 재고 부족에 파생 금융상품도 인기
금융권에서도 금 투자 열기가 뜨겁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13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골드바 판매액은 406억 345만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20억 1823억 원) 대비 20배에 달하는 규모다.
골드·실버바 품귀 현상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는 지난 2월 12일부터 은행권에 골드바 공급을 중단했다. 또 2월 13일 한국금거래소는 은행 측에 골드·실버바 공급을 중단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로 인해 골드·실버바 판매를 일시 중단한 은행이 생겨나고 있다.
골드바 현물 거래가 힘들어지자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 골드바 거래량이 급증했지만, 공급 중단으로 어쩔 수 없이 판매를 일시 정지한 상태”라며 “골드뱅킹(금 통장), 금 ETF(상장지수펀드) 등 금 관련 파생상품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금 투자 방법에 따라 적용되는 세금과 수수료가 달라진다. 시중은행이나 금은방 등에서 골드바 실물을 살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10%, 수수료 5%에 3~5%가량의 세공비가 붙는다. 실물 판매 시에도 수수료 5%가 부과된다.
KRX 금시장에서 거래할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양도소득세·배당소득세 모두 적용되지 않고, 관세(3%)는 면제된다. 증권사를 통해 0.3% 내외 온라인수수료를 내면 1g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실물 인출 시 부가가치세 10%와 개당 2만 원가량 수수료를 지급하면 된다.
골드뱅킹은 은행 계좌로 금을 살 수 있는 상품이다. 실물 거래 없이 0.01g 단위로 금 거래를 해 적립식 소액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실물이 아닌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 팔 때 각각 1% 수수료가 붙는다. 매매차익 발생 시 배당소득세 15.4%도 지급해야 한다. 실물거래 시에는 수수료 5%와 부가가치세 10%를 지급해야 한다.
국내 ETF에 시장된 금 관련 ETF는 총 6개다. 금 ETF도 매매차익에 대한 배당소득세(15.4%)가 부과된다. 금 선물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 ETF는 5개다. 국내 유일 금 현물 투자 ETF 상품은 ‘ACE KRX 금현물’이다. 개인형 퇴직연금이나 중개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에 투자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금 시세와 해외 금 시세 괴리율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월 14일 기준 국제 금 가격은 1g에 13만 5000원대였다. 같은 날 국내 금 가격(종가 16만 3530만) 대비 20% 넘게 차이가 났다.
이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은 형태가 동일해 일물일가의 법칙(같은 물건은 하나의 가격을 가지게 된다는 법칙)이 성립되기 좋은 자산이기 때문에 괴리율의 평균 회귀 경향이 강하다”며 “향후 정상화 과정에서 단기 충격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국제 금 현물이나 금 선물로 교체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호반·한컴그룹 나란히 금 유통 사업 진출, 그 성과는?
호반그룹과 한글과컴퓨터그룹(한컴그룹)은 2020년에 나란히 금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호반프라퍼티와 한컴그룹 지주사 한컴위드가 각각 삼성금거래소와 한컴금거래소(옛 선한골드유)를 인수했다. 금 유통사업 특성상 매출 규모는 크지만 수익성은 낮다. 양사가 사업 확장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금거래소에서 판매하는 골드바. 사진=삼성금거래소 제공호반프라퍼티와 한컴위드는 인수 당시와 비교해 삼성금거래소와 한컴금거래소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현재 삼성금거래소는 호반프라퍼티가 50.71%, 호반건설이 48.72% 지분을 보유 중이다. 2020년 호반프라퍼티와 호반건설은 삼성금거래소 지분 각각 32.34%, 31.04%를 취득했다. 한컴금거래소는 한컴위드가 지분 54.6%, 한글과컴퓨터가 23%의 지분을 갖고 있다. 2020년 한컴금거래소 지분은 한컴위드가 25%, 한컴MDS(현 MDS테크)가 23%이었다.
호반프라퍼티와 한컴위드는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다. 호반프라퍼티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장녀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총괄사장이 지분 30.97%를 보유 중이다. 차남 김민성 호반산업 전무도 호반프라퍼티 지분 20.65%를 갖고 있다. 한컴위드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지분 15.77%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있다. 김 회장을 포함해 김 회장 배우자인 김정실 한컴위드 사내이사(3.84%), 딸 김연수 한글과컴퓨터 대표이사(9.07%) 등 오너일가가 29.91%를 보유하고 있다.
금 유통 사업은 제·정련업체로부터 금을 매입해 골드바와 같은 실물 금이나 각종 귀금속 제품을 도소매로 유통하는 사업이다. 주로 B2B(기업 간 거래) 매출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은 유통 물동량이 많아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삼성금거래소는 1조 294억 원, 한컴금거래소는 3863억 원의 매출을 냈다. 2020년에 삼성금거래소와 한컴금거래소 매출은 각각 1조 2836억 원, 1245억 원이었다.
다만 매출 규모에 비하면 수익성은 높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2023년에 삼성금거래소는 3100만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지난해엔 100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컴금거래소는 2023년 약 4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1~3분기엔 2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중간 공급자인 금 유통업체들은 금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금을 꾸준히 판매해야 한다. 이와 관련,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금 가격이 오르면서 대부분의 금 거래소(유통업체)들이 지난해와 올해 매출은 오름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수익성이 극적으로 높아지기는 힘든 구조다. 금 판매 시세가 시중에 노출돼 있어 유통 마진을 많이 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금 유통업체들은 다양한 사업 모델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금을 디지털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이다. 삼성금거래소는 올해 디지털 플랫폼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한국금거래소와 한컴금거래소는 이미 금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컴금거래소디지털에셋 화면. 사진=한컴금거래소 블로그 캡처다만 금 디지털 사업 역시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아 수익성을 내는 사업은 아니다. 앞서의 금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은 오프라인 금은방에 금을 팔아서 바로 현금을 받고 싶은 소비자 성향이 더 강하다”며 “오프라인 소매상을 통할 때보다 플랫폼을 통해 1000원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플랫폼 이용자들도 더 늘어날 듯하다”라고 밝혔다.
디지털 사업에 더해 금 유통업체들은 B2C 부문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금 자판기를 출시하거나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골드바를 판매하는 식이다. 금 제품화 기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소장은 “금 1돈(3.75g)이 60만 원에 육박하다 보니 적은 중량의 금 제품 수요가 늘 것”이라며 “적은 중량으로도 금을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기술이 중요해졌다”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삼성금거래소 관계자는 “호반그룹에 인수되던 2020년과 비교해선 내부 프로세스가 많이 안정화됐고 영업이익률도 높아졌다”며 “디지털 사업의 경우 자체 개발을 해야 하므로 투자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컴그룹 관계자는 “한컴위드가 금거래소 사업에 관심을 갖고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해 지분율을 높였다”며 “수출, KRX 거래 등으로 판매 경로를 다양화해 올해는 전년도보다는 실적이 좋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까진 오른다? 금·은 가격 전망 살펴보니…
전문가들은 올해 말까진 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연말 금 가격 목표를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에서 3100달러로 높였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유럽연합(EU) 등에서 경쟁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 교역이 축소되고 수출도 제대로 안 돼 경기의 하방 경직성이 높아진다”며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가 빠르지 않을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라 안전 자산인 금 가격이 올해 말까지는 오를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서울 종로구 한 귀금속 판매점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도 “트럼프 정부 하에서 외교적인 갈등이 지속된다면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달러의 가장 좋은 대체재는 금이다.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이 예상된다”며 “중장기적으로 금리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 금리가 금 매수의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금이 하방 추세를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라고 진단했다.
반면 금 가격 상승에 제한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리포트에서 “2017년부터 2020년에 확인한 바와 같이 관세 협박은 딜(거래)을 위한 협상 수단일 뿐”이라며 “각국에 관세 유예 조치가 도출될 때마다 금 가격 상단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은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2월 1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3월물 은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33.37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2월엔 2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은은 금보다 희소성이 떨어지고 보관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때문에 은이 금보다 상대적으로 상승 여력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예찬 연구원은 “은은 귀금속보다는 산업재로 많이 사용된다. 금 가격과 어느 정도 연동은 되겠지만, 경기 회복력이 은 가격에 영향을 많이 줄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