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캠프 합류 이후에야 타격폼 수정…연습 시간 부족했다”

3월 12일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경기 전 보통 오전 10시 즈음에 진행되는 인터뷰를 생략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은 LA 다저스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애리조나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범경기가 예정돼 있었고, 경기 전 인터뷰에서 도쿄시리즈에 참가하는 선수들 명단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게 뻔했다. 그래서인지 다저스 구단은 경기 전 로버츠 감독의 인터뷰를 공지하지 않았다.
이날 김혜성은 7일 연속 시범경기 교체 출전이 예고됐다. 중견수 교체 출전이었다. 만약 다저스 구단이 김혜성을 도쿄행 비행기에 태울 계획이었다면 7경기 연속 교체 출전으로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범경기는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주전급 선수들은 ‘백투백’으로 경기 출전을 조절한다. 김혜성이 교체로 7경기 연속 출전을 이어간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저스 구단은 도쿄로 향하는 31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 며칠 전에 미리 김혜성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혜성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스프링 트레이닝캠프가 시작되면서 도쿄행을 향한 기대와 꿈을 키웠고, 그 개막전에서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선수 3명이 주축이 된 도쿄 개막전에서 김혜성은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터.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김혜성이 올 시즌을 빅리그가 아닌 트리플A 팀이 있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김혜성은 시범경기 15경기에 출전해 29타수 6안타(1홈런) 3타점 2도루, 타율 0.207 OPS 0.613을 기록했다. 2월과 3월 성적에 큰 차이가 있었다. 2월 6경기에서 14타수 1안타 타율 0.071로 저조했다면 3월에는 9경기 15타수 5안타 타율 0.333 1홈런 3타점으로 반등했다. 다저스가 일본에서 개막전을 치르지 않고 다른 팀들처럼 애리조나에서 계속 시범경기를 치렀다면 김혜성은 타격폼 변화에 적응해 가면서 공격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혜성은 3월 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150㎞/h 직구를 공략해 좌전 안타를 쳤고, 10일 애슬레틱스전에서도 156㎞/h 직구를 받아쳐 중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1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도 154㎞/h 싱킹 패스트볼을 강하게 밀어 쳐 3루 옆을 스치는 안타를 터뜨렸다. 2월에는 150km/h 이상의 강속구에 고전했던 김혜성이 3월 들어 빠른 공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변화된 타격폼으로 안타를 생산해냈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11일 애리조나전을 마치고 기자와 만났던 김혜성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오늘 나온 안타는 직구였지만 최근 조금씩 바뀐 타격폼으로 변화구에 대처가 되고 있다. 이전에는 타석에서 여유가 없다 보니 변화구가 잘 안 보였고, 그걸 느끼게 되면서 자꾸 쫓기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지금은 변화구가 보이고, 타석에서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편이다.”
김혜성에게 논란이 됐던 타격폼 변화와 관련된 질문을 건넸다. 김혜성은 다저스 스프링 트레이닝캠프에 합류하면서부터 타격폼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와 바깥쪽 떨어지는 체인지업 대처를 위한 결정이었다. 구단이 먼저 선수 측에 제안했고, 선수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김혜성도 인정했다. 타격폼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타격은 작은 것에도 예민한 결과를 낳는다”면서 “타격폼에서 많은 걸 바꾸고 있어 단기간 조정으로 완성되기가 어렵다. 스윙 궤도와 상체, 하체를 모두 바꾸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 오기 전 겨울 내내 연습했던 타격폼을 다저스 캠프 합류하자마자 전격 수정에 나섰고, 시범경기 시작 후에도 그 작업이 계속되다 보니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다. 타자는 타석에서 투수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시범경기 동안 나는 투수와 싸우기보다는 바뀐 타격폼에 신경을 쓰느라 투수의 공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혜성에게 “다저스 구단이 도쿄 개막전을 위해 시범경기를 일찍 마무리하는 게 아쉽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김혜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만약 (도쿄에 가지 않고) 남게 된다면 여기서 열심히 할 것이다. (도쿄로) 가든 안 가든 야구하는 건 똑같은 거니까”라고 답했다.
김혜성은 이때 이미 도쿄행 합류가 불발된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구단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이라 기자한테 솔직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김혜성의 마이너리그행을 발표한 이후 다저스 캠프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마친 이정후에게 김혜성 소식을 알고 있는 지 물었다. 이정후는 막 경기를 마친 터라 따로 소식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김혜성이 도쿄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김)혜성이가 준비도 많이 했을 텐데 아쉬움이 클 것 같다. 타격폼이라는 게 엄청 민감한 문제다. 연습할 때 팔 높이를 조금만 바꾼다거나 하체 중심 이동이 약간만 달라져도 타자 입장에서는 엄청 많은 게 바뀐 느낌이 든다. 혜성이는 다리를 들고 치던 기존 타격폼에서 찍고 치는 연습을 했다. 미국은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고, 바로 경기에 나선다. 타석에서 투수와 싸워야 하는데 자꾸 타격폼을 생각하게 되고, 결국엔 자기 자신과 싸우기 마련이다. 혜성이가 시범경기를 치르며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정후는 친구 김혜성한테 “좌절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혜성이는 좋은 선수다. 지금이 끝은 아니다. 다저스는 (도쿄 시리즈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일찍 캠프가 끝났다. 미국에서 열리는 개막전 때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남은 기간 타격을 잘 정립하면 언제든지 기회가 올 것이다.”
이정후는 1년 전 처음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전 내심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자신의 타격폼을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할까봐 걱정했다고 말한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타격폼에 변화를 줬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어서 구단이 내 타격폼을 어떻게 생각할지 은근 신경 쓰였다. 그런데 구단에서는 내 타격폼을 좋게 생각해주셨다. 지난해에는 타격폼보다 나 자신과 싸움을 벌였다. 혼자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을 했던 것 같다. 혼자 헤매다 보니 타석에서 혼자 싸우고, 결과에 연연해하면서 방망이가 따라 나가는 일들이 반복됐다. 지난해에 재활하면서 타격 코치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코치님들이 나보다 더 내 폼을 많이 연구해주셨다. 데이터 팀도 있다 보니 과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었다.”
이정후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김혜성의 상황을 이해했다.
“메이저리그에 오니 많은 게 달랐다. (나도 그랬지만 혜성이는) 한국에서는 주전이고 간판스타였고, 모든 게 혜성이한테 맞춰 돌아갔지만 여기서는 기존에 있던 선수들 위주로 돌아간다. 더욱이 시범경기 때는 더그아웃 옆에 실내 타격 훈련장이 없어 경기 도중에는 연습하기 어렵다. 선발이 아닌 교체로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고, 매 경기 새로운 투수의 공을 상대해야 한다. 수준 높은 투수의 공을 새로운 타격폼으로 대응하느라 (그동안) 혜성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따 혜성이한테 전화해봐야겠다.”
이정후는 김혜성이 변화된 타격폼에 적응한다면 반드시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저스 구단은 14일 오전 도쿄 시리즈를 위한 31인 로스터를 확정했다. 지명타자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개막 2연전 선발 투수인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사사키 로키를 포함한 투수 16명의 명단과 포수, 내야수 각각 3명, 외야수는 4명이다. 김혜성과 경쟁을 벌였던 제임스 아웃맨과 앤디 파헤스는 외야수로 이름을 올렸고, 크리스 테일러는 내야, 외야를 오가는 유틸리티로 명단에 포함됐다.
한편 마이너리그 캠프로 이동한 김혜성은 트리플A 시범경기에 출전하면서 타격감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김혜성을 전담하고 있는 코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브렛 필로, 다저스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로 활약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