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인적 자본 부재, 급조된 후보들로 한탕 노려…문 정부 시절 ‘약체 야당’ 재연 우려
특히 국민의힘이 배출한 대통령이 2차례나 탄핵·파면을 겪으면서 갑작스런 권력 진공 상태가 수시로 발생, 이러한 고질병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그 해결책으로 이른바 ‘용병 정치’를 비롯한 임시 처방만 내놓고 있어 병세는 더욱 깊어지는 중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6·3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2017년 정권을 내준 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잇따라 참패, 깊은 수렁에 빠졌던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단일화 과정에서 ‘한덕수 추대론’에 휘말려 당 안팎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정치적 입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 등을 지냈지만 김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여의도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랬던 그가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12·3 비상계엄’ 정국을 거치며 급작스레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재기 시발점은 우연에 가까웠다. 2024년 12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민주당 의원이 계엄 선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자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 홀로 거부한 채 자리를 지켰다.
이를 지켜본 보수진영에선 그를 ‘꼿꼿 문수’로 부르며 호평을 쏟아냈다. 이후 올해 초부터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김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56.53%의 득표율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5월 3일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김 후보가 글자 그대로 ‘엉겁결에’ 대선후보로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진운도 간과하기 어렵다. 마지막 2강 경쟁까지 올라갔던 한동훈 후보를 비롯해 홍준표 안철수 후보는 대세론을 형성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겨루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재명 후보보다 국민의힘 주자들이 턱없이 낮은 수치를 나타낸 복수의 여론조사가 이를 증명했다.
오랫동안 준비된 후보, 키워지고 육성된 후보가 아닌 우연히 뽑힌 주자가 대선후보로까지 올라섰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당내에서는 선거 경쟁 핵심인 승복 문화가 사라졌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은 치유가 쉽지 않은 극심한 내홍 상태로 빠져들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일사불란한 대선 준비는커녕 볼썽사나운 드잡이만 난무했다.
이런 여파로 탈락한 경선 후보가 친정을 흉보는 어이없는 장면까지 나오고 있다. 한 표가 아쉽고 선거를 도와줄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는 판에 대선 본선 시점에서 집안 식구들이 공동 유세에 나설 생각은 없고 서로 헐뜯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5월 7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가 경선 과정에서부터 단일화를 전제로 한 후보의 출마론을 띄웠다고 주장했다. 홍 전 시장은 “용산과 당 지도부가 합작해 느닷없이 한덕수를 띄우며 탄핵 대선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로 몰고 가려고 했을 때 나는 설마 대선 패배가 불 보듯 빤한 그런 짓을 자행하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그러나 그게 현실화하면서 김문수는 김덕수(김문수+한덕수)라고 자칭하고 다녔고 용산과 당 지도부는 김문수는 만만하니 김문수를 밀어 한덕수의 장애가 되는 홍준표는 떨어뜨리자는 공작을 꾸미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덕수 후보를 향해 “무상 열차를 노리고 윤석열 아바타를 자처했다”고 비판했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선 “나라 망치고 이제 당도 망치고 있다”고 직격했다.
김문수 후보와 결선에 맞붙어서 패배한 한동훈 전 대표도 5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결국 이렇게(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 될 줄도 모르고 저를 막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건가. 제가 2 대 1로 싸운 건가”라며 “이런 상황이었다면 결국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제가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역시 경선 패배를 맛본 안철수 의원도 단일화 갈등과 관련, 5월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후보가 점지된 후보였다면 우리 당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은 들러리였던 것인가”라고 비판하면서 “이럴 바에야 가위바위보로 우리 당 후보를 정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한탄이 쏟아진다. 2020년 총선 당시 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본선에 오른 네 명 중 두 명은 지지 태도가 유보고 한 명은 조건을 걸고 있는 판”이라며 “이부터 먼저 해결해야 후보의 지지가 오른다”고 썼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부끄럽다. 이게 지금 집권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게 믿기가 어렵다”면서 “단일화 진통 이후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분란은 예고된 비극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선거 때마다 급조된 후보들이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이 몰려있는 영남권·서울 강남을 비롯한 텃밭에 내려가는 낙하산 공천이 판을 치고, 수도권 등 험지 출마자에 대한 보상이 사라지자 인재 양성과 육성 기능이 완전히 상실됐다는 게 당내의 한목소리다.
국민의힘이 독자적으로 키워온 인재풀이 갈수록 얇아지다 보니 전국 단위 선거에서 간판으로 내세울 리더급 인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7년 3월, 보수정당 간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조기 대선이 닥쳐오자 국민의힘은 극심한 인물난에 빠져들었다. 비상수단으로 홍준표 경남지사를 대선주자로 불러와야 했고, 볼 것도 없이 큰 표차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패배했다.
취임 후 압도적인 지지율 고공행진을 보인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제대로 된 견제구 한방 날리지 못하던 국민의힘은 2021년엔 30대의 이준석 당대표를 내세우면서 파격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검증되지 않은 당대표 후보여서 ‘한탕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30대에 대통령이 된 프랑스의 마크롱 모델을 당내에서는 꿈꿨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기대를 모았던 이 전 대표는 좌충우돌하던 끝에 결국 불명예 퇴진했고, 당을 떠나 개혁신당이라는 새 살림을 차렸다.
2021년 11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전 대통령을 대선후보로 뽑았다. 홍준표 원희룡 유승민 등 당내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기량을 닦아온 후보들이 정치판에 들어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윤석열 후보에게 대선 경선 승리를 내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진석 비대위, 황우여 비대위, 한동훈 비대위 등 정상적 지도부 체제는 툭하면 붕괴됐고, 한 번에 위기의 판세를 뒤집으려는 비상대책위가 수시로 들어서는 한탕주의가 만연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사례도 용병 정치 연장선으로 불린다. 한 전 대표는 정치 무경험자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당의 리더로 연이어 선출됐다. 당 원로들의 한결같은 걱정처럼 끝이 좋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과 끊임없이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당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당내 반대 세력들과 반목 속에서 파찰음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선후보,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진보 진영의 전·현직 리더들은 당내에서 지속적으로 돌팔매를 맞으면서 성장해왔고 그로 인해 강한 전투력을 배양했다”며 “그런데 보수정당은 수십 년간 내부의 싹을 자르고 자꾸 외부 조달을 해오다보니 인재가 사라지게 됐고, 이번 대선에서 혹독한 내분을 겪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짚었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약점은 쉽게 고쳐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곤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힘 한 번 못썼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텃밭 대구와 경북만 구사일생으로 건지고 나머지는 모조리 민주당에 내줬다. 대구와 경북도 광역단체장만 배출했을 뿐 이례적으로 대구·경북에서조차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상당수를 민주당에 뺏겼다. 대구·경북이 이러하니 다른 지역은 사정이 더욱 심각했다. 당시 선거 결과 지도는 전국이 온통 파란색이었다.
2020년 총선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방역 부실 비판 여론이 컸지만 국민의힘이 워낙 약체이다 보니 선거 결과는 또다시 민주당 대승이었다. 과반을 훨씬 넘긴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모두를 독식하는 등 국회에서 제1야당에 대해 파상 공세를 펴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민주당이 결심만 하면 모든 법안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정권 교체라는 위기 탈출은 국민의힘 자강에서 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관련된 초대형 성추문 악재가 터진 데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정권 내부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국민의힘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민주당 한 현역 의원은 “이재명 후보와 잘 알면 공천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민주당은 당내 실력자의 친소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경선으로 체력이 다져져 올라오고 패자에게는 다양한 패자부활 기회도 부여하는데 국민의힘은 이런 시스템이 없으니 인재가 길러지지 않으며 선거 때마다 늘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