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두 형제가 한 여자 공유
하버드 출신으로 25세에 미국 역사상 최연소 은행장이 되었고 35세에 백만장자가 된 조셉 케네디는 1920년대 말 미국이 대공황으로 휘청거릴 땐 붕괴된 주식 시장에서 단기 매매로 더욱 재산을 늘려나갔고, 당시 호황을 맞이하던 영화산업에 뛰어들어 제작자로서 큰돈을 벌었다. 이 시절 그는 수많은 여배우들과 뜨거운 관계였다.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렌느 디트리히 같은 당대의 톱스타들을 비롯, 캐럴 롬바드나 제인 맨스필드 같은 글래머도 피해갈 수 없었다. 가장 뜨거운 사랑은 글로리아 스완슨. 70대 시절엔 셸리 윈터스와 늘그막에 로맨스를 불태우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3선에 나서지 않았다면 증권거래위원회 의장과 영국 대사직을 맡았던 조셉 케네디는 아마도 당시 민주당 후보가 되었을 것이고,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얻지 못했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네 아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 꿈을 이룬 사람은 바로 둘째 아들인 존 F. 케네디였고, 그는 아버지의 염원과 함께 바람둥이 기질도 물려받았다.
그는 아내인 재클린 케네디 외에 수백 명의 여성들과 로맨스를 즐겼다. 일단 그에겐 ‘피들’과 ‘패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두 명의 금발 비서가 있었다.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할리우드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케네디는 10대 시절부터 여배우들과 관계를 맺었고, 제인 맨스필드와 마를렌느 디트리히는 아버지 조셉 케네디, 둘째 아들인 존 F. 케네디 그리고 셋째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가 공유(!)하는 여성들이었다.
존 F. 케네디가 관계를 맺은 배우들의 목록은 고전 할리우드 시절 여성 스타 명단과 거의 일치할 정도였다.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 마를렌느 디트리히, 제인 맨스필드, 주디 갤런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노마 시어러, 잉그리드 버그먼, 조앤 크로포드, 수전 헤이워드, 베로니카 레이크, 앤지 디킨스 그리고 마릴린 먼로. 스트리퍼인 블레이즈 스타부터 백악관에서 함께 마리화나를 피웠던 화가 매리 마이어까지, 케네디의 여성들은 다양하면서도 정말 많았다.
▲ 존 F. 케네디의 여인들.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왼쪽)는 의문사했고 암흑가 거물 보스의 정부 주디스 캠벨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단초가 되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아마도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일 것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1962년 5월 19일에 뉴욕의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있었던 케네디 대통령의 공식적인 생일 파티였다. 이 자리에 나타난 먼로는 특유의 S라인을 한껏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숨 막힐 만큼 섹시한 목소리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를 부르며 생일을 축하했다. 이 장면은 미국 대중문화에서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몇 달 뒤인 8월 4일에 먼로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후 그 배경으로 케네디 가문이 조용히 언급되었다.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의 정부였던 먼로는 너무 많은 비밀을 알게 되었고, 어느덧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존재가 되어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이 생겨나게 된 것.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가장 치명적인 관계는 주디스 캠벨이었다. 그녀는 유명한 스타도, 눈에 뜨일 만한 미녀도 아니었다. 1960년 2월에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호텔 라운지에서 프랭크 시내트라가 케네디에게 이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을 때, 대통령은 그녀에게 묘하게 끌렸다. 천하의 바람둥이 시내트라는 물론, 그날 밤 자리에 함께 있던 케네디 패밀리의 막내 에드워드 케네디의 추파를 거절하는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암흑가의 거물이었던 샘 지앙카나의 정부였다. 지앙카나는 알 카포네보다 더 강력한 갱스터였고 그의 수하엔 5만 명에 달하는 마약 중개인과 청부살인업자와 고리대금업자와 폭력배들이 악의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1960년대 당시 매년 20억 달러에 달하는 지하 경제를 움직이고 있었던 그는 명실 공히 밤의 제왕이었다. CIA가 쿠바의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해 지앙카나에게 의뢰했을 정도로 그는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였다.
이후 주디스는 케네디와 짧은 로맨스를 즐겼는데, 문제는 이 시기에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지앙카나는 캠벨을 이용해 케네디에게 압력을 넣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이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는 지앙카나 세력이 앙심을 품고 정보기관과 결탁하여 암살을 실행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케네디 대통령의 이처럼 무분별한 여성 관계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유전적 요인이나 사회적 성공이 가져다 준 방종이 아닌, 의외로 그럴 듯한 의학적 소견들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은 ‘애디슨 병’을 앓고 있었다. 결핵이나 매독이나 종양으로 인해 부신(콩팥 위에 있는 내분비샘)의 기능이 파괴되어 만성 피로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이 병을 위해 케네디는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그의 성적인 측면이 제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 실제로 케네디는 영국 수상인 해롤드 맥밀런에게 “난 3일 동안 섹스를 못하면 두통으로 미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케네디 패밀리의 형제들은 끊임없이 여성 관계를 늘려나갔고, 이 모든 것은 지난주에 언급했던 채퍼퀴딕 사건 이후 상당 부분 노출되었다. 다음 주는 케네디 가문의 마지막 이야기, 그의 죽음과 잇따른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