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졸업 후 공장 전전 프레스 사고, 5·18 진상 보고 인권변호사 길 걸어, 2010년 성남시장 당선 공직 입문

이재명 대통령은 경상북도 안동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관련기사 [르포] 흔적만 남았어도 ‘성지순례’ 이어져…이재명·김문수 생가 터 가보니). 신고된 생년월일은 1963년 음력 10월 23일이다. 정확한 날짜는 본인도 모른다고 한다. 부모님이 제때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초등학교 등록을 위해 생년월일이 필요했다. 그러자 부모님이 무속인을 찾아가 적당한 날짜를 받아왔다고 한다.
이 대통령 어린 시절 부친은 노름꾼이었다.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작은 텃밭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무일푼이 된 부친은 가족을 이끌고 성남시로 이주했다. 1976년 2월 23일이었다. 이 대통령의 자서전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 따르면 그날 새벽에는 싸락눈이 내렸다. 가족들은 단대오거리에 내렸다. 짐을 이고 상대원시장을 걸어 올라와 반지하 셋방으로 향했다. 길은 진창이었다. 신발이 자꾸 벗겨졌다고 했다.
반지하 셋방에서 아홉 식구가 생활했다. 모친은 상대원시장 한 건물에서 화장실을 관리했다. 대변은 20원, 소변은 10원을 받았다고 한다. 모친과 여동생이 함께 화장실을 관리했다. 부친은 상대원시장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했다. 시장에서 버린 종이나 깡통을 모아 고물상에 팔았다.
이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 후 소년공이 됐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이 공장 저 공장을 전전했다. 남은 시간에는 ‘낡고 더러운 부친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었다.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이 대통령은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쳤다. 왼쪽 손목 관절이 프레스 기계에 눌려 으깨졌다.

두 사업은 각각 학생 식습관 개선·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과 학부모 교육비 경감·교육 평등성 향상 등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예산 확보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도 경기도에서는 ‘얘들아 과일 먹자’ 사업과 무상 교복 정책을 펴고 있다. 부산 대구 등 다른 지자체도 관련 정책을 도입했다.
#5월 광주와의 만남
1980년 5월 이 대통령은 오리엔트시계에서 일했다. 이곳에서 일할 때 이 후보는 후각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인 심정운 씨는 2022년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도정하는 공정이 있는데,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서 한다. 왜냐하면 오염물질이 붙으면 안 되니까. 거기에 페인트랑 시너 이런 것들이 쓰인다”며 “아무래도 거기서 냄새를 많이 맡고, 그래서 후각 쪽이 안 좋다고 (이재명과) 그런 이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시기 이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수차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가난과 장애로 삶을 비관했고,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려 했다. 실패했다. 이 대통령은 낌새를 눈치챈 약사가 다른 약을 준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 연설에서 이 시기 전까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했다고 고백했다. 진상을 안 다음에는 군사정권 주역들을 위해 일할 수 없어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광주에 내려가면 고 문재학 군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를 만난다고 했다. 문재학 군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존 인물이다. 21대 대선 유세에서는 광주는 자신을 각성시킨 ‘사회적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무일푼 정치인에서 대통령까지
이 대통령은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이때 같이 공부했던 인물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다. 권 원내대표는 중앙대 법대 80학번이고, 이 대통령은 같은 과 82학번이다. 두 사람은 학교 고시반에서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권 원내대표와 이 대통령은 각각 1985년과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권 원내대표 부인은 이 대통령의 소개팅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연수원에서는 동기인 정성호 의원과 우정을 쌓았다. 당시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특강도 받았다. 이 대통령은 웹 자서전에서 ‘변호사는 뭘 해도 밥은 안 굶는다’는 노무현 변호사 말에 감명 받았다고 했다. 공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 고향인 성남시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연수생 신분으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반대 연판장을 돌리는 등 ‘반골’ 기질을 드러냈다.
연수를 마친 이 대통령은 판사 임용이 가능한 성적을 받았지만, 변호사를 선택했다. 집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 할 수 없이 변호사가 됐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검사 시보를 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뒀다.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하며 사회 운동가가 됐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수사 도중 분신 기도를 한 대학생을 무료 변론하는 등 인권 변호사 활동을 했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과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1995년 김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고문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1996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 이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 계기였다. 이 대통령은 초선이던 정성호 의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공공의료원 설립은 좌절됐다. 정 의원은 이때 이 대통령이 정책을 펼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2006년 성남시장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또 낙선했다. 2010년 다시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해 마침내 당선됐다. 이때부터 무상 시리즈를 시작했다.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도 선언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은 재정 건전성 확보와 투명성 강화를 끌어냈다는 평가와 지자체 신용을 훼손한 ‘정치적 쇼’이자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이 대통령은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이 대통령은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했다. 도지사 당선에 성공했지만, 친문계와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20대 대선 경선에서는 이낙연 전 총리 측 남평오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서막이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에서 이겼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이 대통령은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위증교사, 허위사실 유포죄 등 각종 비리 의혹을 받았다. 당대표로 당선된 후에도 거의 매주 법원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섰다.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도 법인카드 횡령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대통령 측은 윤석열 정부 검찰의 무리한 표적 수사라고 맞섰다.
이 대통령은 당내 입지 강화에 공을 들였다. ‘7인회’를 주축으로 친명계 세력이 커졌다.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2차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통과는 결정적인 기회가 됐다. 이때 비명계를 향한 당내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22대 총선 때는 비명계 인사 상당수가 공천을 받지 못했다. ‘비명횡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빈자리는 친명계 인사들이 채웠다. ‘이재명 일극체제’가 완성됐다. 이후 민주당은 이 후보를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 검찰, 법원 등과 대립했다. 보수 진영은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에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 대통령은 독주했다. 김동연·김경수 후보는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가 당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후 두 후보는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하고 경선에서 패배했다. 이 대통령은 89.77%의 득표율을 올렸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정당 역사상 압도적으로 높은 득표율이었다.
대선 본선에서도 이 대통령의 대세론은 견고했다. 민주당은 단일 대오를 형성하며 조직적으로 이 대통령을 지원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사분오열했다.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도 정리하지 못했다. ‘한덕수 추대’ 등 김문수 후보를 향한 ‘당내 쿠데타’도 있었다. 김 후보는 ‘내란 대 내란 옹호’라는 구도를 깨뜨리지 못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제3지대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로써 거대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유례없이 강력한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