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인 일하는 식당 등 ‘단절 대신 참여’ 지원…후쿠오카시 환자-기업 연결 ‘오렌지 인재 뱅크’ 설립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지바루 식당’은 특별한 식당이다. 이곳에는 세 명의 치매 노인이 점심 시간대 종업원으로 일한다. 시급은 1080엔(약 1만 원), 3시간가량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 서빙과 설거지 등을 맡는다. 종업원 요코 씨(74)는 경증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그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겨주는 가게가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이 식당은 종업원이 치매 환자임을 숨기지 않는다. 개업 6년째를 맞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오거나 젓가락 수가 틀리는 실수가 있어도 손님들은 대부분 너그럽게 이해한다. 오히려 “우리 할머니 같다”며 따뜻한 미소로 응답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치카와 다카아키 사장은 개호복지사(요양복지사) 출신으로, 20년 가까이 치매 환자를 돌봐왔다. 그는 “치매에 걸려도 이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식당을 연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치매 초기 환자가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병의 진행을 늦추고 삶의 의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바루 식당에서 일하는 스미에 씨(89) 역시 경증 알츠하이머 환자다. “고령에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집에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 움직이는 게 좋다”고 웃었다. 스미에 씨가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은 3년 전이다. 한때는 “누군가 지갑을 가져갔다”고 우겨대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는 증상이 한결 침착해졌다. 아들 시게루 씨는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동안 가족들도 한숨 돌릴 수 있다”며 “서로에게 여유가 생기니 관계도 더 가까워졌다”고 전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원인으로 기억력과 판단력 등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병이 진행될수록 우울, 불안, 초조 같은 정서적인 변화도 뒤따르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자신의 역할이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치매 환자도 충분히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일본 전역에서는 치매 환자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닌, 초고령화 사회 속에서 치매와 공생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이다. 예를 들어 아키타현 후지사토초는 ‘인재 뱅크’를 통해 치매 환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지역 특산물인 고사리 수확, 공공시설에서 단순 작업, 꽃 돌보기 등이 주요 업무다.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에는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작은 목공소가 있으며, 편의점 용기를 조립하거나 채소 배달, 공원 청소 등 치매 환자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전개하는 프로젝트도 생겨났다.
디자인을 통한 배려도 주목할 만하다. 후쿠오카시는 ‘치매에 친화적인 도시 만들기’를 목표로 치매 환자도 알기 쉬운 디자인을 곳곳에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공화장실 안내판이다. 치매를 앓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거리 감각도 떨어지기 때문에 안내판의 높이를 낮추고, 보다 직관적인 그림과 글자를 병행했다. 이 디자인은 현재 후쿠오카시 지하철역을 비롯한 122곳의 시설에 적용돼 있다.
후쿠오카시는 “일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치매 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오렌지 인재 뱅크’도 설립했다. 치매 환자와 기업을 연결해 치매 환자가 쓰기 편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예컨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시계형 도보 내비게이션’은 치매 환자 노부코 씨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원터치 앞치마도 “끈을 제대로 묶기 어렵다”라는 치매 환자의 조언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이 밖에도 후쿠오카시는 2023년 ‘인지증(치매) 프렌들리 센터’를 열어 치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치매와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 일본 사회는 치매를 ‘가족이 감추고 책임져야 할 병’으로 여겼다. 치매 환자가 방 한 칸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72년 출간된 아리요시 사와코의 ‘황홀한 사람’은 이러한 치매 노인의 현실과 돌봄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해 충격을 안겼다. 다가올 고령화 사회의 그림자를 예견하고, 일본의 노인 복지정책에도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들어 고령화가 본격화되자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의 치매 대응에 나섰다.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2004년 10월 교토에서 열린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 국제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치매 당사자인 오치 슌지는 “잘 잊어버리지만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안심하고 보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그의 발언은 일본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같은 해 일본 후생노동성은 ‘치매(痴呆)’라는 기존 용어가 ‘어리석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며 편견 해소 차원에서 ‘인지증(認知症)’으로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치매 지원 체계를 정비해 왔고, 2015년에는 ‘인지증 종합전략’을 발표하며 치매 예방과 조기 진단,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치매가 더 이상 당사자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24년 1월 ‘공생사회 실현을 위한 치매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또 한 번 전기를 맞았다. 이 법은 ‘치매 환자의 존엄과 희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치매 환자를 관리나 보호의 대상이 아닌, 기본적 인권을 가진 개인으로 존중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정책의 방향도 바뀌었다. “치매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서 “어떤 사회라면 치매가 있어도 살기 쉬울까”를 고민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NHK는 “치매 환자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