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파운드리 계약 시선집중, ‘어부지리’ 평도…삼성전자 “기술 경쟁력 회복에 전사적 노력”

삼성전자가 지난 7월 28일 165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당시 계약 상대는 비공개였으나 직후 테슬라 CEO(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X(옛 트위터)에서 삼성과의 협력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삼성전자도 7월 31일 정정공시를 통해 계약상대가 테슬라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을 통해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팹에서 2나노(nm·1nm=10억 분의 1미터) 공정을 통해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반도체 ‘A16’을 위탁생산하게 된다. 기한은 2033년 12월 31일까지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계약에 힘입어 삼성전자 주가도 10개월여 만에 7만 원대로 올라섰다. 증권가 역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흥국증권은 8월 1일 삼성전자에 대해 23조 원 규모 테슬라향 파운드리 수주로 피지컬(Physical) 인공지능(AI)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할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목표주가는 기존 7만 5000원에서 8만 5000원으로 상향하고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했다.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 7월에 출시한 갤럭시Z 플립7에 자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500을 탑재하는 데 성공하면서 고질적 이슈였던 낮은 수율이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구조를 적용한 3nm 공정 양산에 나섰으나 그간 낮은 수율로 인해 고객사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올해 초 출시된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5에도 엑시노스 2500 탑재가 불발되는 등 내부 채택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2nm 반도체는 소모전력이 적고 데이터 처리 효율이 높아 AI·자율주행 등 고성능 연산용 반도체에 유리하다. 시장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테슬라와 같은 주요 고객이 삼성전자의 2nm 기반 AI 반도체 채택을 본격화하면, 삼성전자 다양한 글로벌 고객사들로부터 후속 수주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2nm 공정 양산 관련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2nm는 3nm보다 더 미세한 공정으로 어떻게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 소자를 더 조밀하게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2nm 양산은 미국 텍사스에 새롭게 구축될 신규 공장에서 이뤄질 예정이어서, 장비부터 세팅하고 수율을 처음부터 다시 안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수주 자체는 의미 있지만 실제 양산 수율을 확보하는 국면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당초 2027년으로 계획했던 1.4nm 공정 일정을 2029년으로 연기하고 대신 2nm의 양산과 수율 안정화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화 서울기독대 AI융합대학 조교수는 “현재 3nm 공정 수율은 60% 이상, 2nm는 40% 이상까지 올라왔다는 얘기가 있다. 2nm는 아직 안정화 단계는 아니지만 꾸준히 상승 중이고 고객사 수주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용화 가능성을 봤다는 의미”라며 “특히 고객한테서 물량을 수주한 후 고객 맞춤형으로 다시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수율은 점차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5nm 이하 첨단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과 TSMC뿐이어서 희소성이 있다. 게다가 최근 삼성이 강점을 지닌 8nm 공정 등에서도 다방면으로 수주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삼성전자는 콘솔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2’의 메인 반도체 공급업자로 선정됐다. 전작인 ‘닌텐도 스위치’에 들어가는 칩은 파운드리 업계 점유율 1위 기업인 TSMC가 맡았지만 이번에 삼성전자가 낙점을 받았다. 노근창 센터장은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가 고객사의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잇단 수주에 성공했지만 아직은 TSMC와 격차가 상당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7.6%로 전 분기 대비 0.5%포인트(p)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8.1%에서 7.7%로 0.4%p 하락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 간 점유율 격차는 59.0%p에서 59.9%p로 오히려 확대됐다.
현재 TSMC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앞세워 삼성전자에 비해 고객 신뢰도와 점유율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칩 간 연결 방식에 따라 전력 소모량과 데이터 전송 효율이 달라지는데, 과거 삼성전자가 7·5nm 공정에서 고객사를 대거 잃은 결정적 이유도 TSMC의 패키징 기술 때문이었다. 당시 동일한 설계를 적용하더라도 TSMC에서 만든 반도체의 전력 소모가 삼성전자보다 약 30% 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현재 수주량이 늘고 있는 이유는 기술 격차가 사라진 덕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장의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TSMC의 공급 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삼성에 틈새시장이 열린 쪽에 가깝다고 본다”며 “TSMC가 홀로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객사들이 성능 면에서 타협하고 가격 압박이 적은 쪽을 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TSMC가 애플, 엔비디아 등 이른바 퍼스트 티어 고객사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면서 생산 일정이 밀리자 테슬라를 포함한 다른 빅테크 기업들이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삼성전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차별화된 기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매출을 만들어내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부지리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AI 시대의 반도체는 고객 맞춤형 설계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삼성전자가 아직 약하다. 빠르게 따라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도 치열한 경쟁 중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려 엔비디아 납품에 실패했고, 현재까지 HBM3E의 주력 공급사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D램에 이어 낸드를 포함한 메모리 시장 전체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매출 1위를 차지했다. 1분기 D램 매출점유율에서 최초로 삼성전자를 제친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메모리 부문에서 21조 8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삼성전자(21조 2000억 원)를 뛰어넘었다.
지난 7월 31일 실적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94% 급감했다. 팔리지 않는 메모리 재고 자산을 평가 충당금으로 선반영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전자의 연결기준 매출은 1년 전보다 0.67% 증가한 74조 5663억 원을 기록했으나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 영향으로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55.23% 감소한 4조 6761억 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48.01% 줄어든 5조 1164억 원이었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지금 단계에서 파운드리 수주량을 늘려 계속 실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내년에는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면서 확장성을 가져가야 한다”며 “HBM3E는 이미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납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점유율 늘리기 쉽지 않은 구조다. HBM4로 세대교체하는 타이밍에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교수는 “내년쯤부터는 본격적으로 ‘월드모델(물리·가상 세계의 구조, 동작, 규칙을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설계된 AI 모델)로 세상이 바뀐다. 로봇, 자율주행차 등을 비롯해 우리가 한번도 상상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AI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이 모든 분야에서 반도체가 핵심 부품 역할을 한다”며 “이걸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무거운 질문이 삼성전자에 필요하다. 아웃풋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DS 부문은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에 전사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2분기에 추가 재고 충당으로 비효율을 정리하는 등 하반기 턴어라운드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지속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제품과 AI 제품 수요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