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폄하 발언에 분노한 여권 사퇴 압박…‘대통령 임기와 일치’ 법안 소급 적용 땐 ‘역풍’ 부를 수도

8월 15일 광복절,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식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관장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며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해석은 항일 독립전쟁의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인 시각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범여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월 18일 “어떻게 독립기념관장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민족의 피와 희생으로 일군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나”라며 “역사 쿠데타는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자에게 국민의 세금 단 1원도 줄 수 없다”며 “김형석의 즉각적 파면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김 관장을 비롯해 이진숙 방통위원장, 안창호 인권위원장 등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이 일었던 인물들에 대한 징계 조치를 촉구했다. 서 원내대표는 “뉴라이트 청산 없이 내란 종식도 있을 수 없다”며 “개혁 5당이 합의한 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해 (기관장들의) 내란 옹호 행위에 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범여권은 김 관장의 발언을 구실삼아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뉴라이트 기관장’들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핵심으로 삼아 2004년 등장한 ‘신보수주의 우파’를 뜻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중용된 뉴라이트 인사들은 대안교과서와 국정교과서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교육체계에 넣으려고 시도했지만,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기점으로 세력이 약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다시 이들을 중용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안창호 인권위원장,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박이택 독립기념관 이사,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 다수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에 따르면 오히려 12·3 비상계엄 이후 45명의 공공기관장이 추가로 임명됐다.

인권위 ‘알박기 인사’ 논란도 있었다. 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인권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안 위원장과 정치적·종교적 성향을 같이하는 인물들이 인권위 상임위와 소위원회 산하 전문위원 자리에 대거 위촉됐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항쟁’으로 표현하며 관련자들을 변호한 연취현 변호사도 이름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7월 29일 해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만 비상계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2024년 12월 17일 백승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정당성 여부에 대한 질의에 백 원장은 “계엄령 포고의 사유에 동의하지 않고, 포고가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포고령 자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알박기 딜레마
범여권에서는 이 기관장들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마땅한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법정 임기가 남아 있기 때문. 일부 인사들은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진숙 위원장은 7월 9일 기자회견에서 “현행법상 제 임기는 내년 8월 24일까지”라고 강조했다. 김형석 관장과 안창호 위원장도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형석 관장 임기는 3년 남았다.
해임 절차도 까다롭다. 방통위원장·국가인권위원장·국가교육위원장은 직무수행 불가능, 중대 비위 행위, 금고 이상의 형 선고 등의 요건이 있어야 대통령이 면직·해임할 수 있다. 동북아역사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은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다. 현재 이사회 이사들은 대부분 윤석열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임명돼 있다. 독립기념관 관장 해임 절차는 없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소급입법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헌법 제13조는 소급 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새 법률을 과거의 행위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인정될 경우 소급입법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급 적용 대상이 된 기관장들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며 저항할 경우 정부·여당이 ‘알박기 기관장 정리’라는 수렁에 빠질 위험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사태’와 유사한 역풍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0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조국 사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결국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 직무 정지 명령을 내렸고, 징계 절차에 돌입해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윤 총장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무부와의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윤 총장은 정치적 체급이 커졌고, 검찰총장 사퇴 후 국민의힘에 입당해 단숨에 대통령에 올랐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지율 하락세도 부담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ARS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 비율은 51.1%까지 하락했다. 2주 만에 12.2%포인트(p) 하락한 수치다. 13~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9.9%로 40% 선이 무너졌다.
리얼미터는 광복절 특사 논란, 주식 양도세 논란, 민주당 강성 지지층 중심 정책 등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꼽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지율이 계속 이렇게 나오는데 당이 계속 강경 일변도로 가면 수렁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 전 대통령이 남긴 ‘내란 불씨’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관장들과 각을 세우는 게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란 대 내란 청산’ 구도가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같다. (김형석 발언 등은) 내란 청산이 안 돼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역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들이 논란의 발언을 할 때마다 윤 전 대통령의 실책이 부각되기 때문.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임기 논란 때 ‘독립성과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민주당이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해묵은 뉴라이트 옹호 발언 같은 발언이 계속 나와서 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