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꿈꾸다 막판에 방향 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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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형배는 박찬호의 등번호인 61번을 선택한 후 쏟아지는 관심을 즐겼다고 한다. “감히 네가 그 번호를…” 등의 악플도 찾아봤다고.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
지난 3일, 온양온천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한 윤형배는 마운드에서 150km대의 강속구와 낙차 큰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모습과는 달리 말수도 적고 수줍은 면면을 내보였다.
―먼저, 등번호에 대한 얘기부터 해봐야겠다. 61번을 달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기사가 많이 쏟아졌다. 61번을 원한 이유가 뭔가.
▲그런데 이런 등번호로도 기사가 되는 게 신기하다. 내가 61번을 다는 게 왜 기사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61번은 누구나 다 아는 번호 아닌가. 그 번호를 달고 뛰면 박찬호 선배님의 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웃음). 그런데 등번호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이 재밌었다. 욕 반, 칭찬 반이더라. ‘어떻게 감히 61번을 넘보느냐’면서 ‘넘볼 번호를 넘봐야지’라는 글도 있었다. 흥미로웠다. 내 번호에 이런 많은 관심이 쏟아진다는 부분이.
―그런 비난 섞인 댓글들을 접하는 게 익숙하진 않을 텐데…. 어쩌면 프로 선수 입문의 한 과정일 수도 있겠다.
▲난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무런 댓글도 안 달린 것보단 훨씬 낫다. 관심이 있으니까 비난도 칭찬도 하는 게 아닌가. 난 일부러 찾아서 본다. 비난에 상처받는 새가슴은 아니다. 오히려 ‘두고 봐라, 내가 61번에 어울리는 성적을 낼 테니까’하는 오기가 생긴다. 고2 때 대표팀 시절, 변화구의 제구가 잘 안 됐다. 그때 어떤 분이 욕과 함께 이런 글을 남기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윤형배의 컨트롤은 진정 어디로 갔는가. 볼이 전부 땅을 향해 꽂힌다’며 화를 내셨다. 감사했다. 아마 야구 선수한테 관심을 보여주셔서(웃음).
―지난 연말 시상식 때문에 바쁘게 보낸 것 같다. ‘올해의 아마추어상’을 수상한 자리에선 김경문 감독이 직접 꽃다발을 전해주며 축하를 건네기도 했는데, 감회가 새로웠겠다.
▲어휴, 진짜 기뻤다. 그동안 야구하면서 대회 관련 MVP나 우수투수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시상식에서 양복 빼 입고 나가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직접 꽃다발을 건네주시니, 얼마나 기분 좋았겠나. 초·중·고 통틀어서 감독님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게 처음이다. 감독님이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도 부드럽게 하셔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번 신인 선수들 소집했을 때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시더라. 어휴 한마디로 선수들이 감독님의 ‘쎈’ 분위기에 압도돼 ‘어버버’하고 나왔던 것 같다(웃음).
―프로가 되니까 뭐가 좋은가.
▲돈을 받으면서 야구하는 게 제일 좋다(웃음). 아마 때는 학교에 돈을 내고 야구했는데 프로에선 돈을 받고 야구하니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돈을 받는 건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더 긴장되고 설레고 기대가 된다. 프로 생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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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9월 3일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콜롬비아전에서 역투하는 윤형배. 연합뉴스 | ||
▲야구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기복이 심하다고 느낄 때는 ‘내가 지금 야구를 해도 되나?’하는 자괴감이 든 적이 있다.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기량 차이가 클 때는 나조차도 혼란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선수는 기계가 아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선수가 아닌 이상 실수는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며 극복해 나갔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멘토였던 이정훈 천안북일고 감독님께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감독님의 말씀이 나한테 큰 도움을 줬다.
―부모님이 열렬한 야구 팬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롯데 팬이고, 어머니는 한화 팬이신데, 올 시즌부터는 아들 때문에 응원하는 팀을 바꾸셔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바꾸시지 않겠나. 아버지가 부산 출신이라 야구 마니아시다. 그 영향으로 내가 야구를 시작하게 됐고,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과 뒷바라지를 받았다. 어머니도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선수로 활약하셨다고 들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레 야구로 이어진 것이다.
―신인 드래프트에 나오기 전에 LA다저스로부터 110만 달러에 이르는 러브콜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국내 잔류를 선택했다. 결심을 굳히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데….
▲LA다저스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통역, 편의 시설 제공 등 계약 내용이 좋아서 탐이 났다. 아버지도, 나도 가는 걸로 결정하고 있다가 막판에 내가 마음을 바꿨다. 이유는 박찬호 선배님 때문이었다. 곰곰이 따져 보니까 내가 박찬호 선배님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더라. 부족한 부분은 가서 만들고 채우면 되겠지만, 일단 한국에 남아서 커리어와 실력을 쌓아 더 좋은 조건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다.
―굉장히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 같다. 하지만 류현진이 LA다저스에 입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선택이 잠시 후회된 적은 없었나.
▲류현진 선배님이 LA다저스로 가실 줄은 진짜 몰랐다. 잠시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내가 만약 LA다저스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다저스에서 류현진 선배님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그런데 류현진 선배님과 한 팀에서 뛰는 건 당분간 어렵지 않았겠나. 마이너리그에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하는 내 입장에서 빅리그 마운드에 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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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일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신인 교육에 참가한 윤형배(가운데)와 NC 선수들. 연합뉴스 | ||
―올 시즌부터 서울의 두산-LG 라이벌전 못지 않은 빅매치가 열릴 예정이다. 바로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와 창원을 연고로 둔 NC와의 대결이다. 야구 유전자들이 남다른 열혈팬들 입장에선 두 팀의 대결이 몹시 기다려진다고 하더라.
▲나도 기다려진다(웃음).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팬들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부산이나 마산, 창원 분들의 야구사랑은 유명하지 않나. 한마디로 ‘야구광’들이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 라이벌전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관심과 응원전이 펼쳐질 것 같다. 친구들은 두 팀의 대결을 ‘전쟁’이라고까지 얘기하더라. 재미있겠지만 패할 경우엔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지금까지 고교 출신 신인들의 데뷔 첫해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흠, 아마 야구 시절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신인이다보니 처음 경험하는 프로 무대가 아마 때처럼 편안하지 않고 과도한 긴장이 자신의 실력 발휘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인들의 첫해 성적이 다 안 좋았던 건 아니지 않나. 시즌 들어가봐야 알겠지만, 지금 내 몸 상태나 컨디션은 아주 좋다. 아픈 데도 없고.
―자신의 주무기는?
▲자신있게 직구라고 말할 수 있다. 150km를 넘나드는 묵직한 직구와 제구력만큼은 큰소리로 자랑해도 될 것 같다(웃음).
―1월 7일부터 마산에서 NC 훈련이 시작된다. 2013시즌을 준비하는 각오를 말해 달라.
▲내가 어떤 보직을 받고,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지 몰라도 홈런을 맞든, 안타를 맞든, 그리고 나로 인해 팀이 패배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프로에 첫발을 내딛은 신인 선수의 성장통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비난도 감사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NC다이노스맨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윤형배는 의외로 입담이 좋았다. ‘인터뷰 잘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여론에서는 벌써부터 그를 NC다이노스의 ‘아기 공룡’으로 표현한다. 거침없고 당당하면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1994년생, ‘아기 공룡’ 윤형배의 프로 첫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