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26명 증원 추진’ 알려지자, 정청래 “유출자 책임 묻겠다”…시민사회도 급추진 우려

9월 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는 대법관 증원을 뼈대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최근 마련했다. 대법관 증원 숫자를 26명으로 조정했다고 알려졌다. 그간엔 30명 증원을 공언해왔다.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현재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 포함해 14명이다. 민주당은 이를 1년에 4명씩 단계적 증원해 최종 26명까지 늘리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해졌다. 현실화하면 이 대통령 임기 중 임명되는 대법관 수는 22명이 된다.
민주당이 대법관 목표 숫자를 계획보다 조금 낮춘 배경은 내외부에서 잇따르는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당장 대법원은 오는 9월 12일 서울 서초동 청사에서 전국 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개최, 대법관 증원 추진 관련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 증원에 이미 반대 뜻을 밝힌 상태다. 그는 지난 9월 1일 법원 내부망에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드리는 말씀'이란 글을 게시했다. 조 처장은 "대법관 수를 과다하게 증가시키면 재판연구관 인력 등 대규모 사법자원의 대법원 집중 투입 탓에 사실심이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국민의힘 반대도 강하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7월 21일 '이재명 정부의 사법부 장악을 위한 대법관 증원의 문제점' 보고서를 냈다. 대법관 증원을 단순 말씨름으로 대응해 정치 공방만 벌이는 대신, 모처럼 연구간행물을 냈다.
여의도연구원은 "법원조직법 개정은 단순히 법원 조직만 변경하는 게 아닌 삼권분립 근간인 사법부의 조직과 권한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다"며 "국민에 끼치는 영향은 물론 헌법 질서의 구조적 개혁과도 연관돼 있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법관 증원이 현실화하면 차기 정부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려는 정치적 유인이 커진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판결의 객관성과 법적 안정성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판사 출신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19일 당 사개특위 공청회에서 "1·2심 사실심 보강을 먼저 하고 대법관 증원으로 나아가야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대법관이 9∼15명인 나라가 많고, 그 이상은 프랑스와 독일뿐"이라고 꼬집었다.
일반 국민 여론도 세심히 살펴야 할 요소다.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은 겉으론 '상고심 업무 부담 및 비효율 해소'가 명분이다. 하지만 진의를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지난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이에 격분해 만들어낸 법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은 당시 대법원 판결 바로 다음날 김용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등장했다.
이런 상황 속 민주당의 대법관 26명 증원안이 언론에 공개되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의 기강을 잡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9월 7일 페이스북에서 "당 지도부에 정식 보고되지도 않은 문건이 누군가에 의해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명백한 해당행위로,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유출자에 강력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정 대표는 법안 내용이 다시 수정될 가능성도 남겼다. 그는 "당정대가 디테일하게 조율하기 전"이라며 "이런 행위로 원팀, 원보이스에 차질을 빗고 누가 되는 행위를 색출하고 엄단하겠다"고 했다.

단연 남은 관심사는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 추진이 국민에 얼마나 설득력을 가져다줄지다. 현재로서는 찬성과 반대 어느 쪽도 지배적이진 않은 분위기다. 대개 추가 논의 필요 등 '신중론'에 기울여져 있다.
법률신문이 대법관 증원 관련 법률가(판사·검사·변호사·법무사·법학자) 1144명, 비법률가 635명 총 17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9월 5일 공개한 결과는 한 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대법관 30명 증원' 물음에 33.0%(587명)가 '찬성', 28.1%(500명)는 '반대', '증원은 하되 규모 조절 필요'가 36.8%(654명)로 나타났다.
시민사회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원 규모와 새 대법관 임명 시기 등을 비롯해 여러 요소를 더 논의해야 한다고 바라본다. 섣불리 추진했다간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단 우려에서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지난 5월 21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사법부 신뢰 위기와 사법개혁 방향' 좌담회를 열었다. 민변은 이 행사에 대해 "대부분 대법관 증원이라는 방향에는 동의했다"면서도 "다만 여러 문제 발생 가능성 대비나 보완을 동시 혹은 선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재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날 "증원은 필요하지만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 점진적 증원이 필요하다"며 "대법관이 정치권에 종속되지 않도록 임명 시기를 배분해야 하고, 대법관 수를 늘리면 전원합의체를 구성하기 어려우므로 소부간의 모순저촉을 막기 위한 보완책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과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대법관 수가 350명이다. 민주당도 독일을 '모범 케이스'로 보고 있다. 단 한국은 대법관 '전원합의체' 중심인데, 독일은 민사 13개와 형사 6개 등으로 전문 상고부를 세분화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은 각 5인 합의부가 저마다 영역을 전담 처리한다고 한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이 그저 정치적 책략이 아니란 점도 입증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한나라당이 '대법관 24명 증원'을 추진했다. 대법관 자격도 판사에 더해 10년 이상 경력 검사, 변호사, 조교수 이상 법학교수 및 기타 변호사 등으로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사법독립 침해"라며 강력 반발해 무산됐었다.
현재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외에도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법관평가제도 개편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사법개혁 5대 과제'다. 오는 10월 추석 전 국회 본회의 통과가 목표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