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은 가만있어” 발언 사과 안한 게 결정적…패스트트랙 재판 실형 구형 나경원 정치적 위기 직면

그러자 국민의힘은 법사위 야당 간사에 5선 중진 나경원 의원을 내세웠다. 추미애 위원장의 대항마 격이었다. 나경원 의원은 8월 2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법사위 야당 간사직을 맡게 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야당 간사는 국민과 헌정을 지켜내는 최후의 방파제가 돼야 한다.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나경원 의원 법사위 야당 간사 내정을 두고 여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우선 배우자가 춘천지방법원장으로 법사위 피감기관장이라 국회법상 명백한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고, 한남동 관저 앞에서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등 윤석열 내란에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부적절 이유로 거론됐다.
여권은 패스트트랙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며, 나 의원이 이에 대해 공소 취소를 청탁했다는 의혹도 반대 사유로 들었다. 한동훈 전 대표는 2024년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경원 의원과 토론을 벌이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나경원 후보가 내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지 않느냐. 나는 그럴 수 없다 말했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힘은 나경원 의원이 법사위로 보임된 뒤 진행된 네 차례 전체회의에서 ‘나경원 간사 선임’을 요청했지만, 추미애 위원장은 매번 간사 선임 건을 의사일정에 올리지 않았다.

법원은 선고기일을 11월 20일로 정했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3월 법관 정기인사로 사건을 새로 맡게 되면서 “언론 등으로부터 ‘사건 처리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내년 2월 이전 선고하는 것을 목표로 공판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단독]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1심 선고, 내년 2월경 나온다). 계획보다 1심 선고를 3개월 앞당긴 것으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이 벌어진지 6년 7개월여 만이자, 재판 시작 5년 10개월 만에 1심 결론이 나오게 됐다.
1심 재판 실형 구형이 나오자 간사 선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9월 16일 법사위는 ‘나경원 간사 선임의 안’을 무기명 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국회의 전통대로 교섭단체가 추천한 의원을 간사로 호선해야 한다”고 반발하며 무기명 투표에 불참했다. 이에 투표 결과 재적 10표에 반대 10표로 ‘나경원 간사 선임안’은 부결됐다.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나경원 의원 간사 선임안은 다시 올릴 수 없다. 이날 부결로 정기국회 동안 법사위는 야당 간사가 없는 상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교섭단체가 추천한 상임위 간사 선임을 표결로 무산시킨 것은 국회 개원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에 따르면 민주당 법사위 일부 위원들은 나경원 의원 간사 선임을 해주려는 의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것처럼 상임위 간사는 관행상 각 당의 추천을 존중해 호선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명 투표로 부결한 결정적 이유는 나 의원이 법사위 여당 위원들을 향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발언한 것에 사과를 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앞서 나 의원은 추 위원장이 ‘간사 선임 안건’을 채택하지 않자 항의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조국혁신당 초선 의원들을 향해 “초선은 가만히 앉아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있어” 등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켰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에서는 이해충돌·내란 동조·패스트트랙 재판 등 여러 부적합 이유에도 나경원 의원을 간사로 선임해줄 생각이 있었다. 국민의힘 의견을 대변할 간사인데,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주는 것이 맞다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도 “이에 민주당에서는 ‘최소한 초선 발언에 사과를 하라. 사과하면 선임안 통과시켜주겠다’는 의사를 국민의힘에 전달했다. 그런데 나 의원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상대 당 위원들에 존중이 없는데 어떻게 간사로 선임해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이 나경원 의원을 법사위 간사로 보낸 것은 민주당과 싸우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과하며 한발 물러날 수 없었던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이번에 초유의 법사위 간사 선임 불발로 정치인으로서 이미지가 과하게 소모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나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등 다른 정치적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며 “그런데 최근 나 의원은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대표 선거 등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번 법사위 간사도 과정이나 명분이 어쨌든 선임에 실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정치인에게 패배의 이미지가 계속 이어지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