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이은 후속 공세, 관할 법원 변경 무산…돈벌이 위해 소송 거는 ‘특허 괴물’들 대비해야

기아와 기아의 미국법인이 특허 침해 혐의로 피소됐다. 미국의 NPE인 이머징 오토모티브(Emerging Automotive LLC)는 기아의 커넥티드카 서비스 ‘기아 커넥트(Kia Connect)’와 ‘디지털 키(e-Key)’ 기능이 자사의 기술 특허를 침해한다며 지난 8월 15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도 함께 피소됐다.
두 가지 특허가 쟁점인데, 첫 번째(US11104245)는 전자키를 만들어 클라우드에 올린 뒤 차량 제어 시스템과 연결하는 방식이고, 두 번째(US12337715)는 발급된 전자키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시 클라우드에서 확인해 쓰도록 하는 방법이다. 권용주 퓨처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물리적인 자동차 키 없이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차량 문을 열거나 시동을 걸 수 있다. 커넥티드카의 핵심 서비스 중 하나”라며 “스마트폰 앱으로 차 열쇠를 만들어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눠 쓰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아의 ‘기아 커넥트’ 앱은 스마트폰으로 차 문을 열고 원격으로 시동을 걸 수 있으며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인증도 받는다. 또 ‘디지털 키’는 NFC(근거리 무선 통신)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열쇠를 공유하고 앱에서 계정을 관리하며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특허 기술과 유사하다. 두 기술이 실제 특허 내용과 얼마나 겹치는지가 법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특히 차량 공유 서비스 등과 관련해서는 중요도가 높은 기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대면 차량 공유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키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설령 일반 소비자들이 별로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하더라도 특허 침해 여부를 명확히 다퉈서 사용권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향후 사업 영역 확장에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용주 소장 역시 “렌터카나 카셰어링 등뿐만 아니라 기업이 업무용 법인차 용도로 차량을 구매할 때도 고려할 만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이머징 오토모티브는 기아가 자사 특허를 직접침해·유도침해·기여침해·고의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배상 범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원고는 법원에 징벌적 손해배상과 향후 제품 판매에 대한 지속적 로열티 부과, 소송비와 변호사 비용 지급까지 청구한 상태다.
이와 관련, 한국지식재산보호원 한 관계자는 “해당 소송의 결과에 따라 현대차의 유사 서비스로 파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커넥티드 카나 스마트키 기술 전반으로도 분쟁 대상이 확장될 수 있어 주목할 만한 상황”이라며 “비침해 항변과 같은 단순 방어와 더불어 해당 특허에 대한 무효항변, 원고가 NPE임을 부각한 권리남용·소송 남용 주장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아는 지난 2023년 9월에도 미국 이머징 오토모티브로부터 3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피소당했다. 첫 소송에 활용된 특허는 주로 차량 또는 배터리 유형 식별을 포함하는 충전소 모니터링 기술 등에 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2024년 6월 30일 특허무효심판(IPR) 절차가 개시되면서 본안 소송은 일시 중단됐다. 2025년 7월 7일로 예정됐던 배심원 선발이 취소되면서 재판이 지연되자 이머징 오토모티브 측이 후속 공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재판과 관련해서는 기아 측이 캘리포니아주로 관할지 이전을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아는 지난해 1월 현재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서 심리 중인 재판을 캘리포니아 중부지방법원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원고인 이머징 오토모티브가 반대 의견을 제출하자 법원은 같은 해 10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허용될 수 없다”며 이를 최종 기각했다.
통상 특허 재판에서는 캘리포니아가 피고 기업의 소송 대응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구글, 애플, 메타 등 테크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만큼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당한 테크 기업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기아의 경우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에 기아 미국 법인 본사가 있고, 해당 기술 개발에 관여한 현대오토에버 미국 법인(HAEA)과 핵심 증인들 역시 같은 주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을 텍사스까지 불러올 경우 상당한 비용이 발생해 소송에 충실히 임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왔다.
도요타 본사가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점이 변수가 됐다. 이머징 오토모티브가 기아와 도요타를 각각 제소했으나, 법원이 사건의 중복성을 고려해 두 소송을 병합하면서 소송지 관할이 텍사스로 최종 확정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준석 로한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이번 소송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이미 한 차례 기각된 데다 이번에도 도요타 사건과 병합돼 진행될 가능성이 커 텍사스에서 다뤄질 공산이 높다”며 “텍사스는 델라웨어와 함께 특허권자 친화적 판결이 잦은 지역으로 꼽히는 만큼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허 전쟁’에 대비해야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6월에는 미국 기술 스타트업 밈지가 현대자동차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했으며, 5월에는 모데나 내비게이션이 내비게이션 및 차량 인포테인먼트 기술 특허의 무단 사용을 주장하며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인 만큼 실제 특허 침해가 맞는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워낙 많다. 그렇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일부러 소송 걸어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특허괴물’들이 늘고 있고 현대차·기아처럼 덩치 큰 기업은 이런 소송의 표적이 되기 쉽다”며 “처음엔 일부러 방치하다가 기술이 상용화된 단계에서 소송을 거는 경향도 있다. 피고 기업도 기술을 철회하기 어려운 단계이기 때문에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기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분쟁이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