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성적서 회수된 대기업은 납품, ‘적합 판정’ 장애인 사업자는 계약 취소…한전 “일부 항목 미준수, 절차상 문제없다”

전기업계 관계자는 “한전은 일선 기업들 업황을 좌우할 수 있는 ‘절대갑’이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하는 기준점과도 같은 공기업”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납품업체 품질이 곧 한전의 품질로 이어진다”면서 “그만큼 납품업체를 평가하는 일관된 기준이 중요하다. 그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것이 국가공인시험기관에서 발급하는 시험성적서”라고 전했다.
시험 관련 서류엔 ‘시험성적서’와 ‘시험확인서’가 있다. 시험성적서는 제품이나 소재, 소프트웨어 등이 특정 기준에 따라 공식적으로 시험평가된 결과를 나타내는 문서다. 적합, 부적합 판정에 따라 입찰이나 수의계약 등 발주사업 참여 가능 여부를 결정 지을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
‘시험확인서’는 일종의 임시 서류다. 국가공인시험기관장이 발급하는 일종의 보증서 격이다. 국가공인시험기관에서 모든 시험이 적합하게 완료됐지만, 항목별 여러 시험부서에서 성적서 취합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입찰 일정이 임박한 업체의 경우 자격을 증명할 서류가 필요한데, 이때 정식 시험성적서 발행 전에 공인시험기관장 명의 시험확인서를 제출한다. 시험확인서도 한전 입찰 참가 유자격을 인정받는 근거가 돼 왔던 것이 일종의 관례로 알려졌다.
국가공인시험기관에서 40년 가까이 배전기자재 성능평가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관계자는 서면을 통해 “시험성적서 발급이 늦어질 경우 공인시험기관의 ‘시험확인서’를 발급해 한전입찰 자격을 부여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전했다.
국가공인시험기관으로부터 시험성적서 ‘적합 판정’을 받는 것은 배전기자재 업체들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과정이다. 업체에 대한 시험성적서 발급을 담당하는 주요 국가공인시험기관으로는 한국전기연구원(KERI)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등이 있다.

시험성적서 회수 이후 진행된 입찰을 따낸 건 한 조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합이 따낸 입찰 물량 중 일부를 일진전기가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전기는 2024년 기준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대기업이다. 이 때문에 입찰 과정에선 중소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배전기자재 업계 관계자는 “일진전기가 납품한 제품은 약 20여 개 중소기업 먹거리로 거론되는 영역”이라면서 “연간 총액 330억 원 규모 입찰이 진행되는데, 매출 1조 원 넘는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생태계 교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했다.
또 다른 배전업계 관계자는 “시험성적서가 회수된 상황에서 입찰 자격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면서 “시험성적서 없는 업체가 한전에 제품을 납품한 뒤 안전 문제가 불거질 경우 품질 문제와 공정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사건이 불거진 뒤부터 한전이 수없이 강조해 왔던 ‘품질 강화 기조’에 반하는 조치”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시험성적서가 회수됐다면 그 순간부터 입찰 자격이 상실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것이 한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품질관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험성적서 회수결정 이후 입찰에 참여해 사업을 따낸 것이 확실하다면, 그 과정은 ‘입찰비리’로도 불릴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사안”이라면서 “한전이 일진전기를 입찰 대상 사업체로 선정한 것을 밀어붙인 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진전기 측은 10월 23일 “모든 성능시험 과정을 한전이 요구한 사항대로 진행을 했다“고 해명했다.

A 사는 2024년 연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이 발행한 ‘시험확인서’를 근거로 수의계약을 준비했다. 납품 계약이 임박한 상황에서 시험성적서 발급이 늦춰졌고, 시험확인서를 근거로 계약을 준비했다. 2024년 12월 30일 한전은 A 사에 항목별 ‘적합’ 판정이 기재된 시험확인서를 정식 공문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12월 31일 A 사는 KTC를 통해 항목별 적합판정이 담긴 공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한전 실무자는 이 시험확인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1일 오후 6시에 한전은 장애인사업자 수의계약 물량을 일반경쟁 입찰로 전환했다. 연말 퇴근 시간에 입찰공고를 낸 셈이다. 입찰 공고에 따르면 입찰 신청 준비 기간은 영업일 기준 3영업일에 불과했다. 통상적으론 2주(10영업일)가 입찰 준비 기간으로 주어지는 것에 비해 굉장히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됐다.
짧은 준비 기간은 유찰로 이어졌다. 그 사이 KTC가 A 사 정식 시험성적서를 발급했다. 적합 판정이었다. KTC는 A 사 시험성적서를 한전으로 전송했다. 그러나 지난 1월 8일 한전은 KTC가 정식발행한 시험성적서 내용 중 시험 규격 내용을 문제 삼았다. 이를 근거로 A 사 입찰 자격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1월 10일 KTC는 기술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술위원회에선 한전이 문제 삼은 ‘시험 규격’과 관련한 내용이 논의됐다. KTC는 한전 시험 규격 해석에 오해가 있다는 취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A 사 시험성적서가 적합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공문을 한전에 발송했다. KTC 기술위원회 답변에도 한전은 A 사에 대한 부적격 처리를 강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찰이 유찰된 뒤 한전은 1주일의 공고 기간을 거쳐 또 다시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결과 1월 14일 장애인 사업자 납품 예정 물량을 일반 업체가 낙찰받았다.
A 사 관계자는 “한전이 문구 해석에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전문적인 기술용어에 대한 해석 과정서 KTC 판단보다 본인들의 해석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은 터져버렸다”면서 “한전과 국가공인시험기관과의 시험 규격 논쟁에 장애인 사업자인 중소기업이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했다.
A 사는 88% 일반입찰이 완료돼 제품수급 긴급성이 없는 상황에서 12% 장애인 사업자 수의계약 물량을 빠르게 일반입찰로 전환한 것은 ‘가혹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A 사 관계자는 “한전과 공인시험기관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입찰을 진행해도 급할 것이 없는데, 긴급하게 입찰을 전환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면서 “보훈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사업자 물량을 조정하는 데 있어 한전이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 사는 두 차례에 걸쳐 적합 판정을 받은 공인시험기관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한전에 신속한 자격회복 조치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국가공인기험기관(KERI)에서 40년 가까이 시험 관련 업무를 한 관계자들이 작성한 문건 등에 따르면 A 사에 대한 개발시험 규격과 관련해 한전의 해석 오류가 있다는 취지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 사는 시험성적서가 회수된 일진전기를 입찰에 참가시킨 한전 담당자들을 입찰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이 사건은 전남경찰청 반부패팀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사의 입찰 자격 부적격 판단을 내린 한전 담당자들에 대해서도 나주경찰서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한전도 A 사 고소 고발에 맞대응을 했다. 한전은 A 사 대표이사에 대한 무고 혐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A 사 대표이사에 대한 고소 중 무고 혐의는 불송치(각하), 명예훼손 혐의는 무혐의 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 측의 이러한 법률 대응을 두고 업계에선 ‘중소기업 기강 잡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진전기가 시험성적서 회수 및 재시험 통보를 받은 뒤 납품을 지속한 것과 관련해 한전 측은 10월 22일 “한전 규정상 품질 하위사로 분류된 일진전기가 KERI에서 실시한 성능확인시험에서 불합격할 경우 납품 자격을 정지하지만, 입찰 당시엔 재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아 2026년까지 유효한 일진전기 납품 자격에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전 측은 “해당 사안은 공인시험기관인 KERI가 독립적으로 시행하고 그 결과를 한전에 통보하므로 한전은 시험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 사 시험성적서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는 지적과 관련해 한전 측은 “KTC에서 제출한 시험성적서와 기술검토의견서 검토 결과 일부 시험항목이 한전 규격에 명시한 시험 방법을 준수하지 않아 부적격 처리했다”면서 “시험 방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기자재 성능검증에 문제가 없다는 KTC의 기술검토 의견서는 시험결과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어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험 규격 판단 기준과 관련해 한전 측은 “해당 시험항목(규격 관련 내용)은 한국인정기구(KOLAS)에서 인정받은 KERI 의견과도 일치한다”면서 “KTC는 해당 (A 사가 시험성적서를 제출한 제품의) 정격투입전류시험, 부하개폐시험에 대한 KOLAS 공인시험기관이 아니”라고 했다.
이중잣대 논란과 관련해 한전 측은 “(이중잣대 논란은) 규정과 절차상 문제가 있어야 성립이 되는 것”이라면서 “시험성적서 관련 조치는 당사 규정 및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