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특수관계가 외교 공백 해결에 걸림돌 우려…캄보디아 비롯 해외 40여 국 대사·총영사 ‘공석’ 지적도

A 씨 납치 고문 사망사건은 고수익 알바를 미끼로 한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조직적 범죄를 상징하는 비극으로 부각됐다. 2020년대 들어 꾸준히 제기돼 왔던 캄보디아 한인 납치 사건이 이제야 공론화됐고, 정부는 본격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30대 여성이 캄보디아 접경지인 베트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추가로 알려졌다. 외교 당국의 소극적인 행정이 도마에 올랐다.
현지 자국민 보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가 공석이란 사실은 ‘외교 공백 논란’ 시발점이 됐다. 박정욱 전 대사가 지난 7월 부로 이임한 뒤 신임 대사 임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커졌다. 10월 15일 외교부는 박일 전 주레바논 대사를 주캄보디아 대사관에 파견한다고 전했다.
박일 전 대사는 캄보디아 입국 이후 생사 여부와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한국인 소재지 파악,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관련 범죄에 연루돼 현지 구치소에 구금된 한국인 송환 문제 등을 다룰 것으로 전해졌다. 정식 대사 취임은 아니다. 박 전 대사는 ‘주재국 부임 동의’ 절차인 아그레망 없이 현지에 파견된다. 사안의 긴급성 등을 감안해 외교부가 구원 투수를 급하게 물색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과 캄보디아의 특수한 관계가 외교 공백 해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캄보디아 반독재 민주화 운동가 중 일부가 한국으로 망명한 상태인데, 캄보디아 당국은 이들의 송환을 지속 요구하고 있다. 캄보디아 측은 현지 한국인 송환 조건으로 망명 민주화 운동가 송환을 내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988년생 부트 비차이는 소셜미디어(SNS)와 집회, 음악 제작 등 활동으로 캄보디아 정권 독재를 비판한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다. 2016년 취업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온 비차이는 본국 송환 시 박해 우려로 인해 한국 정부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2025년 초부터 비차이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의 캄보디아 민주화 운동가 B 씨는 2015년 비전문 취업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캄보디아 구국당 청년운동대표부 회장으로 선출돼 반정부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구국당을 해산한 뒤에도 구국당 한국지부에서 활동해 왔다. B 씨가 캄보디아로 돌아갈 경우 체포 및 형사처벌에 대한 우려가 인정됐고, 법원은 2024년 5월 그를 난민으로 인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캄보디아 왕국은 왕정을 복구했지만, 왕에게 실권을 주지 않는 입헌군주국으로 개편됐다. 그 과정에서 1인 독재가 둥지를 틀었다. 1985년 1월 14일 최연소 총리로 등극한 훈 센 총리가 38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2023년엔 아들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줬지만, 캄보디아인민당 대표와 상원의장 직을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 중이다.
캄보디아는 일당 독재 체제로 훈 센 전 총리가 대표로 있는 캄보디아인민당이 의회 120석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1991년 이전까지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신봉했던 캄보디아인민당은 1991년 이후 캄보디아 민족주의(Nationalism), 권위주의, 군주주의,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독재 정치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반정부, 반독재 투쟁이 일어나게 됐다.
캄보디아에서 범죄단지가 확산하게 된 이면엔 이러한 정치 상황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 표준과 동떨어진 ‘망명인사와 납치 한인 맞교환’을 요구하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이처럼 복잡한 실타래가 얽혀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선 외교적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캄보디아 한인 사망 사건 과정서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는 공석 상태였다.
한 외교가 소식통은 “캄보디아 당국이 신임 대사 아그레망 조건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송환하라는 카드를 내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대사를 중심으로 자국민 보호와 국제 인권 이슈 사이 애매한 공간을 파고드는 현명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 대사가 없는 것은 뼈아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9월 30일 기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재외공관 대사 24석과 총영사 17석에 대한 공백 현상이 지적됐다. 재외공관 컨트롤 타워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에도 구멍이 뚫릴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캄보디아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일본, 프랑스, 호주,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등 국가에 주재하는 한국 대사직이 공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애틀랜타, 휴스턴, 호놀룰루 등 미국 소재 총영사가 부재한 경우도 있었다. 우한, 선양 등 중국 도시와 오사카, 후쿠오카, 니가타 등 일본 도시를 비롯해 호찌민, 다낭 등 베트남 도시들까지 재외국민 보호 수요가 많은 아시아 주요 도시 총영사 직도 공석 상태다.
중국 대도시서 한인회장을 지냈던 한 인사는 “외교부의 소극 행정은 그동안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 자국민 보호 컨트롤 타워 부재로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질 수 있다”면서 “외국 공관 공백이 길어지면, 캄보디아나 미국에서 발생했던 재외국민 보호 체계 정상 가동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고 유의미한 인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주요국 대사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7일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주미 한국 특명전권대사로 취임한 데 이어 10월 16일 전직 대통령 노태우 씨 장남 노재헌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주중 한국 대사로 임명했다. 주중 대사 9개월 공백에 마침표가 찍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