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이정미 전 재판관 기용하고 직접 챙기자 ‘납품사 기강잡기’ 의구심…“법무 풀에서 선정된 법무법인일 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종결하는 이 한마디의 주인공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을 맡았던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력(한전)은 최근 납품업체 A 사와 소송전에서 법률대리인으로 법무법인 로고스를 선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재판관은 한전 소송전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전은 A 사와 각종 소송전으로 맞물려 있다. 이 전 재판관은 A 사로부터 피소된 한전 실무자에 대한 변론도 맡고 있다.
업계에선 ‘동네 싸움에 UFC 선수가 온 격’이란 하소연이 나온다. 한전이 납품업체 기강잡기 차원으로 전관을 기용했다는 의구심도 뒤를 잇는다. 한 배전기자재 업체 관계자는 “입찰자격등록 취소가 정당한지를 다루는 법적분쟁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직 헌법재판관이 참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면서 “헤비급 전관 기용 이후 A 사 분위기는 망연자실한 것으로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한전 입찰자격이 ‘생명줄’이나 다름없다”면서 “사활을 걸고 싸우는데,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관이 등장했으니 이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심 쟁점은 한전이 2020년부터 시행한 배전기자재 품질등급제 규정에 명시된 성능시험 시료 대수다. 한전은 2020년 배전기자재 성능시험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 2019년 고성 산불 원인으로 개폐기가 지목된 까닭이었다. 산불 이듬해 한전과 전기연구원(KERI)은 배전기자재 품질등급제 세부 기준을 강화했다.
지중용 개폐기에도 새로운 성능시험 규정이 적용됐다. 일부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시료 3대 이상을 받아 성능시험을 진행한 뒤, 입찰자격 유지를 재판단하는 규정이다. 전문기관과 협의에 따른 성능시험 절차에 따르면, 배전기자재 과전압 수명 시험엔 시료가 2대 필요하고, 전류개폐용량 시험 및 정격투입전류 시험에 시료가 1대 이상 필요하다. 규정에 맞는 성능시험을 진행하려면, 총 3대 이상 시료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업계에선 배전기자재 품질등급제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고 한다. 시료를 제출하는 데에만 비용 수천만 원이 발생하는 데다, 성능시험을 실시하더라도 제품의 정확한 문제를 집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전은 2023년 지중용 개폐기 성능시험 대상 업체 3곳에 대해 시료 2대를 받아 성능시험을 진행했다. A 사는 성능시험에 제출한 시료 2대 중 1대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성능시험 이후 한전은 A 사가 납품한 지중용 개폐기 14대에 대해서 리콜을 요청했다. 한전 측은 고성산불 이후 감사원의 한전 품질관리 감사 결과 통보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A 사는 정상 가동 중인 제품을 리콜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한전 측은 “성능시험은 제품 문제 원인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능을 하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헤비급 전관이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다. 지난 4월 한전은 A 사와 행정소송 사건 법률대리인을 법무법인 로고스로 전격 교체했다. 변론에 참여하는 변호사 중 가장 먼저 적혀 있는 이름은 이정미 변호사였다. 공기업과 영세업체 사이 분쟁에서 이처럼 무게감 있는 전관이 기용된 것을 놓고 법조계에서 화제를 모았다는 후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형 공기업인 한전은 충분히 전관을 두루 기용할 수 있을 정도 규모가 된다”면서도 “다만 상대가 중소기업이고 헤비급 전관이 뛰기엔 너무 작은 경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강력한 전관이 기용되는 소송전은 통상적으로 법적 분쟁에 걸린 ‘판돈 규모’가 굉장히 큰 경우가 많다. 쉽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소송에서 역전을 노리는 ‘회심의 카드’로도 전관이 활용될 수 있다. 한전과 A 사 사이 소송의 경우엔 큰 규모 소송도 아니다. 한전이 사활을 걸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소송인지에도 의문이 든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전관을 기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면서도 “전관 기용이 사건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전관예우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돼 온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체급이 큰 전관일수록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크다”면서 “그만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쪽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전기 부품 생산업체 한 관계자는 “한전이 ‘미운털’ 박힌 중소기업에 본보기를 보이는 동시에 납품업체에 대해 기강을 잡으려는 차원에서 이정미 변호사를 기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면서 “한전 내부 절차로도 중소기업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파격적인 전관 기용을 감행하면서까지 진심을 다하는 것은 갑질로도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전국구급 전관을 기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한전 내부에서도 이 정도 카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정미 변호사를 선임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A 사는 성능시험 공정성 이슈를 촉발한 한전 복수 실무자에 대한 고소, 고발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사회에선 한전 실무자들이 이 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이정미 변호사가 직접 출석해 당시 분위기가 술렁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한전은 A 사와 법적분쟁에서 종결된 1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5건) 법률대리인으로 법무법인 로고스를 선임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법정에 직접 출두하며 사건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지역 업계 관계자는 “이 변호사가 A 사 관련 (재판을) 전부 직접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관을 선임하는 비용도 높지만, 직접 출두를 하는 경우 비용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측은 “한국전력 법무 풀에서 법무법인을 선정했고, 변호인단에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포함된 것”이라면서 “법무법인을 선임한 것이지 전직 헌법재판관을 선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전 측은 “한전은 2년마다 법률 고문 풀로 법무법인 35곳을 위촉하고 있다”면서 “사건이 발생하면 법률 고문 풀에서 제안서를 받아 사건 특성, 소송 대리인의 전문성 및 경험 등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법률대리인을 선정하는 시스템이다. 법무법인이 결정되면, 사건에 참여할 변호인은 법무법인에서 선정한다”라고 해명했다.
변호사 선임 비용과 관련해 한전 측은 “변호사 비용은 사건 난이도 등 요소에 따라 정해진다”면서 “어떤 법무법인이고 어떤 변호인이 참여한다고 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납품업체 A 사와 소송전을 전부 법무법인 로고스가 담당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전 측은 “종결된 사건(수의계약 불가 통보 관련 가처분신청)을 제외한 A 사와의 법적 분쟁을 로고스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로고스 측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