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 중심으로 청약·매수 구조 고착 우려…“가계부채 2000조 상황, 대출 규제는 불가피” 반론도

강남 핵심 입지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트리니원’ 청약 결과를 살펴보면 당첨 가점은 최고 82점, 최저 70점으로 집계돼 4인 가구 만점(69점)조차 당첨권에 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청약은 과열 양상에 비해 분양가가 전용 59㎡는 18억~21억 원, 전용 84㎡는 26억~27억 원대에 달해 중산층이나 일반 실수요자는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무주택자들 사이에서는 10·15 대책 이후 전세와 대출을 통한 ‘내 집 마련’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청약 시장 자체가 고액 자산가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네이버 부동산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 사례를 언급하며 “당첨돼도 중도금 대출이 거의 막혀 있어 현금 20억 원이 필요하다” “로또는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 여력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게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청약판이 완전히 양극화됐다”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반포·서초권 40억 원대 분양은 서민에게 사실상 접근 불가”라는 의견도 잇따랐다. 고가 단지 청약이 ‘서민 주거 사다리’가 아닌 부유층 중심 시장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주택시장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정부는 올해 6월·9월·10월 세 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규제책을 연달아 내놨다. 6·27 대책에서는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LTV) 한도를 6억 원으로 묶고 다주택자의 추가 구입 대출을 금지했으며, 주담대 만기 30년 고정과 전입 의무 강화 등을 포함했다. 이어 9·7 대책에서는 LTV를 40%로 낮추고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통일하며 대출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10·15 대책에서는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 지정해 아파트뿐 아니라 공동주택 전반에서 대출을 활용한 고가 매수와 상급지 갈아타기 수요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현행 규제가 자기자본이 부족한 무주택자와 중산층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서울 주요 지역의 평균 분양가가 15억 원을 넘어 인기 지역은 국민평형(34평형) 기준 27억~28억 원까지 형성돼 있는데 대출은 2억~6억 원 수준으로 제한되다 보니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계층은 사실상 접근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분양대금을 몇 년에 걸쳐 분납한다 해도 자금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반면 자본 여력이 있는 수요층은 현금으로 매입이 가능해, 집값이 오르는 시장에서는 결국 ‘살 수 있는 사람만 계속 사는’ 구조적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현행 부동산 규제가 “결국 현금부자에게만 유리한 시장을 만든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출 10억~20억 원을 감당할 수 있었던 전문직 고소득자나 전세를 끼거나 중도금 대출을 활용해 고가 주택 매입을 노릴 수 있었던 중산층까지 청약 참여 기회를 잃었다”며 “대출을 제한하면 주거 사다리가 가장 먼저 무너진다. 보호 대상이어야 할 중산층·저소득층이 규제 대상으로 바뀌면서 현금부자만 기회를 보장받는 불균형이 심화된다. 이런 정책은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양극화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자금 여력이 있는 계층은 집값 상승 기대가 유지되는 한 지속적인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중산층 입장에서는 당장 입주 여력이 없어도 인플레이션을 방어를 위해 주택을 매입하고 싶은데 이젠 그게 안 된다. 같은 10% 상승이라도 100억 원 자산은 10억 원, 5억 원 자산은 5000만 원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격차가 누적되기 때문에 향후 가격 상승 국면은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0·15 대책 발표를 앞두고 매수세가 몰리면서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2.75%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는 2021년 1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수요자들이 ‘추가 규제가 나오기 전에 사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더 시장에 강하게 진입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현장에서도 ‘미리 대출받아 놓길 잘했다’거나 ‘갭투자로 마용성 지역 주택을 선제적으로 매입해 다행’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0·15 대책 이전 한 달 1만 1268건에서 이후 한 달 3224건으로 71.4%나 감소했다. 전세 매물도 지난해 말 대비 15% 이상 줄었다. 시장이 정부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강도 높은 규제로 레버리지와 전세를 활용한 매입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거래량 감소는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 이어진 만큼 내년 1분기까지 거래 시장이 숨 고르기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규제가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거주의무 부과로 전세 물건이 시장에서 빠지면서 유통 가능한 매물이 줄었고,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공급 기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전세 끼고 거래되는 매물과 실거주 매물이 모두 시장에 나왔지만, 토허제 지정 강화로 인한 실거주 의무 부과 이후 전세 매물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면서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최소 절반으로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요를 규제로만 억누르다 보니 오히려 가격 상승 압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취득세·양도세 부담이 커진 점도 시장 유통량 감소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신규 공급은 그린벨트 해제 신도시의 경우 15~20년, 재개발·재건축은 8~10년, 비아파트 신규 공급도 최소 1~2년이 소요돼 단기간에 공급 확대가 어렵다. 반면 기존 재고 주택은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즉시 공급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높은 거래세가 매물을 묶어두는 구조가 고착됐다는 평가다.
송승현 대표는 “취득세가 과거 1~3% 수준에서 지금은 최고 12%까지 올라 거래 비용이 크게 늘었다. 집을 팔아도 지금은 대출이 막혀 다시 매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30평을 팔면 18평밖에 못 간다’는 위기의식이 있어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거래세 부담이 매물 잠김을 유발해 공급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규제 완화와 시장 기능을 존중하는 기조가 예상됐지만, 강력한 규제 중심 정책으로 부동산 정책이 선회하면서 시장 왜곡이 초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래가 막히면 주택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리모델링·인테리어·중개업 등 연관 산업 전체로 침체가 확산돼 내수 경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과거 여러 정부가 규제 중심 정책을 반복해 효과를 내지 못한 경험이 있는데도 다시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시장이 일정 부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 규제의 불가피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함영진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서울 집값 상승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투기적 수요를 진정시키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이 있었다. 과열된 시장에서 전세를 활용한 갭투자나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수요 억제만으로는 집값 안정이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공급 확대와 속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규제지역을 장기화할 수는 없고 신혼부부·생애최초 등 실수요자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방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최근 대출 규제가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에 대해 “자산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이번 규제로 인해 갑자기 더 심화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십억 원씩 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매입하는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서민인지 의문”이라며 “금리 상승이나 집값 하락 시 고액 대출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한 구조가 된다. 가계부채가 20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더는 이런 방식으로 시장을 방치할 수 없어 대출 규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오히려 전세대출 등도 더 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