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성화로 개발 방식 ‘슬림화’ 단계 진입…신규 채용 급감 ‘인재 양성 사다리’ 붕괴 우려

국내 게임 업계 2위인 크래프톤은 지난 11월 12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자발적 퇴사 선택 프로그램’을 전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신청자에게 최대 36개월 치 월급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 측은 “인위적인 인력 감축이 목적이 아니라 구성원의 새로운 도전을 돕는 커리어 전환 지원 성격”이라며 ‘자율선택형’ 프로그램임을 강조했으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시점에 단행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크래프톤은 올해 창사 이래 최초로 3개 분기 만에 누적 영업이익 1조 원을 넘어섰다. 3분기 매출액은 8706억 원, 영업이익 348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 7.5% 성장했다. 당기순이익은 3694억 원으로 204.4% 증가했다. 재무 체력 역시 탄탄하다. 3분기 말 기준 크래프톤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613억 원, 1년 내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은 4조 2418억 원에 달한다. 반면 갚아야 할 유동부채는 7588억 원에 불과해 유동비율(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 560%에 육박한다.
게임업계에서 크래프톤의 이번 희망퇴직을 유동성 위기에 따른 감원이 아닌, AI 중심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전략적 다이어트로 해석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앞서 크래프톤은 지난 10월 23일 ‘AI 퍼스트’ 기업으로의 도약을 공식 선언하며 조직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회사 측은 약 1000억 원을 투입해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한편, 기술 개발을 넘어 조직 문화와 경영 의사결정 등 사내 업무 전반에 AI 활용을 극대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실제로 AI 도입이 활성화되면서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쏟아붓던 기존의 개발 구조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익성이 불투명한 장기 프로젝트를 과감히 정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넥슨의 니트로스튜디오는 파산하고, 컴투스의 라온스튜디오는 해체했으며, 위메이드의 ‘블랙벌처스’ 팀도 해산됐다.
이와 관련,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 학장은 “기존 방식으로는 AAA급 게임 제작비가 거의 3000억 원에 육박하고 개발 기간 지연으로 수익 회수마저 늦어지는 등 대규모 인력 투입 방식이 ‘고위험 구조’로 전락했다”며 “비용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AI 전환을 서두르고 효율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임 개발의 중추인 기획(게임 디자인), 아트, 프로그래밍 등 핵심 3대 직군도 AI발 ‘파괴적 재편’의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시나리오와 시스템 기획을 담당하는 ‘게임 디자인’ 분야다. 과거 10여 명의 시나리오 팀이 6개월에서 1년씩 매달려야 했던 방대한 분량의 스토리와 대사 작업이 이제는 AI를 통해 한나절 만에 만들어지는 구조로 바뀌었다. 게임사가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이용자 참여를 유도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 역시 기존에는 개발 직군에 영화·드라마 작가 수준의 역량을 요구했으나 현재는 AI로 거의 대체된 상태다.
아트 직군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업계에서는 신입이나 주니어급 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수련의 시간’ 자체가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신입들이 아트 디렉터(AD)의 지시를 받아 보조 작업을 하며 실력을 쌓았지만, 이제는 AD가 퇴근 전 AI에 키워드를 입력해 두면 밤사이에도 수백, 수천 장의 시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굳이 저연차 아트 직군들에게 업무를 맡기거나 교육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위정현 학장은 “AI 툴이 개발 현장에 전면 도입되면서 인력 배치와 투입 규모가 완전히 재조정되고 있다. 과거 100명을 투입해야 했던 프로젝트가 이제는 절반인 50명 만으로도 충분히 돌아가는 구조가 됐다”며 “그래픽 아트, 그중에서도 컨셉 아트 같은 원화 작업은 AI가 하룻밤 만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 또한 “지난 8월 엔씨소프트가 아트 직군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내부 개발 프로세스를 AI 위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며 “내년부터 신입 컨셉 원화가의 취업문은 사실상 닫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다.
프로그래밍 분야 역시 사람의 말로 코딩을 수행하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시대가 열리면서 격변을 맞았다. 복잡한 컴퓨터 언어(C언어)가 아닌 일상적인 자연어 명령을 통해서도 AI를 통한 코딩이 가능해지면서 과거 한 달이 걸리던 코딩 업무가 일주일 만에 끝나는 비약적인 효율화가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제 점점 현장에 필요한 인력은 코드를 직접 짤 실무진이 아니라 AI가 짠 코드의 오류를 잡아내고 검수할 수 있는 시니어급 소수 인력뿐인 것 같다”고 전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창의적 영역이었던 개발 직군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무너질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향후 AI 업계 기술이 발달할수록 업계 전체가 극한까지 구조조정 광풍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AI컨설팅 업체들이 ‘300명짜리 조직을 100명으로 줄여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솔루션을 제시하면 경영진들 입장에서는 귀가 탁 트이기 때문이다. 경쟁사가 AI를 통해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는데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생존을 위해 모두가 이 흐름에 편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채용도 얼어붙었다. 주요 게임사 5곳(엔씨소프트·넷마블·크래프톤·위메이드·컴투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지난해 합산 신규 채용 규모는 1310명으로 2년 전인 2022년(2260명) 대비 42% 급감했다. 넷마블은 2022년 224명이었던 신규 채용이 지난해 46명으로 쪼그라들었고, 엔씨소프트(646명→311명)와 컴투스(446명→210명) 역시 채용 규모가 반토막 났다. 위메이드도 같은 기간 595명에서 327명으로 줄었다. 유일한 예외는 크래프톤으로, 크래프톤은 2022년 349명에서 2023년 267명까지 줄었던 채용을 2024년 416명으로 대폭 늘렸다. 이는 최근 주력하고 있는 AI 관련 직군에 대한 인재 영입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재 양성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통상 신입 개발자가 도제식으로 습득하던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주니어가 시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실무 경험의 기회 자체가 차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시니어급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태 교수는 “단순 개발을 넘어 게임의 이론적 토대를 연구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정밀 진단할 수 있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 관리가 시급하다. 이들 연구 인력에게 최소한 엔트리 레벨(신입) 채용을 보장해 주는 등 AI 도입으로 끊어진 ‘인재 양성의 사다리’를 정부 주도로 복원해줘야 한다”며 “정부와 업계가 말로만 ‘K-컬처 300조 시대’의 핵심산업이 게임이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