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외교 성과’ 김정은은 ‘국제 위상·핵 인정’ 원해…더 절실한 트럼프가 더 많이 내놓아야 하는 상황

먼저 손을 내민 쪽은 트럼프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연내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재차 밝혔고, 마침내 지난 17일에는 김정은이 자신의 접촉에 응답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락이 오갔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나는 그를 이해하고, 그는 나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백악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참모들에게 올가을 가능한 이른 시기에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시점으로는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거론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논의인 데다 공식 일정으로 확정된 건 아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막연한 희망 사항으로만 여겨졌던 트럼프의 대북 접근이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다만 ‘로이터’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2018년과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났던 이유와 지금 김정은을 다시 만나려는 이유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이면에 숨겨진 셈법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2018년 만남의 핵심 주제가 ‘비핵화’였다면, 2026년의 핵심 주제는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거래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실제 북한은 지난 8년 동안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발전시켰고,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크게 확대했으며, 중국과의 관계도 다시 강화했다. 무엇보다 북한군이 러시아 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실제 트럼프에게 김정은과의 관계는 ‘실패한 외교’이자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에 다름 아니다. 2017년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거친 막말을 주고받았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가리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라며 선 넘는 발언을 했고, 트럼프는 이에 맞서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부르면서 조롱했다. 그런데 이렇게 험악했던 분위기는 1년 뒤 두 사람이 싱가포르에서 마주 앉으면서 급변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가진 순간이었다.
이후 트럼프는 김정은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고, 2019년에는 하노이와 판문점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세 번의 만남에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실질적인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특히 하노이 회담은 제재 완화와 비핵화 조치를 둘러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단순한 ‘북한 외교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라고 주장해왔다. 만일 트럼프가 다시 김정은을 만나 정상회담을 열고 무언가 성과를 이뤄낸다면 첫 임기 때 완성하지 못했던 외교적 성과를 다시 이룰 수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분석도 흥미롭다. 차 석좌는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가운데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적 부담에서 뉴스의 초점을 옮기려는 계산도 일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정은과의 회담은 한반도 문제만을 위한 외교 이벤트가 아닌, 트럼프 자신의 외교정책 전체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정상회담이 이뤄질 경우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려는 건 무엇일까. 현재까지 미국 정부가 구체적인 협상안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꼽고 있다. 먼저 북한의 핵무기를 단기간에 모두 제거하는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핵무기의 추가 생산과 미사일 능력의 확대를 제한하는 군비통제 또는 핵동결 방식의 거래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 산하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지난 6월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상당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김정은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한편 관계 개선을 시도하려 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어냈다고 미국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전문가들이 이런 시나리오를 거론할 정도로 북한의 핵개발 능력이 커졌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김정은의 셈법은 오히려 더 명확하다고 ‘로이터’는 주장했다. 가장 큰 성과는 국제적 위상이다. ‘로이터’가 인용한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연구원은 김정은에게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은 “명성과 지위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를 확보한 김정은에게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마주 앉는 장면은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세계 최강국과 직접 협상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김정은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선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북한에게는 가장 중요한 목표일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미국의 대북정책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해왔지만, 트럼프가 핵무기 전체 폐기가 아닌 추가 생산 제한이나 장거리 미사일 제한을 받아들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 국가가 되고, 이는 김정은에게는 경제적 이익 이상의 엄청난 외교적 성과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노리는 두 번째 카드는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 등 군사 문제다. 북한은 오랫동안 한미연합훈련을 가리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비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최근 훈련 축소를 지시한 이후에는 트럼프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최근 북한 관영매체가 여전히 한미 양국을 ‘전쟁광’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트럼프의 이름이나 훈련 축소 결정 자체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어쩌면 이것이 향후 외교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만나려고 하는 시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트럼프가 하반기를 목표로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11월 아시아 순방 일정이 잡혀있다는 점도 유효하지만, 무엇보다 미국 국내 정치 일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북미 회담을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빅터 차는 김정은이 트럼프의 제안에 즉각 응답하기보다는 시간을 끌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본인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시점을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커질 수밖에 없고, 미국이 비핵화를 요구한다고 해도 북한은 이미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대체 파트너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 역시 비슷한 분석을 제시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고 싶어하는 만큼 김정은이 트럼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38노스’는 현재 북미 관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욕구의 비대칭’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강대국이 외교를 제안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국가가 그 기회를 잡으려 애쓰지만 지금은 그 입장이 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김정은에게는 기다릴 이유가 충분하다. 북한은 과거처럼 미국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당장 정권의 생존이 위협받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어쩌면 이번 협상은 오히려 트럼프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고 ‘38노스’는 분석했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사실을 이미 공개적으로 피력했고, 협상에서 먼저 절실함을 드러낸 쪽이 항상 더 많은 것을 내놓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거래에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얻을까. 문제는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과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협이 같지 않다는 데 있다. ‘38노스’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추가 개발을 제한하고, 북한의 기존 핵무기는 사실상 그대로 인정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본토에 대한 장거리 핵위협은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서울을 겨냥한 북한의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결국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의 핵무기 개수도, 트럼프의 외교적 수사도 아니다. 누가 정상회담을 더 간절히 원하느냐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고 있는 반면, 김정은은 과거에 비해 미국의 관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 ‘38노스’는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정상회담 자체를 개인의 성과로 여길수록 북한이 그 대가를 높게 부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만일 이번 회담에서 가장 현실적인 거래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핵을 가진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트럼프에게는 김정은과의 만남이 자신의 외교 능력을 증명하는 무대가 될 수 있고, 김정은에게는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이 자신의 핵보유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과시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과연 이번 회담이 성사된다면 두 사람 모두 만족하는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까.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