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태조 이성계에서 태종, 세종, 성종, 선조, 인조, 정조 등 이름만 들으면 알 것 같은 왕들과 그 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곳. 조선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누군가는 위대하고, 누군가는 졸렬하고, 누군가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500년을 이어오며 한반도 리더십의 구심점 역할을 한 조선의 조상들이 거기에 기대 있다.

내려다보면 어떤가. 우리는 지금 조상신도 믿지 않는다. 조상이 우리의 울타리가 된다는 신앙도 미신이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조금 거리를 두었으니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은가.
종묘. 그 고요한 공간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유네스코는 조건을 달았다. 역사적 경관을 역사적 경관답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묘 인근에 종묘의 정신을 해치는 개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다. 이제야 알겠다. 왜 그런 조건이 필요했는지.
왜 서울시는 이미 합의가 된 개발계획의 판을 뒤집고 두 배쯤 ‘더 높이는’ 계획을 허가해 줬을까. 개발 이익이 크다면 역사도, 문화도, 무시해도 된다는 발상인가. 한번 개발해 놓고 나면 무를 수가 없다. 조상을 섬기는 조선의 정신을 내려다보며 뷰가 좋다고, 높이 세우길 잘하지 않았냐고,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생색을 내려 하는 이가 2000년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썰렁해지고 오싹해진다.
4년짜리 시장이 500년의 역사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에 방패가 아니라 문이 되고자 한다면 이번에도 시민이 나서야 하나. 이미 한국 고고학회, 한국건축 역사학회, 한국미술사 학회 등 역사유산 관련 29개의 학술단체가 긴급성명을 내서 서울시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삼국유사’에 보면 미추왕과 김유신 이야기가 나온다. 779년 신라의 혜공왕이 꿈을 꿨다. 명장 김유신이 미추왕릉의 미추왕을 찾아가 따지듯 호소하는 꿈이었다. 죽어서도 신라를 지켰는데 신라가 내 후손에게 이럴 수 있냐며 이제 신라를 떠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미추왕은 그렇게 화가 난 김유신을 달래고 있었단다. 김알지의 후손 미추왕은 3세기 인물이고, 김유신은 7세기 신라의 영웅이다. 그리고 그들을 꿈에서 만난 혜공왕은 8세기 인물이다.
3세기와 7세기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8세기. 지금 우리가 믿는 과학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래도 이 땅 한반도에서 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친숙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야말로 무의식과 의식의 건강한 교류가 아닐까.
우리 조상들에게 익숙한 덕 중에 ‘음덕(蔭德)’이라는 것이 있다. 알리지 않고 베푼 공덕이 어느 날 행운으로 돌아와 힘든 시절의 지팡이 노릇을 하듯, 어느 날 나에게 찾아든 행운이 나도 몰랐던 조상의 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음덕이다. 그것은 동아시아를 관통하고 있었던 중요한 믿음체계였다. 종묘는 죽은 조상의 자리를 마련하며 죽은 자리가 편해야 산 자리가 편안한 것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믿음체계가 낳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조상의 자리를 마련했던 우리 조상들은, 우리 안에 이미 사라져 없어진 줄 알았던 조상들이 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삶은 과거와 미래를 안고 생성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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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