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하우스’ 우선협상자 선정에 흥국생명 반발하며 고소…경쟁 입찰 방식 사전 예고 여부가 쟁점

창업주 고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인 손화자 씨 등 오너 일가는 동반매도참여권을 보유한 주주들과 함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 대상은 손 씨 지분 12.4%와 분산된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합친 최대 98.8%다. 매각 주관사는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로 선정됐다.
매각 주관사는 7월 초 국내 금융지주 계열사와 자산운용사 등 20여 곳에 티저레터(투자설명서)를 배포했으며, 8월 13일 예비입찰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예비입찰을 통해 추려진 숏리스트(인수 적격후보)는 한화생명, 흥국생명,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등이었다.
11월 11일 진행된 본입찰 끝에 12월 8일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장 레이가 2005년 미국 예일대학교 재단으로부터 2000만 달러의 출자를 받아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홍콩·싱가포르·베이징 등을 거점으로 동북아·동남아·북미·유럽에 걸쳐 투자하고 있으며, 텐센트·바이두·징둥닷컴 등 중국 대표 온라인 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펀드를 이끌어왔다.
힐하우스가 1조 1000억 원, 흥국생명이 1조 500억 원, 한화생명이 9000억 원대 중반의 인수가격을 최종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힐하우스는 본입찰에서 9000억 원대 중반을 제시했으나, 본입찰 이후 프로그레시브 딜(경쟁 입찰)을 통해 1500억 원가량 올리면서 승기를 잡았다.
프로그레시브 딜이란 인수 후보끼리 가격 경쟁을 붙여 호가가 오를 때마다 다른 인수후보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인수할 것인지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KT렌탈(롯데에 1조 200억 원), 홈플러스(MBK파트너스에 7조 2000억 원), LIG손해보험(KB금융에 6450억 원) 등에 적용된 바 있다.

흥국생명은 매각 주관사가 프로그레시브 딜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를 어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흥국생명 측은 프로그레시브 딜과 관련해서 투자설명서나 구두 등으로 일체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흥국생명은 지난 12월 11일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지스운용 최대주주 손화자 씨, 손 씨의 딸이자 이지스운용 주주대표인 김애미 투썸플레이스 사외이사,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 아무개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IB(투자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매각 주관사의 재량에 따라서 프로그레시브 딜을 시행할 수 있는데, 최고 제시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에는 타 원매자에게 접근해 ‘타사에 비해 적게 입찰했는데 얼마까지 올려줄 수 있냐’고 이야기하면서 협상하는 방식”이라며 “불법이거나 이상한 관행이 아니지만, 매각 주관사와 원매자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흥국생명이 크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힐하우스는 지난 12월 10일 입장문을 내고 “모든 절차에서 매각 주관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왔다. 향후에도 규제 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자의 대주주가 변경되면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통과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금융당국도 이지스운용 인수전이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법적 분쟁이 해소되지 않은 경우 심사를 진행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진 서경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프로그레시브 딜 사전 예고 없이 공개 입찰이 끝난 후 추가 딜을 하는 건 불공정 행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진행되면 소송 과정 및 결과를 지켜볼 텐데, 사안이 심각해져서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경우에는 심사 통과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국민연금이 이지스운용에 대한 위탁자금 전액 회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도 매각 과정의 변수다. 경영권 매각 도중 국민연금이 출자한 펀드에 관한 보고서를 사전 동의 없이 원매자들에게 공개했다는 이유다. 국민연금 위탁자산은 2조 원 수준이며, 시장 평가액 기준 7조~8조 원 규모다. 자금 이탈 시 운용자산이 축소되기 때문에 기업가치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이지스운용 관계자는 “국민연금 자금 회수와 관련해서는 공식 통보를 받진 않았으며, 대표이사가 국민연금을 방문해 매각현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국민연금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며 “매각 주관사 및 잠재 매수자들로부터 비밀유지각서를 받았고, 자산실사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범위의 자료 요청에 응했다”고 말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